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8:49 (목)
[SQ인터뷰] ② 김학범 감독, 명 지략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상태바
[SQ인터뷰] ② 김학범 감독, 명 지략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1.13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마다 해외 돌며 세계축구 흐름 연구, '4-2-3-1 전형' 국내 첫 도입…두차례 팀 리빌딩 성공

[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김학범 감독이라고 하면 대부분 '레알 성남'과 함께 했던 그를 기억한다. 일부 팬들은 김학범 감독을 '선수빨로 명장이 된 지도자'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언제나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가 처음 성남과 인연을 맺었을 당시 성남은 최고의 팀이 아니었다.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전까지만 해도 프로팀 코치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김 감독이었다. 고(故) 차경복 감독과 일면식도 없던 상태에서 수석코치가 됐다.

◆ 비쇼베츠, 그리고 고(故) 차경복 감독과 인연

김학범 감독은 프로팀이 아닌 국민은행에서 뛰었다. 1984년 K리그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국민은행은 슈퍼리그에 참가한 실업팀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 선수들은 금융권 팀을 선호했다. 은퇴 뒤에는 은행원으로 일할 수 있는 평생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본격적으로 프로로 이끈 계기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을 우승으로 이끈 아나톨리 비쇼베츠(69) 감독을 보좌해 올림픽 본선에 참가했다. 비쇼베츠 감독과 함께 하면서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 회상한다.

▲ 김학범 감독이 K리그 최고의 지략가이자 리빌딩 전문가가 된 것은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과 고(故) 차경복 감독의 영향이 크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함께 한 비쇼베츠 감독으로부터 축구에만 빠져 살아야 하는 삶을 알았고 차경복 감독과 함께 최하위까지 떨어진 성남을 리빌딩시켰다.

김 감독은 "비쇼베츠 감독은 축구만 생각하는 지도자였다. 우리나라 감독은 대외적인 업무도 봐야하지만 그는 오직 축구에만 몰두했다"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욕심있던 감독이었다. 올림픽에서 이탈리아전을 이겨 8강과 4강 진출까지 바라봤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하게 하려고 했다면 비기기 작전으로 조 2위를 노렸을 것이다. 하지만 4강까지 바라보는 입장에서 8강에서 브라질을 만나는 조 2위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결국 지면서 8강행까지 놓치고 말았지만 당시 결정은 옳았다고 본다"고 밝혔다.

2년 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차경복 감독을 만났다. 성적이 떨어질대로 떨어졌던 팀을 재건해보자는 전화를 받았다.

팀은 엉망이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3연패를 달성한 영광은 없었다. 김 감독은 "팀에 와보니 '아프리카 난민 수용소' 같았다. 그 정도로 아프리카 선수의 기량이 크게 못미쳤다"며 "드래프트를 통해 김상식 김영철 등을 뽑아 1999년 데뷔시켰다. 또 외국인 선수들도 테스트를 거쳐 선발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성적은 금방 오르지 않았지만 1999년 FA컵 우승을 계기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2000년 리그 3위로 뛰면서 정상 궤도에 올랐다. 차경복 감독과 함께 했던 리빌딩은 이후 그의 자산이 됐다.

◆ 자신에게 맡겨진 리빌딩, '레알 성남' 시대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성남은 다시 한번 3연패를 달성하며 두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3년이 지난 뒤 선수들이 대거 이적하면서 다시 순위가 곤두박질쳤다. 2004년에는 전년도까지 주전이었던 17명 가운데 11명이 빠져나갔다. 다시 리그 9위까지 미끄러졌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결승까지 올랐다.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와 원정 1차전에서 3-1로 이기고도 홈 2차전에서 0-5로 지면서 우승의 꿈이 처참하게 깨졌다. 차경복 감독은 자진 사퇴했다.

▲ 김학범 감독은 해마다 영국과 네덜란드 위주로 유럽을 돌며 세계 축구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연구하고 공부한다. 그가 K리그에 처음으로 도입한 4-2-3-1 포메이션 역시 유럽에서 배워온 것을 한국 축구 실정메 맞게 적용한 것이다.

2005년 지휘봉을 잡은 김학범 감독은 다시 리빌딩에 들어갔다. 우성용 김두현 남기일 박진섭 조병국)을 비롯해 모따를 영입한 것도 이때였다. 2004년부터 뛰었던 두두 역시 성남의 핵심이었다. 2006년에는 서동원 손대호에 이따마르까지 데려와 공격을 더욱 강화하면서 K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당시 김 감독이 들고 나왔던 것이 4-2-3-1 포메이션이었다. 이 전형은 난공불락이었다.

김 감독은 "K리그에서 포백을 쓰는 팀은 우리밖에 없었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4-2-3-1 포메이션은 네덜란드에서 막 개발된 새로운 전형이었다"며 "그러다보니 2006년 월드컵 대표팀을 이끈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4-2-3-1 포맷과 함께 최고 선수로 무장한 성남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레알 성남'이 됐다. 언제나 성남은 상대팀보다 우월한 경기를 했다.

2008년 플레이오프에서 5위까지 미끄러진 것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지만 김 감독은 매년 해외로 드나들며 세계 축구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연구하고 공부했다. 그가 K리그 최고의 지략가로 평가받는 이유다.

김학범 감독은 "비쇼베츠 감독을 보면서 2년에 한번씩은 세계 축구의 흐름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지도자 생활을 해보니 매년 가야겠더라"며 "시즌만 끝나면 곧바로 영국이나 네덜란드로 가곤 했다"고 밝혔다.

▲ 김학범 감독은 코치와 감독으로 성남을 한차례씩 리빌딩시켜 우승을 이뤄낸 경험이 있다. 지금은 기업구단이 아닌 시민구단 성남이지만 다시 한번 팀을 재편해 강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다.

◆ 삼고초려 끝에 6년만에 다시 돌아온 성남

이후 김 감독은 허난 전예(중국), 강원 FC를 거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이 됐다. 기술위원으로 2개월 일한 뒤 신문선(57) 전 성남FC 대표이사의 제의를 받고 친정팀 지휘봉을 잡았다.

김 감독은 처음에는 고사했다. 기술위원으로 선임된지 2개월만에 성남 감독으로 간다는 것은 도의적으로 맞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 대표의 계속된 설득에 김 감독도 제의를 받아들였다. 바닥까지 떨어진 팀의 문제점을 찾았고 선수들 스스로 체력 문제점을 끌어올리도록 유도했다.

김 감독은 "지금 스스로 프로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물어보라고만 했다. 이후 선수들이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였고 FA컵 정상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학범슨' 김학범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걱정과 우려는 있지만 그렇다고 물러서지 않는다. "성남을 시민구단의 전형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다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K리그 최고의 지략가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김학범 감독의 머리는 지금도 바쁘게 돌아간다. 팀 리빌딩 작업에도 박차를 가해야 하고 현재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포메이션도 구상 중이다.

4-2-3-1 포메이션을 그대로 적용할 것인지 새로운 전술을 들고 나올 것인지에 대해 묻자 김학범 감독은 "그걸 미리 가르쳐주면 재미없지"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의 웃음 속에는 성남이 올 시즌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고와 도전장의 의미가 들어있다.

[취재 후기] 김학범 감독과 인터뷰는 두번의 약속 끝에 이뤄졌다. 첫번째 인터뷰 약속일은 공교롭게도 신문선 대표이사의 사직일이었다. 현재 성남은 대표이사 자리가 공석이다. 그럼에도 성남은 김학범 감독의 요청에 따른 선수 영입을 이어가고 있다. 김 감독도 "구단주의 애정과 관심이 대단하다. 그를 믿는다"고 말한다. 현재 성남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 이 역시 성남의 2015년 성공이 기대되는 이유다.

[SQ인터뷰] ① 새 패러다임 여는 리빌딩 전문가 '학범슨'의 야망과 도전 으로 돌아가시려면.

tankpark@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