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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엉덩이가 고생하는 배구를 아시나요'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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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엉덩이가 고생하는 배구를 아시나요' (上)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4.30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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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의 좌식배구 실업팀 천안시청..."재미없을 것이라는 건 편견 "

[300자 Tip!] 배구 열기가 이토록 뜨거운 적이 없었다. 이달초 막을 내린 2014~2015 V리그 정규리그 관중은 46만1625명으로 지난해 37만4600명보다 23.2%나 증가했다. 시청률 또한 1.03%를 기록, 지난 시즌 0.95%에 비해 0.08% 포인트나 증가했다. 공을 깨부술 듯한 초강력 스파이크와 블로커들을 요리조리 따돌리는 세터들의 토스워크를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 좀 색다른 배구를 소개해보려 한다. 일반배구에 버금가는 감탄사가 나올 것이라 보증하겠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니 좌식배구팀이 있다. 그것도 ‘배구수도’라 불리는 천안에 말이다.

[천안=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팡!”

스파이크 소리가 체육관을 쩌렁쩌렁 울린다. 2인 1조로 짝을 이뤄 리시브 훈련을 하고 있다. 일반 배구 즉, 입식배구와 차이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천안시청 좌식배구단 정연화(59) 감독이 취재진을 반갑게 맞으며 한 마디를 건넨다.

▲ 블로킹과 바운드된 볼 처리 훈련을 하고 있는 선수들. 입식배구 못지 않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경기하는거 보시면 박진감이 느껴지실겁니다. 어깨 근육이 굉장히 발달했죠?”

이내 코트 한쪽으로 모이더니 세트플레이를 보인다. 한 선수가 반대편 코트에서 올려준 서브를 올려 시간차, 이동공격, 각종 속공에다 백어택까지, 개인시간차를 제외한 모든 공격을 선보인다. 일반배구에 버금가는 스피드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충남 천안 동남구에 자리한 장애인종합체육관을 찾아 국내 유일 좌식배구 실업팀 천안시청을 만났다.

◆ 엉덩이로 하는 '아름다운 배구' 

“엉덩이로 이동해야하니까 물집이 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래도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몸을 날립니다.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을 보면 아름답다고 해야 맞을 것 같아요. 그들의 열정을 보면 지도하며 매력을 느낍니다.”

현대건설에서 뛰고 은퇴한 정 감독은 군포시생활체육배구팀에서 선수와 지도자를 병행하다 좌식배구의 존재를 알게 됐다. 군포시 좌식배구단 감독, 2010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코치를 거쳐 천안시청과 연을 맺게 됐다.

공을 다루는 솜씨들이 보통이 아니다. 손으로 한번 땅을 짚은 후 미끄러지듯 움직여 공을 살려낸다. 페인트성의 공도 허리를 완전히 굽히거나 다리를 찢어 악착같이 걷어올린다. 언더토스, 오버토스, 스파이크 시 스냅을 주는 동작 모두가 감탄을 자아낸다.

▲ 한쪽 다리가 없어도 이들은 악착같이 공을 걷어낼 수 있다. 다리를 찢고 허리를 숙이고 드러누우며 어떻게든 공을 살리고 본다.

최원석(40)은 “권투선수가 한 경기를 뛰면 3~4kg 빠진다 하던데 우리도 똑같다. 그만큼 쉽지 않은 운동”이라며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마치 탁구를 보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터인 그는 블로커를 따돌리기 위한 다양한 토스워크를 구사한다.

이태석(45)은 “개인종목이 아니지 않나. 희생정신을 발휘해 하나로 뭉쳐야 한다”며 “최고 공격수 한명으로는 이길 수 없다. 골고루 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재미없을 것이라는 건 편견”이라며 “자원봉사자들이 따라해보더니 깜짝 놀라더라”는 일화를 들려줬다.

◆ 좌식배구가 바꾼 인생 스토리 

이태석은 교통사고로 하체를 잃었다. 비장애인일 때 수영, 볼링 등 스포츠를 즐겨하던 그는 장애인이 된 후 한동안 자신과 적합한 종목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것이 좌식배구. 그는 “척추장애, 소아마비 등 중증 장애를 가진 분들이 배구를 하고 있더라”며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 정연화 감독은 "모든 고통을 이겨내는 선수들을 보면 아름답다"고 좌식배구의 매력을 어필했다. 그는 지난해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 대표팀을 지휘했다.

국가대표 공격수 김성훈(40)도 좌식배구를 통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체력이 약해서 잔병치레가 많았던데다 학창시절 장애 때문에 소심했었다”며 “운동을 시작하고 많이 달라졌다. 동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성이 발달했다”고 귀띔했다.

박연재(29)는 고교 때까지 배구를 했던 선수. 2003년 계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쳐 배구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처음에는 어떻게 내가 이런 것을 하나 꺼려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이제는 그때 못해본 배구를 마음껏 하고 있다. 국가대표로도 나설 수 있어 영광”이라고 전했다.

그는 좌식배구 또는 스포츠활동을 망설이고 있는 장애인을 향한 메시지도 던졌다. 자신처럼 한순간 사고로 장애인이 된 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조언이다. 박연재는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워보일 수 있는 것을 이해한다.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면서 “내려놓으면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 천안시청은 지난해 전관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극강 전력을 보유한 팀이다.

배구명문 대전 중앙고를 나와 선수들을 지도했던 최원석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교통사고로 팔꿈치를 다쳐 좌식배구에 입문하게 됐다. 최원석은 “비장애인일 때 장애인은 무조건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며 “처음에는 이들과 함께하는게 창피했다”고 털어놨다.

2년째 동고동락하며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최원석은 “몸만 불편할 뿐 똑같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끼칠까 걱정하는 분들”이라며 “늘 보고 배운다. 함께 운동하면서 생활하면서 땀흘리면서 매 경기를 마칠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 실업팀 창단 절실, 잠재력 충분하다 

천안시청은 명실상부한 좌식배구 명가다. 지난해에는 6개 대회를 거머쥐며 전관왕에 올랐다. 2011년 4월 최초로 돛을 올린 국내 유일 실업팀. V리그 최고 인기팀 현대캐피탈의 연고지라는 점도 창단에 큰힘이 됐다.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다.

▲ 김성훈은 좌식배구를 통해 소심한 성격을 고쳤다.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사회성이 좋아지게 됐다.

그렇지만 독주체제를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정 감독은 “인천, 고양, 수원, 정읍 등의 클럽들은 천안시청을 무너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며 “우리를 이겨야 실업팀 창단의 명분이 생기지 않겠나. 그렇다고 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전국대회에 나오는 좌식배구팀은 남자 12개, 여자 5개 팀 정도다. 정 감독은 “하루빨리 실업팀이 더 생겨서 한국 좌식배구의 경기력이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남녀 대표팀은 지난해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나란히 4위를 차지했다. 여자의 경우 처녀 출전이었다.

이란, 이라크, 중국이 좌식배구 강국이다. 이란과 이라크는 전쟁이 워낙 잦은 국가라 장애인스포츠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경우 인적자원이 풍부해 비장애인 장애인이든 어떤 종목을 막론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강국이다.

최원석은 “이란, 중국같은 경우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30대 초반의 선수들인 반면 한국은 40대 선수들이 중간 연령대”라며 “실력에서 지는게 아니다. 세트를 거듭할수록 체력에서 밀린다. 젊은 선수층을 보강하면 우리도 2~3년 안에 중국과 이라크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좌식배구는 속공, 시간차, 이동 등 입식배구와 다를 바 없는 다양한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 물론 숙련된 팀에 한해서다.

이태석은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특수체육과의 경우 교과과정에 좌식배구를 비롯한 장애인스포츠 체험과정을 넣어 학생들이 이를 체험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장애 등급 규정을 완화해 좌식배구의 진입장벽을 낮추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 좌식배구는 

가로 5m, 세로 6m의 직사각형 코트에서 벌어진다. 네트 높이는 남자 1.15m(입식 2.43m), 여자1.05m(입식 2.24m)다. 일반배구가 발의 위치에 따라 판정이 결정되는 반면 좌식배구는 엉덩이 즉, 둔부의 위치가 중요하다. 서브에 대한 블로킹이 허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절단, 단축, 근력, 관절운동, 근력손실 등의 장애를 가진 D등급(Disabled) 선수와 소아마비 등 최소장애를 보유한 MD등급(Minimally Disabled)의 선수들이 함께한다. 6명 중 5명은 D등급, 1명의 선수가 MD등급으로 이뤄져야 한다.

▲ 국내 유일의 좌식배구 실업팀 천안시청.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백영길, 최원석, 이태석, 송영주, 정연화 감독, 박연재, 손기석, 이옥철, 김성훈.

[취재 후기] 장애인과 관련한 취재를 일주일 간격으로 연달아 하게 됐다. 한팔 장애인 야구선수 김성민으로부터 받았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좌식배구 선수들이 크나큰 선물을 선사했다. 2015년 4월은 훈훈함이 가득한 달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휠체어 농구처럼 좌식배구도 장애인스포츠 구기종목의 한축으로 발돋움하길 바란다. 조그마한 직사각형 코트에서 오고가는 공의 움직임은 정말이지 ‘예술’이었다.

[SQ스페셜] '국내최강' 천안시청 좌식배구단 소개합니다 (下) 로 이어집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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