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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발레리나 김지영 "순정의 니키아로 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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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발레리나 김지영 "순정의 니키아로 빙의"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3.13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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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발레 '라 바야데르' 여주인공...발레아카데미 교장 바쁜 나날

[300자 Tip!]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다 국내로 U턴, 국립발레단의 간판스타로 활동 중인 김지영이 3막5장의 대작발레 ‘라 바야데르’에서 비운의 무희 니키아로 변신한다. 국내외에서 니키아와 감자티 공주를 두루 소화했던 그는 두 캐릭터 모두 탐날 만큼 매력적이라고 한다. 현대무용에도 관심이 많아 틈나는 대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며 예술적 동질감을 확인한다. 발레아카데미 교장으로서 무용 꿈나무 육성에 열중하며 자신의 부족함과 희열을 동시에 느끼는 요즘이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동윤(스튜디오플로어1)]

# Scene1. 지난 6~7일 ‘투 인 투’에서 김지영은 현대무용가 김보람과 플라멩코를 주제로 발레와 현대무용을 넘나들며 무대를 누볐다. 14년 전 초연 당시에는 국립발레단의 간판스타였던 김주원과 나란히 한 무대에 올라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에 맞춰 2인무를 춰 화제를 뿌렸다.

# Scene2. 오늘(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라 바야데르’에서 용맹한 전사 솔로르(이동훈)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인도무희 니키아를 맡아 순백의 튀튀(뒤집힌 우산 모양의 발레리나 의상)와 하늘거리는 실크 소재 사리를 번갈아 입은 채 슬프고도 관능적인 춤사위를 펼친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36)은 세계적인 발레스타 강수진의 뒤를 잇는 프리마돈나로 착실히 성장해왔다.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 졸업 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고, 이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게스트 프린시펄로 입단, 캐릭터 그 자체로 여겨지는 뛰어난 표현력과 발레에 최적인 아름다운 선, 테크닉을 인정받아 수석 무용수까지 승급했다. 이후 국립발레단으로 돌아와 주역 무용수로 고전과 현대무용을 아우르며 자신만의 춤 영토를 공고히 구축해오고 있다.

니키아(김지영)의 신비롭고도 관능적인 춤동작[사진=국립발레단]

 

그는 2007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내한공연 때 니키아와 감자티 역을 함께 소화해 ‘춤의 아우라’가 무엇인지 강렬하게 각인시키며 두고두고 회자됐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은 18년 만에 볼쇼이발레단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의 ‘라 바야데르’를 올렸다. 두 번째 공연을 앞둔 김지영을 예술의전당 푸치니클럽에서 마주했다. 최종 리허설을 마친 뒤라 조막만한 얼굴엔 피곤함이 묻어났다.

“강수진 단장 취임 이후 첫 작품이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많네요. 단장님이 조언을 많이 해주시니까 무용수들의 춤에서 디테일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겠죠. 이렇게 조금씩 쌓아가다보면 국립발레단만의 색깔을 구축할 수 있을 거라 여겨요. 강 단장께서 새롭게 오셨으니까 좋은 레퍼토리가 늘어갈 거란 기대도 크고요.”

‘라 바야데르’는 고대 인도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 공주 감자티 사이의 뒤엉킨 사랑과 배신, 복수, 용서를 그린다. 여주인공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극단에 서는 순정의 무희 니키아와 간교한 공주 감자티. 김지영은 상반된 두 캐릭터를 모두 연기했다. 니키아가 섬세한 감정표현을 요구한다면, 감자티는 고난도의 푸에테(한쪽 다리를 들어 다른 편 다리를 휘감듯 하면서 32회전하는 동작) 등 정교한 테크닉을 보여줘야 한다.

 

▲ 김지영이 연기해온 니키아, 오딜, 카르멘(왼쪽부터)

 

“이 작품에는 화려하면서도 난이도 높은 춤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해요. 또 정형화된 발레 동작이 아닌 자연스러운 인도 무희의 손동작 등을 표현해야 하고요. 두 캐릭터 모두 매력 있어서 감자티를 하면 니키아를 하고 싶고, 니키아를 맡으면 감자티를 연기하고 싶네요.(웃음)”

발레는 다른 예술장르와 달리 철저히 육체에 의존해야 하므로 무용수들의 수명이 짧은 편이다. 그 역시 예외일 수 없지 않을까.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발레를 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임해요. 뜻 깊고 색달라요. 소중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애틋하다고 해야 하나...물론 신체관리를 잘 해서 마흔이 넘어서도 현역 활동을 왕성히 할 수 있죠. 하지만 나이에 맞는 작품들이 있는데 나이가 많아지면 아무래도 작품 선택에 있어 한계가 생기죠. 언제까지 순수하고 아름다운 지젤을 할 순 없잖아요.”

 

솔로르 역 이동훈과 니키아 역 김지영[사진=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에서 후배 이동훈과 남녀 주역으로 호흡을 빈번하게 맞추고 있다. 이번에도 이동훈과 짝을 이룬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선생님 반, 누나 반이다. 김지영은 파트너와의 호흡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긴다. 파트너란 ‘음악을 함께 들으며 같이 호흡하는 동반자’란 것의 그의 지론이다.

“발레는 음악과 떼어놓을 수 없는 장르라 음악성이 굉장히 중요해요. 당연히 파트너는 음악에 리듬을 함께 타는 사람이니까 음악에 대한 해석이 같고, 서로에 대한 교감이 이뤄져아죠. 동훈이와는 처음에 힘들었어요. 공부했던 환경부터 달랐으니까. 파드되(2인무)는 남자가 리드해야 하는데 동훈이가 신인이라 경험이 부족했던 거죠. 당근과 채찍질을 병행했고(웃음)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지난해 12월 전통무용, 발레, 비보이가 어우러진 ‘춤이 말하다-크로스컷’에도 참여했을 만큼 그는 엄격한 클래식 발레의 틀에 갇혀있기보다 타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이나 컨템포러리 무용 레퍼토리 확장에 관심이 많다.

“무용수의 삶이 짧기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은 거죠. 다른 분야와 협업을 함으로써 저의 클래식 발레 작업에 도움이 되고, 사회성 강화에도 큰 힘이 돼요. 하하. 결국 예술이란 게 한 곳을 향해 가는 거잖아요. ‘춤이 말하다’ 때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9’의 현대무용가 이선태씨가 출연하니까 매진이 되더라고요. 관객은 ‘댄싱9’ 때문에 왔지만 그 기회로 발레에 관심을 가져 제가 출연한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했으니 그야말로 선순환 구조인 거죠.”

 

 
   

김지영은 2011년부터 국립발레단 부설 발레아카데미 교장을 겸임하고 있다. 만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가 절실히 느낀 것은 자신의 부족함과 윗사람에 대한 이해다.

“선배들이 ‘춤출 때가 가장 좋은 때야’라고 했던 말씀을 절감한다니까요. 관리와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으니 큰 수확이죠. 정규학교가 아니라 끝까지 아이들을 케어할 수 없고, 늦은 시간에 수업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 가슴 아플 때도 많고요. 다만 무용 꿈나무들이 이곳에서 발레의 기초를 다지고 무용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가지기를 바랄 뿐이죠. 나중에 성장해서 프로 무용수가 됐을 때 ‘내가 잘 배웠구나’란 생각이 들길 소망해요.”

현재 한국 무용계를 대표하는 스타 발레리나의 꿈은 소박하지만 단단했다. 자연스럽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고프다는. 잘 내린 아메리카노 향이 여전히 주위를 맴돌았다.

 

[취재후기] 약간의 쇳소리가 섞인 통통거리는 말투로 달변을 쏟아내는 김지영은 1인가구다. 비혼이냐는 질문에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되받아친다. 네덜란드에서 살던 시절, 가장 부러웠던 게 발레단에 같이 손잡고 출근하는 커플이었단다. 춤으로부터 충만함을 느끼며 사는 여자를 사로잡을 남자는 누굴까, 물음표가 떠올랐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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