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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스포츠 인권,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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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스포츠 인권, '사람이 먼저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2.12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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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3.0 시대의 스포츠 인권] (상) 무엇이 문제인가...폭력·성폭행 외 차별·학습권 침해 만연

[300자 Tip!] 지난 10일은 국제연합(UN)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지 66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세계인권선언은 UN의 결의로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대부분 국가 헌법 또는 기본법에 내용이 각인되고 있다. 이후 1966년 국제인권규약을 통해 세계 최초로 법적 구속력을 가진 세계적인 인권 관련 국제법이 탄생했다. 세계인권선언에는 차별과 착취 및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보호와 함께 여성 및 어린이에 대한 보호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인권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람다운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스포츠 인권 역시 스포츠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스포츠인으로서 행복하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결국 스포츠 인권은 한국 스포츠의 선진화를 촉진하기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 [그림=스포츠Q 일러스트레이터 신동수] 즐거워야 할 스포츠 현장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바로 인권 침해로 인한 사건사고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폭력과 성폭력, 차별 등 각종 인권 침해 사례는 한국 스포츠를 암울하게 만들고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일방통행식의 1.0과 쌍방향의 2.0을 넘어선 현장 맞춤형 체육 정책이라는 취지의 스포츠3.0을 들고 나왔다. 또 지난 2월 현장 맞춤형 체육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문기구로 '스포츠3.0위원회'를 구성, 출범시켰다.

스포츠3.0위원회는 전문·생활·학교체육의 연계 강화 방안과 스포츠 기본권 개념 정립 및 체육관계법 정비, 체육단체 제규정 정비, 스포츠 공정성 확보 등에 대한 논의를 목적으로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향하고 있는 스포츠3.0 정책은 쉽게 말해 현장에서 요구하는 스포츠 정책을 펼치겠다는 뜻이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정해 내려보내는 정책이나 현장과 단순한 소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듣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가운데 스포츠 기본권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기본권이 바로 스포츠 인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포츠3.0위원회가 스포츠 인권에 대한 정책을 논의하겠다는 것은 역시 스포츠 현장에서 적지 않은 인권 침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고 이에 대한 개선과 대책의 필요성이 공론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는 주로 체벌이나 폭력으로 대표되고 있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구조적인 병폐와 함께 상하명령식의 구조로 인한 인권침해가 있어왔던 것이 현실"이라며 "하지만 스포츠 현장에서 이런 문제는 공공연한 비밀이거나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묵인됐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가정과 학교, 군대에서 시작된 폭력문화가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며 "스포츠계의 폭력은 지도자와 관련 스포츠 협회, 학교, 학부모의 공생과 묵인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학교에서 시작되는 스포츠 인권 침해

정희준 교수는 "스포츠 인권은 스포츠와 신체적 활동에 참여할 권리로 스포츠 기본권으로 정의할 수 있다"며 "스포츠와 인권을 세부적으로 논한다면 스포츠 선수의 인권, 체벌과 구타, 성적 침해, 스포츠에서 성평등 문제, 스포츠에서 인종차별, 스포츠 산업의 아동 노동 착취 등으로 거론할 수 있다. 나아가서 스포츠가 환경을 훼손함으로써 야기되는 환경권 침해까지 광범위하게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신체의 건강과 신체의 보존, 타인과의 교류 욕구, 놀이와 여가라는 측면에서 스포츠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려면 스포츠 인권 역시 중요하다"며 "스포츠에 참여할 권리와 함께 스포츠 활동 내에서 인권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까지 포괄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 인권"이라고 설명했다.

스포츠 현장의 인권 침해는 학교에서 시작된다. 학교 스포츠 현장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례가 바로 폭력이다. 학생선수의 인권 침해를 가장 단적으로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의 200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학생선수의 78.1%가 구타를 경험했고 학생 선수의 58.4%가 주당 1회 이상 구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정도가 지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경험 비율은 현저하게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구태가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에 의뢰해 1049명을 대상으로 스포츠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폭력 경험 비율이 2010년 51.6%에서 2012년 28.6%로 줄어들었으며 성폭력 경험 비율도 2010년 26.6%에서 2012년 9.5%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대한체육회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스포츠 현장에서 만연하고 있는 인권 침패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은 대한체육회가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기간 중 스포츠인 인권보호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비율이 떨어졌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폭력을 당하고도 대처에 소극적이었으며 상당수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폭력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폭력 근절을 위한 학부모의 인식과 참여 역시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시작된 스포츠 인권 침해가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 문제다.

2009년에는 배구 국가대표 박철우의 선수 폭행 사건이 터졌고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에서 지도자들이 선수를 폭행한 사실도 있었다. 굳이 멀리 따질 것도 없이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의 성남FC는 박종환 전 감독의 선수 폭행 파문으로 인한 자진 사퇴가 있었고 K리그 챌린지의 부천FC 역시 지난 4월 골키퍼 코치가 선수를 폭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자프로농구 춘천 우리은행의 박모 감독의 성추행 사건도 있었다. 여자컬링대표팀은 지난 3월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인권 침해가 있었다. 여자컬링대표팀 내에서 성추행과 폭언, 기부 강요 등이 밝혀졌고 결국 대한컬링연맹이 감독에게 자격정지 5년, 코치에게 영구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 폭력과 성폭행 외 차별과 학습권 침해도 문제다

스포츠 현장 인권 침해가 폭행과 성폭행 및 성추행, 폭언 등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별과 학생선수에 대한 학습권 침해 역시 명백한 스포츠 인권 침해다.

쇼트트랙 대표팀에서 알게모르게 행해졌던 '짬짜미'와 특정 선수 밀어주기, 학벌에 의한 줄서기 역시 차별의 한 예다.

▲ 국가인권위원회의 스포츠 인권 강사가 중학생 선수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인권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의하면 2012년 현재 폭력을 경험한 학생 선수들이 여전히 25%가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제공]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질적인 비리와 폭력적인 위계질서 근절, 만연해있는 폭력과 성폭행 근절, 공부와 운동의 병행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학생선수 인권 향상과 공부하는 학생상 정립'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 일부 국회의원도 학교체육법안을 발의해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위해 합숙훈련을 금하게 하고 훈련도 방과후와 주말에만 하게 하는 한편 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선수는 대회 출전을 제한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논란거리' 정도로 일축했다.

박 회장은 중앙일간지에 기고한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 칼럼을 통해 "공부 못하게 하는 것은 비교육, 반인권적이고 운동 못하게 하면 교육, 인권적이라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다고 땀을 흘리는 그들에게서 운동할 시간을 뺏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한 길이냐. 우리가 이런 문제들로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을 때 세계 스포츠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일례는 '장희진 사태'다. 2002년 5월 여자 수영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국가대표로 발탁됐던 장희진이 정상적으로 공부하면서 운동을 하고 싶다며 태릉선수촌 입촌을 거부했다가 수영협회로부터 대표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꿈을 잃은 장희진은 2003년 미국으로 떠났고 2년 뒤인 2005년 보스턴 글로브가 선정한 '올해의 수영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는 "공부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은퇴 후에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일러주지 않고 오로지 연습만 하다가 성적이 안나오면 혼나거나 구타당하는 것이 현재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현실"이라며 "대다수 학생 선수는 공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채 고된 훈련만 반복하다가 부상, 슬럼프를 이기지 못하고 은퇴한 뒤 사회로 쫓겨난다. 이후에는 속수무책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한국 스포츠에 숨겨진 이면"이라고 밝혔다.

▲ 대한체육회 등 체육계는 스포츠 인권보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 한국 스포츠 현장에서 스포츠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은 대한체육회가 시행한 스포츠 인권보호 가이드라인 공청회.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 뿌리 깊숙한 병폐를 고치지 못하면 인권 침해는 계속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즐겁게 운동하는 환경 조성을 위한 스포츠 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피해선수 보호 및 지원 강화, 공정하고 투명한 처리시스템 구축 폭력 예방활동 강화 등 3대 방향에 걸친 10대 과제를 마련했다.

특히 폭력 예방활동 강화를 위해 지도자 채용 심사시 폭력 지도자가 징계기간 중 현장에 복귀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자 등록시스템을 구축하고 리더십 우수지도자에 대한 시상 혹대, 지도자 평가시스템 개선, 운동부 민주적 운영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지도자 양상과정에서 폭력 및 성폭력 예방 등 인권교육 확대 등을 대책으로 세웠다.

그러나 스포츠 현장의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병폐를 고치지 못하면 인권 침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재영 체육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그동안 법이 없어서 스포츠 인권을 보호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학교체육진흥법에는 '학교의 장은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 및 인권보호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되어있다"고 밝혔다.

가장 대표적인 병폐가 바로 성적지상주의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이나 수상 실적이 있어야만 고교 또는 대학 등 상위 학교 진학이 가능한 학원 스포츠 시스템으로 인해 성적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운동부의 지도자들은 정규인력이 아닌 계약기간 1년 정도의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지난 9월 교육부와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인용, 대부분 전임코치가 2015년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등 처우가 상당히 열악하고 1~2년 단위로 학교와 고용계약을 체결하는데다 월 급여 역시 학부모 후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학부모들이 월급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 국가인권위원회의 스포츠 인권 강사가 한 초등학교를 찾아 스포츠 인권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제공]

1~2년 단위 고용계약 때문에 지도자들은 학생 선수들을 차근차근 기초부터 가르치기보다 당장 성적을 낼 수 있는 지도를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성적지상주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성적을 내야만 상급학교를 갈 수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도 어느 정도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사례가 많은 게 현실이다.

한선교 의원은 이에 대해 "체육지도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부조리를 끊기 위해서는 낮은 보수체계부터 고쳐야 한다. 체육계 비리는 코치들의 열악한 환경에서 비롯된다"며 "체육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코치들이 금품의 유혹 없이 생활이 가능하도록 처우 개선과 신분 보장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저생계비 수준도 못받는 코치들에게 체육계 정상화를 외치는 정책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 스포츠 인권, 언젠가 꽃피울 날을 기다리며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 스포츠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정,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채택 및 이행을 권고했다.

2007년 학생선수 인권보호 및 증진을 위한 정책 권고를 통해 엘리트 위주 스포츠 정책을 인권 친화적으로 전환하고 체계적인 학생 선수 인권 호보 대책 마련을 권고하기도 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헌장과 폭력 예방, 성폭력 예방, 학습권 보호 등으로 구성된 스포츠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폭력 및 성폭력 예방 가이드라인에는 스포츠 분야에서 발생하은 폭력과 성폭력 예방을 위해 정책 입안시 필요한 기준과 구체적인 실행 매뉴얼을 제정할 수 있는 기본 틀을 제시하고 있다.

또 학습권 보호 가이드라인은 학생 선수들에게 운동에만 강요하지 않고 전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습의 기회를 보장하라는 점과 이와 관련한 정부나 교육기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일선 지도자가 오로지 경기 성적을 이유로 신분이나 지위를 위협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 역시 학생선수 학습권 보호의 핵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공정위원회와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지난 4월 개설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승부조작 및 편파판정, 입시비리, 조직 사유화와 함께 폭력과 성폭력을 4대악으로 규정했다.

또 선수에 대한 폭력과 성폭력 근절을 위해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규정을 전면 개정, 관련 사건이 발생할 경우 행위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6개월 미만 자격정지에서 영구제명까지 양형 기준을 세분화하기도 했다. 여기에 선수 역시 지도자와 같은 양형을 적용하기로 하고 2회 이상일 경우 양형의 2배 이상 가중처벌 3회 적발시 영구 제명을 골자로 하는 '삼진 아웃제'까지 마련했다.

박근혜 정부도 지난해 출범과 동시에 발표한 국정 목표에서 '스포츠 활성화로 건강한 삶 구현'을 140대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켰다.

스포츠가 활성화되려면 그리고 건강한 삶을 구현할 수 있으려면 스포츠 현장에서 인권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스포츠를 하면서 행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스포츠가 활성화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 인권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3.0' 정책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기도 하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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