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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女야구 안양 산타즈㊦, '9회말 투아웃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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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女야구 안양 산타즈㊦, '9회말 투아웃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4.11.17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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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글 류수근 · 사진 최대성 기자] 안양 산타즈는 2010년 11월 3일 창단했다. 안양은 물론 주변의 과천·의왕 지역까지 '야구를 사랑하는 여자들'로 구성됐다.

지난 15일 LG배 퓨처리그 결승전에서 우승한 뒤 환한 얼굴 속에 짙은 추억과 회한을 되새긴 이가 있었다. 바로 박원준(55) 총감독이다.

그는 말이 총감독이지 프로야구팀이라면 구단주나 마찬가지다.  산타즈를 디자인하고 설립하고 선수들을 모으고 선수들에게 야구가 무엇인지,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가르쳤다.

▲ 박원준 총감독이 15일 익산시 야구장에서 벌어진 JTCR과의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박 총감독은 4년전 창단 당시부터 '즐기는 모범야구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배재중·고교와 중앙대에서 선수생활을 한 박 감독은 현재 한국리틀야구연맹 기획이사 겸 심판이사를 맡고 있다. 올해 한국리틀야구가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는 데에 일조한 숨은 공로자다.

퓨처리그 우승 직후 박 감독은 “강선희 감독이 정말 잘했다. 어린 나이에 다양한 연령층의 선수를 이끌며 속앓이도 많았을 텐데 모두를 아우르며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움직인 게 오늘의 기쁨을 만들었다”며 모든 공을 감독과 선수들에게 돌렸다.

팀 창단하고 키워온 박원준 총감독, "즐기면서 이웃과 함께 하는 모범야구단이 목표"

산타즈의 영문 이름은 ‘레이디 산타즈(Lady Santas)’다. 지난 4년 동안 온갖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전국대회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성실한 ‘모범야구단’이다. 매년 성탄절 때는 안양의 결손가정을 돕는 ‘몰래산타’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산타즈는 창단목적부터 눈에 띈다. '즐거운 야구도 하며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하는 멋진 여자산타로 활동한다'고 밝히고 있다. 응원구호도 재미있다. ‘What time is it? Santas~Game Time!’이다. 해석하자면 ‘지금 몇시?’라고 선창하면 ‘산타스, 게임 타임’으로 후창한다.

창단목적과 응원구호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안양 산타즈는 ‘즐기는 야구’ ‘이웃과 함께 하는 야구’를 추구하고 있다.

▲ 박원준 총감독이 결승전을 앞두고 산타즈 선수에게 배팅볼을 던져주고 있다.

이날 결승전이 벌어지기 직전, 박 총감독은 이같은 산타즈의 정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경기가 끝난 뒤 졌다고 인상 쓰고 울고 그러면 안된다. 이기고 그러면 괜찮지만”이라며 “경기를 즐겨라. 우승은 못해도 좋다”고 강조했다. 지나친 승부욕을 경계하는 지시였다.

박 총감독은 “여자야구팀인 만큼 여자가 중심이 되어 팀을 운영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강선희 감독에게 작전지시 등 모든 것을 일임했다.

하지만 지난 4년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가장 큰 충격은 창단 직후 1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창단멤버 대부분이 팀을 떠나버렸을 때였다. 팀원들에게 배신감이 컸지만 이후에도 팀원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박 총감독은 학사장교 출신으로 기갑부대 지휘관까지 지내다 10년전 소령으로 전역했다. 군 시절에도 팀원들의 사기를 중요시 여겼고, 그 결과 어떤 부대를 맡아도 종합체육대회 등에서 1위를 이끌 수 있었다. 언제나 해답은 “즐기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 박 총감독의 부인 이미라 씨, 50대 나이에도 직접 산타즈 유니폼 입고 적극 내조

'우리는 야구 부부!' 박원준 총감독은 부인 이미라 씨(오른쪽)의 이해와 내조없이는 오늘날의 안양 산타즈가 없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총감독의 가정은 전형적인 ‘야구 가족’이다.

박 총감독이 산타즈를 창단하고 지금까지 성장시킬 수 있었던 데는 부인 이미라(53) 씨의 넓은 아량과 적극적인 내조없이는 불가능했다.

남편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이해해 준 것은 물론, “나도 직접 야구를 해보고 싶다”며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산타즈의 유니폼을 입었다.

LG배 대회 팸플릿에도 이미라 씨는 당당히 선수로 등록돼 있다. 포지션은 투수, 투타는 좌투좌타, 배번은 21번이다.

박 감독은 뒤늦게 야구를 하겠다는 아내의 바람을 선뜻 받아들였다. 주말에 시간을 빼앗기는 여자야구단의 특성상 부부가 함께 할 시간은 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야구를 한다면 아내와 같이 할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 부인 이미라 씨는 늦은 나이에도 산타즈의 유니폼을 직접 입고 선수들과 격의없이 호흡하고 있다.

이미라 씨가 생소한 야구와 접한 뒤 투수를 해보겠다고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둘째 아들 지훈 군은 현재 중앙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박 감독은 내야수 출신이지만 아들의 포지션은 투수다. 이미라 씨는 투수인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싶어 마운드에 섰다.

그러나 나이 탓에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날 결승전에도 덕아웃에서 팀의 일원으로서 목청껏 응원했지만 마운드나 타석에는 서지 못했다. 하지만 산타즈의 선수로 훈련하다 보니 아들의 애로사항과 심리를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미라 씨는 지난 11월 4일 추돌사고를 당해 목이 아픈 상태지만 남편과 함께 전날 밤 익산으로 내려와 유니폼을 입고 동료 선수들과 함께 호흡했다.

박 총감독은 이번 대회를 보면서 “우리 선수들이 이제 야구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평가하며, “그러나 아직 챔프리그 팀들과의 실력 차는 크다. 마라톤을 준비하듯 달릴 수 있는 힘을 더 키워야 한다”고 부족한 점을 진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지금까지 즐겁게 해왔다. 앞으로도 즐기면서 경기 속에서 답을 찾을 것이다. 이제 통산 6승을 했으니 10승을 향해 뛸 것이다. 한국여자야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모범팀이자 대표팀의 주축 선수를 배출할 수 있도록 팀을 계속해서 뒷바라지해 나가겠다”고 다부진 목표를 다졌다.

◆ 배지원, 캐나다에서 대회 참가한 뒤 결승전 직후 다시 출국 '태평양도 못막는 야구 열정'

'태평양 쯤이야!' 결승전 1번타자 겸 유격수로 출전한 배지원 선수. 공수주 3박자를 갖춘 그는 이날 경기 직후 캐나다로 떠나기 위해 서둘러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여자야구팀은 순수 야구동호인들이 모여 만든 클럽팀이다. 이들은 오로지 야구가 좋아서 모여 오늘도 치고 던지고 받고 달린다.

입단하기 전에 야구를 즐겨 봤다고 하더라도 직접 플레이해 본 선수는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해도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야구를 접할 기회나 여건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야구 사랑은 남자들 못지 않다. 어쩌면 그들보다 더 열정적일지 모른다.

15일 JTCR과의 결승전에 나선 산타즈 배지원(27)의 야구사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는 이날 경기에서 리드오프인 1번타자로 나서 팀이 거둔 3득점 중 2득점을 올렸고 ‘수비의 핵’인 유격수로서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다. 그는 말그대로 공수주에 능한 만능 플레이다. 그가 없었다면 산타즈의 우승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날 배지원은 우승이 확정된 뒤 감격을 누릴 시간도 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부모님의 승용차 편으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오후 5시부터 진행된 시상식에서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 만능 스포츠맨인 배지원은 유격수 수비에서도 안정된 포구와 송구 능력, 풋워크를 자랑한다.

배지원이 서둘러 경기장을 떠난 이유는, 이날 오후 6시30분발 캐나다 밴쿠버행 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해서였다.

중학교 시절 캐나다로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밴쿠버의 유명대학인 UBC에서 사이언스를 전공했다. 그는 이번 대회 참가를 위해 2개월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현지에서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 이날 꼭 출국해야 했다.

결승전을 마치고 인천공항까지 가는 건 무리일 듯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해 참가허락을 받았다.

딸의 열정을 이해하는 배수한, 이연종 씨 부부는 외할머니와 함께 대전에서 내려와 딸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딸을 픽업해 공항으로 향했다.

어머니 이연종 씨는 “지원이는 어릴적부터 다재다능했다. 머리도 좋았고 영어도 잘했지만 운동신경이 탁월했다. 그동안 육상, 태권도, 배드민턴, 골프 등의 운동을 했는데 공부를 위해 그만뒀지만 뭐든지 집중력이 뛰어났다. 캐나다에서 주니어골프 선수로서는 75타까지 쳤다”고 말했다.

 '9회말 투아웃'의 스릴, "야구는 인생을 닮았잖아요!"

"왜 야구가 좋냐고요?" 배지원은 야구를 통해 짜릿한 인생을 배우고 있다.

배지원은 발랄한 성격에 유머 풍부한 입담까지 겸비해 산타즈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캐나다 현지에서는 교회 소프트볼팀 선수로도 활약하고 있고, 주 야구팀 2군에 들어가기도 했다.

2년전 제약회사에 취직해 귀국한 뒤 산타즈와 인연을 맺었으나 지난해 겨울 캐나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LG배를 앞두고 국내에서의 업무도 겸해 다시 귀국했다.

무엇이 그를 야구에 이처럼 미치게 할까?

야구의 매력을 묻자, 배지원은 “9회말 투 아웃, 야구는 끝나기 전까지는 모르잖아요. 언제든 뒤집힐지도 모르잖아요”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산타즈의 좋은 팀분위기도 매력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캐나다로 출국했으니 이제 산타즈를 정말로 떠나는 걸까?

“앞으로도 시간이 맞으면 언제든 다시 함께 해야죠.”  배지원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과 야구에 대한 열정을 모두 불태우고 있다. <끝>

 

[SQ스페셜] 女야구 안양 산타즈㊤, LG배 퓨처리그 우승 비결은 '즐기는 모범 야구' 도 함께 보세요^^

 

ryus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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