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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27) 뮤지컬 '랭보'의 베를렌느, 다시 만난 배우 김종구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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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27) 뮤지컬 '랭보'의 베를렌느, 다시 만난 배우 김종구 (인터뷰Q)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8.11.13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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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배우 김종구가 뮤지컬 ‘랭보’에서 베를렌느를 연기하고 있다. 김종구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시인의 왕’ 베를렌느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해내고 있다. 여전히, ‘좋은 배우’가 꿈이라는 김종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포츠Q(큐) 이은혜 기자] 뮤지컬 ‘랭보’는 프랑스 문단의 대표적인 인물들인 랭보와 베를렌느에 대한 이야기다.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나이’ 랭보와 ‘시인의 왕’ 베를렌느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고, 쉽게 잊히지 않을 이야기의 주인공들로 회자되고 있다.

뮤지컬 ‘랭보’에서 베를렌느를 연기하는 김종구를 지난 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뮤지컬 '랭보' 김종구 [사진= 라이브(주), (주)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 김종구의 베를렌느, 그를 채워 준 랭보

뮤지컬 ‘랭보’는 ‘랭보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을 중심에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베를렌느는 여러 번의 감정 변화를 겪는다.

김종구는 캐릭터의 변화에 맞춰 천진한 모습, 현실적인 모습, 시인으로서 고뇌하고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가 자신을 비난하는 환청을 듣고, 총을 들어 스스로를 겨누는 장면들은 그의 불안한 내면을 보여주는 단면이 되기도 한다.

“베를렌느는 사회적으로 꽤 인정받는 사람이에요. 집안도 좋았고, 시도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고, 평단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어요. 아내도 있었죠. 그런데 늘 자기 자신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는 인물이기도 해요. 아이러니하죠. 좋은 배경에도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시종일관 불안해하는 베를렌느는 랭보와 함께하는 초반 누구보다 행복해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두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시를 쓰며 웃고 떠든다.

 

뮤지컬 '랭보' 김종구 [사진= 라이브(주), (주)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랭보는 베를렌느의 시를, 베를렌느는 랭보의 시를 이해하고 인정해주며 문학적 동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반복되며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 표현된다.

“랭보는 베를렌느의 시를 이해하고 그 속에 함축된 의미를 알아주는데서 그치지 않아요. 베를렌느가 쓰고 싶어 하는 시,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를 쓰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베를렌느는 랭보에게 더 끌렸을 거예요. 제가 연기하는 베를렌느는 이미, 가족이 아니라 랭보를 선택했어요.”

뮤지컬 ‘랭보’는 랭보와 베를렌느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이를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행동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짐작하게 된다.

김종구는 랭보를 연기하는 네 명의 배우 손승원, 정동화, 박영수, 윤소호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랭보들은 소년의 해맑음과 장난스러움이 흐르는 연기를 보여준다. 김종구는 무대 위 가장 짓궂은 랭보를 묻는 질문에 “한 명을 지목하기 어렵다”고 입을 열었다.

 

뮤지컬 '랭보' 김종구 [사진= 라이브(주), (주)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랭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다 받아 줄 준비가 돼 있어요. (손)승원이는 막대기로 저를 막 때리는데, 사실 정말 아파요. 등에 업히는 것도 애드리브였고요. 그래도 다 받아줄 수 있어요. 설령 뒤통수를 때린다고 해도(웃음). 어쨌든 그런 것들이 베를렌느가 랭보에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모습을 통해 베를렌느가 이전과는 달라지고, 랭보의 해맑음에 동화돼 가는 과정이 보인다면 좋죠. 바닥에 입을 맞추는 장면도 그 연장선에서, 랭보에게 동화된 베를렌느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뮤지컬 ‘랭보’의 끝은 꽉 닫힌 해피엔딩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대로 랭보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베를렌느와 들라에는 남겨진다. 아프리카에서 랭보의 마지막 시를 발견한 베를렌느와 들라에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자신을 변화시킨 랭보를 잃은 베를렌느가 파리로 돌아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한 의문은 관객들의 몫으로 남았다. 실제 역사적 사실을 떠나 ‘랭보의 마지막’ 이후 베를렌느의 삶을 김종구는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아마도 베를렌느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들어요. 제가 연기하는 베를렌느는 우선 가족들에게 돌아갔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뻔뻔하고, 그렇게 살아 온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가족들에게 용서받지 못했을 거고, 버림받았을 거예요. 그리고는 글을 더 이상 안 썼을 것 같아요”

 

뮤지컬 '랭보' 김종구 [사진= 라이브(주), (주)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 여전히, 무대 위에서 행복한 배우

어느덧 데뷔 13년차가 됐다. ‘지하철 1호선’, ‘김종욱 찾기’, ‘빨래’, ‘모범생들’, ‘트루웨스트’, ‘여신님이 보고 계셔’, ‘나쁜 자석’, ‘비스티보이즈’, ‘구텐버그’, ‘스피킹인텅스’, ‘사의 찬미’, ‘로기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등 대학로를 대표하는 많은 작품들에 출연해 왔던 김종구는 여전히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다.

2018년 올해만 ‘랭보’, 베니싱‘, ’미인‘, ’스모크‘, ’트레인스포팅‘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대학로에서 여전히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사람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종구에게는 여전히 ’무대가 생명력‘이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힘들죠. ‘랭보’가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거든요. 공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공연 끝날 때 쯤 되면 땀이 엄청나게 흘러서 다 젖을 정도로요. 그래도 무대에서 이 인물에 집중하고 연기하는 건 정말 행복해요”

 

뮤지컬 '랭보' 김종구 [사진= 라이브(주), (주)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올 한해 쉴 틈 없이 달려 온 김종구는 현재도 두 작품을 동시에 소화 중이다. 무대 위에 서는 것이 가장 행복한 배우에게도 적절한 휴식은 꼭 필요하다.

“쉴 때는 당구를 치거나 당구 관련 인터넷 방송을 봐요. 그런 걸 보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요. 그런걸 보다가 뮤지컬 배우인 제 일상을 담은 방송을 해볼까도 생각했었다니까요?(웃음). 라이딩을 하기도 하는데 지금은 너무 춥기도 하고, 멀리 나갈 정도로 시간도 없어서 안 하고 있어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감정을 소모하는 직업이라 그런지 잘 안 찾게 되더라고요”

[취재후기] 무려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당시 김종구는 ‘김종구’라는 이름을 들으면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배우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네요”라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이번 인터뷰에서 김종구는 “여전히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그렇게 되기를, 지금 더 간절하게 원하고 있어요”이라는 말도 따라 나왔다. 2년 사이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그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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