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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김연아와 같은 '멘탈갑' 뒤엔 스포츠 심리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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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김연아와 같은 '멘탈갑' 뒤엔 스포츠 심리학이 있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3.07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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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 박사 "선수 자신감 고취, 최고의 경기력 발휘 돕는 학문"

[300자 Tip!] 스포츠는 강한 긴장감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선수들의 심리 상태는 경기력과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30여년동안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과 상담해왔던 김병현(62) 박사는 스포츠 심리학은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최고의 심리상태로 만들어주기 위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김병현 박사가 얘기하는 스포츠 심리학의 세계와 나아가야 할 발전방향을 함께 들어본다.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중요한 상황에서 저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다니요. 안타깝습니다. 저런 실수를 하는 선수가 아닌데 말이죠."

스포츠 중계를 관전하다 보면 종종 이런 얘기를 듣곤 한다. 그리고 실수를 자책하며 고개를 숙이는 해당 선수의 모습이 TV를 통해 나온다. 팬들은 실수를 한 선수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그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패배로 이어지면 비난의 수위는 더욱 거세진다.

 

▲ 김병현(왼쪽) 박사가 지난해 12월 체육과학연구원에서 함께 정년퇴임한 이순호 박사와 함께 꽃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체육과학연구원 제공]

평소 잘하던 선수가 갑자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예는 의외로 많다. 소치 올림픽에서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의 강인함을 보여준 스벤 크라머가 정작 4년 전 밴쿠버 대회에서는 코스를 잘못 타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실격당하기도 했다.

극도의 긴장감에서 자신의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력이 흔들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경기가 펼쳐지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오랜 기간 많은 노력을 했다는 생각, 그리고 쏟아지는 팬들의 기대감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독이 되는 셈이다.

■ 자신감을 찾아주고 불안요소를 없애주는 심리 치료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느끼는 긴장과 불안 요소를 최대한 없애주고 자신감을 고취시킬 수 있는 학문이 바로 스포츠 심리학이다.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됐고 우리나라 역시 1980년대에 본격 도입돼 3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김병현 박사는 바로 우리나라 스포츠 심리학의 '산 증인'이자 최고의 권위자다.

"스포츠 심리학은 운동제어, 운동학습, 운동발달, 응용스포츠심리, 운동심리 등 다섯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스포츠 심리학이라고 부르고 선수들에 대한 심리치료를 하는 것은 응용스포츠심리에 해당합니다.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갖춰야 할 심리상태와 훈련 때 심리상태 등을 연구합니다. 선수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의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프로골퍼 장하나(22·BC카드)는 극심한 슬럼프에 선수생활을 그만 둘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던 상황에서 김 박사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 김병현(왼쪽에서 두번째) 박사가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탁구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체육과학연구원 제공]

어렸을 때부터 25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를 자랑하며 '장타소녀'로 각광을 받았던 그는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A)에 입문한 뒤 좀처럼 제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프로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김 박사의 상담을 받고 나서 지난해 KLPGA 다승왕, 상금왕을 휩쓸며 대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장하나가 "골프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큰 심적 부담을 겪었는데 태릉선수촌에서 심리 치료를 하시는 김병현 박사님께 긍정적인 마인드를 배워 이겨낼 수 있었다"며 김 박사를 거론하기도 했다.

장하나 말고도 김병현 박사를 거쳐간 선수들은 무수히 많다. 김병현(35·넥센), 장재석(23·고양 오리온스) 등 프로선수 뿐 아니라 장미란(31), 진종오(35·KT), 양궁 대표팀까지 웬만한 국가대표 선수들은 모두 김병현 박사의 상담을 받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

■ 너무 생각많았던 김병현, 긍정의 표본 장미란

김 박사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던 김병현을 만났던 기억을 잊지 않는다.

"당시 김병현은 너무 생각이 많았어요. 흔히 '분석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투구에 너무 많은 분석을 해서 스스로 힘들게 하는 경우죠. 운동을 할 때 모든 동작은 하나로 이뤄져야 해요. 투구 역시 한 동작으로 끊임없이 이뤄져야 하는데 당시 김병현은 너무 잘하고 싶은 욕심에 투구 동작을 하나하나 끊어서 분석하고 던지려고 했던거죠.

또 김 박사는 장미란을 '긍정의 표본'으로 꼽았다. 장미란이 기량면에서도 우수하지만 심리상태가 너무 좋았다는 것.

"아테네 올림픽 대비를 위해 2003년에 처음 만나 런던 올림픽 때까지 함께 했었는데 생각이 유연하고 통이 컸습니다. 훈련을 하면서 코칭스태프 지시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과 노력이 뛰어났습니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장점이죠."

하지만 김 박사도 치료하기 힘든 선수가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 체육과학연구원에 재직하던 젊은 시절의 김병현 박사. [사진=체육과학연구원 제공]

"한국 양궁이 세계적인 수준이다보니 상담을 거부하며 좀처럼 고치려 하지 않는 양궁 선수가 있었어요. 지금 자신의 상태에서 뭐 하나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잘못될까봐 불안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심리적인 문제를 잡아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텐데 심리 치료를 받고 더 흔들릴까봐 불안한 겁니다."

■ 절박함보다 즐거움, 선수 문화가 바뀌었다

김 박사는 최근 선수들의 스포츠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금메달을 무조건 따야 한다는 절박함은 예전에 비해 많이 사라졌지만 자신의 운동을 즐기고 즐거워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1970, 80년대만 하더라도 선수들이나 관계자들의 목표는 오직 금메달이었죠. 메달지상주의가 만연했고 국민들도 이런 모습을 보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죠. 그러나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금메달에 대한 절박한 것은 없어졌죠. '헝그리 정신'이 희박해졌다고 할까요. 대신 동메달에도 자기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 따냈다는 즐거움이 남았죠.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죠."

■ 스포츠 심리 시장 무궁무진, 프로팀에 심리코치 둬야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김연아(24 올댓스포츠)는 팬들로부터 '김선생' 또는 '멘탈갑'이라고 불린다. 긴장이 흐르는 경기 현장에서 평정심을 찾고 자신의 경기에만 집중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심리 치료와 상담을 통해 강한 자신감과 정신력의 소유자로 거듭 났다.

이에 따라 스포츠 심리 시장의 가능성도 재조명되고 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스포츠 멘탈코치 양성과정'을 개설한 것이 좋은 예다. 김 박사도 프로구단에 전문 심리전문 코치를 둬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김병현 박사는 선수들의 긍정적인 심리상태가 경기력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향후 스포츠 심리 전문 코치 등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팀마다 심리학 전문 코치를 둡니다. 개인 종목을 하는 프로선수들도 따로 전문 코치를 초빙하곤 하죠. 우리나라도 앞으로 심리 코치를 두는 경우가 많아질 겁니다. 풍부한 임상경험이 있어야 선수 개개인에 맞는 심리상담을 해줄 수 있는데 아직 초창기여서 경험이 풍부한 코치가 많진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선수나 팀들이 자신의 가치에 맞는 활약을 펼치기 위해 심리 코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시장성은 충분합니다."

[취재 후기] 그냥 재미삼아서 당구를 치다가도 "짜장면, 짬뽕에 탕수육 내기로 한판 어때?"라는 말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던 경험이 많을 것이다. 내기 당구에도 이럴진대 하물며 자신의 오랜 노력의 결과에 정해지는 스포츠 현장이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긴장 하나 때문에 스스로 무너져 평생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 하나만으로 경쟁해왔다면 이제는 스포츠를 즐기면서도 선수들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감과 정신력을 키워줄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하다. 스포츠 심리학이 필요한 이유다.

 

★ 김병현 박사는 누구?

전북대학교 체육교육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지난 1982년 당시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과학연구원에 들어가 32년동안 스포츠 심리학만을 연구해온 김병현 박사는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와 심리 상담을 통해 실전과 이론을 모두 겸비한 한국 응용스포츠심리학의 최고 권위자다.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긍정 심리를 심어줘 양궁 김경욱을 비롯, 역도 장미란 등이 금메달을 따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대표 선수들과 감독들이 사용할 자기암시 문구를 작성해 경기력 향상을 이끌기도 했다.

30여년동안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심리치료와 훈련을 담당하며 한국 스포츠스타 심리치료 1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한 뒤에도 KT 스포츠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서로는 <양궁훈련지도서>와 <스포츠 심리학>과 함께 30여년동안 국가대표 선수들의 심리 치료 및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국가대표 심리학>이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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