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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女야구 안양 산타즈㊤, LG배 퓨처리그 우승 비결은 '즐기는 모범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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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女야구 안양 산타즈㊤, LG배 퓨처리그 우승 비결은 '즐기는 모범 야구'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4.11.17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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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3년반동안 단 1승팀, 2개월새 5연승으로 첫 정상 '괄목상대', 6개월 기초체력, 3개월 수비 포메이션 훈련 적중

[익산= 글 류수근 · 사진 최대성 기자] 삼국지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중 ‘괄목상대(刮目相對)’가 있다. ‘눈을 비비고 상대편을 본다’는 뜻으로, 남의 학식이나 재주가 놀랄 만큼 부쩍 늚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15일 오전 11시 35분. 전북 JTCR의 6회말 공격 2사 3루에서 안양 산타즈 선발투수 강선희는 2구째를 던졌고, 타석에 있던 JTCR의 2번타자 고은진이 친 공은 내야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2루수 양자영이 차분하게 타구를 포구하는 순간, 1루쪽 덕아웃에 있던 산타즈 선수들은 환호와 함께 우르르 마운드로 뛰어 나와 강선희를 에워쌌다. 이어 선수들은 박원준 총감독과 강선희 선수 겸 감독을 하늘 높이 헹가래쳤다.

안양 산타즈가 창단 4년만에 ‘우승’이라는 첫 기록을 한국여자야구사에 쓰는 순간이었다.

"운이 좋았겠지!" 그러나 경기 시작 후 산타즈는 '괄목상대'의 실력 선봬

▲ 안양 산타즈 선수들이 15일 익산시 야구장에서 벌어진 JTCR과의 경기에서 9-3으로 승리한 뒤 마운드에 올라 승리를 축하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올해 주최한 4개 대회 중 마지막 대회이자 가장 규모가 큰 ‘2014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의 퓨처리그 결승전이었다.

퓨처리그는 한국여자야구연맹에 소속된 하위리그 팀들이 자웅을 겨뤘다. ‘퓨처’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현재보다는 미래의 꿈을 더 크게 안은 팀들이 대부분이다. 2부리그 결승전이라는 점에서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전 9시30분에 경기가 시작됐고 2시간 시간제한도 있었다.

오후 1시30분부터 펼쳐지는 챔프(상위리그) 결승전에 비해 관심이 덜했다. 관중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본부석 신축이 다 끝나지 않은 경기장은 냉기마저 감돌았다. 다행히 날씨는 전날보다 풀렸고 바람 한 점 없는 구장에는 늦가을 아침의 햇살이 비쳤다.

▲ 안양 산타즈 선수들이 JTCR과 경기를 벌이기 전 1루 덕아웃에서 포즈를 취했다. 플래카드에도 '즐겨라~'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두 팀은 모두 21개팀이 벌인 조별예선과 7강 토너먼트를 거쳐 결승까지 올라왔다. 양팀 모두 예선부터 4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전북 트리플 크라운 루돌프(이하 JTCR)은 2007년 12월 25일 창단했고, 안양 산타즈(이하 산타즈)는 2010년 11월 3일 탄생했다.

"그동안 운이 좋았겠죠!" 경기가 시작 전만 해도 산타즈의 우승을 예상하는 관계자들은 거의 없었다. 대회 팸플릿에 밝힌 산타즈의 2014 목표도 ‘8강’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산타즈의 전력은 상대적으로 탄탄했다.

마운드에서는 투수 겸 감독인 강선희가 정교한 컨트롤로 JTCR의 타선을 요리했고, 수비에서도 송구와 포구 능력 등에서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1회초 1점을 얻으며 산뜻하게 출발한 스타즈는 4회초 4안타 1볼넷과 상대 배터리의 실수 등을 묶어 대거 7점을 얻었고 6회초에도 한 점을 보태 9-0까지 일방적으로 앞섰다. 6회말 뒤늦게 터진 JTCR의 타선에 3점을 내줬지만 고사성어처럼 말 그대로 ‘괄목상대’한 모습이었다.

창단후 3년반 동안 단 1승, 그러나 최근 2개월간 5연승으로 정상 헹가래 

▲ 안양 산타즈 선수들이 우승 직후 강선희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산타즈에게 이날 우승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는 그간의 기록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산타즈의 블로그에 있는 박원준 총감독의 ‘아톰이야기’에는 지난해 거뒀던 창단 첫승과 관련한 감격의 순간이 잘 표현되어 있다.

“2013년 9월28일(토)은 안양 산타즈 역사의 한 페이지를 굵게 쓴 날입니다. ‘창단 3년만의 첫 승’...어떤 팀은 창단해서 단박에 전국대회 1승도 하고 2연승도 하지만, 우리의 1승은 그 어떤 승리보다도 값지고 귀한, 정말 떳떳한 1승이라 자부합니다!“라며, “이제 차근차근 다지며 이룬 1승을 기초로 새로운 목표 ‘10승과 전국대회 우승’을 위하여 산타즈 역사를 써 내려가는 주인공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더욱 더 열심히 뛰어주길 기대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12전 1승 11패.  당시 승리는 산타즈가 창단 이후 3년 동안 거둔 유일한 승리였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지만 또다시 승리는 요원해 보였다. 2014년들어서도 8월까지 3전 전패였다.

하지만 산타즈의 각본없는 드라마는 지난 9월 ‘2014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개막과 함께 시작됐다.

"야! 우리가 이겼다" 유격수 배지원(왼쪽)과 좌익수 박선희가 우승이 확정된 순간 환호하고 있다. 이들은 창단 4년만에 꿈에 그리던 정상의 맛을 만끽했다.

9월 20일 벌어진 블랙 캣츠와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16-8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뒤 이튿날 플라워즈 여자야구팀전에서도 16-9로 폭발하며 2연승, 5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여세를 몰아 10월 19일 준준결승전에서는 1조 1위 광주 스윙이글스에 19-16으로 신승을 거뒀고, 10월 25일 준결승전에서는 고흥 리더스를 13-11로 꺾고 대망의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11월 15일 결승에서 마침내 JTCR을 꺾고 정상의 기쁨을 맛본 것이다.

이번 LG배 이전의 통산 기록은 15전 1승 14패. 2014년 시즌 목표를 세울 때도 많이 잡아 ‘3승’이었다. 그런데 지난 2개월동안 무려 5연승을 했으니 ‘괄목상대’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만 27세의 어린 감독, 그러나 치밀한 준비와 전략으로 팀 조직력 배양에 성공  

▲ 결승전에서 선발투수 겸 3번타자로 나선 강선희 감독은 6이닝 3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퓨처리그 최우수선수상과 타격상 2관왕의 영광도 함께 차지했다.

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올해 산타즈의 비약적인 성장에는 강선희 감독의 지도력이 절대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JTCR과의 결승전에서 완투승을 거둔 강선희 감독은 올해 1월부터 박원준 총감독으로부터 팀 지휘권을 물려받았다. 적극적으로 사양했지만 박 총감독은 “여자야구팀은 여자감독이 지휘하는 게 맞다”며 강 감독에게 중책을 맡겼다.

클럽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여자야구팀은 야구가 좋아서 모인 다양한 계층의 선수들로 이뤄진다. 취미로 하는 일이고, 주로 회비를 걷어 팀을 운영한다. 자연히 장비나 운동시설 등 모든 게 열악하다. 이렇다 보니 감독이라는 자리는 허드렛일부터 훈련계획 수립, 작전 지휘까지 온갖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 강선희 감독이 JTCR의 마지막 타자를 잡은 뒤 유유정 포수에게 껑충 뛰어올라 감격적인 포옹을 하고 있다.

우완투수인 강 감독은 1987년생으로, 만27세다. 반면 26명으로 이뤄진 안양 산타즈는 막내와 맏언니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강 감독보다 어린 선수는 8명뿐이다. 3분의 2가 언니다.

그럼에도 박원준 총감독이 강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데는 이유가 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은 물론 운동감각이 뛰어나고, 밝은 성격에 인화력이 좋다. 여기에 지적인 명민함까지 갖췄다.

▲ 강선희 감독이 우승을 확정지은 뒤 마운드에서 춤을 추듯 기뻐하고 있다.

강 감독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년 때까지 육상 유망주로 뛰었다. 당시 100m 12초 11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13초대를 주파한다. 여자야구팀 선수들은 체력면, 특히 주력면에서 고전한다. 이런 점에서 강 감독은 군계일학 같은 재질을 지니고 있다.

중앙대 경제학과에 합격했으나 좋아하는 스포츠를 공부하고 싶어 남서울대 스포츠경영학과로 하향 지원해 입학한 뒤 2012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체육과학연구원, SK와이버스 SQ연구소 등에서 일했다.

현재는 야구 지도자 전문 프로그램인 베이스볼아카데미에서 인스트럭터 과정을 들으며 야구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현재 직업은 학원강사로 경기도 평촌에서 수학을 강의하고 있다.

산타즈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2011년 대학 과정 중 심리학 코칭법 관련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박원준 감독을 소개받아 인터뷰하러 왔다가 직접 참가하게 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야구 글러브를 만져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단박에 야구 재능을 발휘하며 지난해에는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뽑혔다.

◆ 집중적인 기초체력 강화, 수비포메이션 훈련에 '할 수 있다'는 긍정 마인드로 무장

단기간에 산타즈가 퓨처리그 정상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강 감독은 크게 네 가지를 꼽았다.

▲ 강선희 감독은 안양 산타즈의 지휘봉을 잡은 뒤 6개월 동안 베이스러닝 등 기초체력을 집중적으로 배양했댜. 이 점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첫째는 기초체력의 강화다. 특히 베이스러닝을 중요시한 게 팀 모습을 바꾼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한다. 강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육상 선수와 스포츠경영 전공자의 경험을 살려 훈련프로그램을 짰다. 기본부터 중시하자는 생각 아래 베이스러닝, 복근운동, 수비자세 등을 6개월동안 집중 훈련했다.

베이스러닝 프로그램은 4~5가지로,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을 봐가며 실시했다. 지난 10월 문을 닫을 때까지는 인덕원 웰촌스 구장에서, 그후로는 과천정부청사 운동장에서 주말에 모여 훈련했다.

나이 차이가 최대 26세까지 나지만 훈련에 열외는 없었다. 그대신 나이에 따라 스타트 라인을 달리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동료 선수들과 보조를 맞출 수 있게 했다.

처음 실시했을 때는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살살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두 낙오없이 열심히 임했다.

둘째는 비전의 제시였다. 강 감독은 “비전이 있으면 모두가 자발적으로 임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도 할 수 있다”며 만년 최하위의 ‘패배의식’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틈틈이 심어주려 노력했다.

강 감독은 이번 LG배를 앞두고 목표를 ‘3승’으로 잡았다.  그동안 1승밖에 거두지 못한 최약체팀이 세운 목표로는 비웃음을 살 만했다. 하지만 지난 8월 LG배 대진표를 뽑은 뒤에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찾아왔다.

셋째는 LG배를 앞두고 행한 수비 포메이션 가상훈련이 적중했다. 경기 실제 상황에서처럼 주자를 누상에 놓고 송구와 포구, 상대의 주루플레이에 대비한 수비를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덕분에 이번 대회에서 예전과 비교해 몰라볼 정도의 안정된 수비로 이어졌다.

▲ 안양 산타즈 선수들은 가족처럼 하나로 뭉쳐 있다. 승패를 떠나 같이 뛰고 땀 흘리며 '즐기는 야구'를 통해 팀워크를 다졌다.

넷째는 가족같은 분위기가 조직력을 키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하면 일부가 “힘들어 못해” “뭘 그렇게까지 해" "싫어” 등 불만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분출해 팀분위기가 깨지곤 했다. 하지만 팀분위기를 해치던 몇몇 멤버가 떠나고 그대신 야구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선수들이 가세하면서 팀 분위기는 긍정 마인드로 바뀌었다.

강 감독에게 JTCR을 상대로 완투승을 거두며 승리를 이끈 비결을 묻자 “투수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자신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 나는 팀원을 믿고 던졌다. 내가 실수해도 수비수들이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굳은 믿음으로 긴장하지 않고 던진 게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조직에 대한 믿음이 승리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승리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가지고, 6개월의 기초체력 강화 훈련과 3개월의 수비 포메이션 훈련을 했고, 팀원들이 화합하게 되면서 자연히 탄탄한 체력을 갖게 된 것이다.

강 감독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클럽팀들이 참가하는 홍콩국제여자대회에 나가 세계 선수들과 겨뤄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1부 격인 챔프리그에 올라가 당당히 강팀들과 겨루는 것이다.

“내년은 무리겠지만 내후년에는 챔프리그 4강안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강 감독은 이날 우승과 함께 또다른 비전과 목표를 향해 도전을 시작했다. <계속>

 

[SQ스페셜] 女야구 안양 산타즈㊦, '9회말 투아웃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 도 함께 보세요^^

 

ryus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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