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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 유니폼-매직펜 수영모, 창피함은 선수 몫? 수영연맹 '해도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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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 유니폼-매직펜 수영모, 창피함은 선수 몫? 수영연맹 '해도 너무하다'
  • 김의겸 기자
  • 승인 2019.07.1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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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대한수영연맹의 무능은 어디까지일까. 늑장 행정 탓에 안방에서 열리고 있는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브랜드 로고를 테이프로 가린 일반 판매용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제적 망신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4일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다이빙 남자 1m 스프링보드 결승 경기가 광주광역시 남부대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렸다.

한국 다이빙 간판 우하람(21·국민체육진흥공단)은 영문 국가명 'KOREA'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은색 테이프를 붙인 유니폼 상의를 입고 경기장에 나타났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제 나라 이름을 단 유니폼을 착용해 더 눈에 띄었다.

▲ (좌)수영연맹의 늑장 행정으로 은색 테이프로 브랜드 로고를 가려야만 했다. (우)이후 천을 덧댄 뒤 'KOREA'를 새긴 임시 유니폼을 지급했고, 정식 유니폼은 21일은 되야 지급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우하람의 유니폼에서 테이프로 가려진 부분은 제조사 로고다.

연맹의 늑장 행정에서 기인한 일이다. 연맹은 지난해 말 A사와 용품 후원 계약이 끝난 뒤 새 후원사를 물색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이사회에서 후보 업체들에 대해 일부 이사들이 부적합 의견을 내 선정이 무산됐다. 우여곡절 끝에 연맹은 지난 1일 A사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 개막을 불과 열흘 정도 앞둔 시점.

문제는 이미 6개월 전 연맹과 후원 계약이 종료된 A사가 'KOREA'가 새겨진 국가대표용 유니폼 제작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연맹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A사 의류를 급하게 구해 선수단에 지급하는 촌극을 벌였다. 

국가대표가 'KOREA' 없는 유니폼을 입지 못한 걸로 끝났으면 다행일까. 의류에 있는 A사 로고가 국제수영연맹(FINA) 광고 규정에 부합하지 않기까지 했고 우하람은 급히 테이프로 로고를 가린 채 경기장에 나서야 했다.

매직펜으로 나라명을 적은 수영모를 착용한 선수도 있다.

오픈워터 대표팀 백승호(29·오산시청)와 조재후(20·한국체대)는 지난 13일 오픈워터 경기에 하마터면 출전하지 못할 뻔했다. 규정에 맞지 않는 수영모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오픈워터는 호수나 강, 바다, 수로 등 야외에서 펼쳐지는 수영 경기다. 백승호와 조재후는 남자 5㎞ 경기를 앞두고 수영복과 손발톱 검사를 받다 수영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백승호는 "너무 황당해 아무런 생각도 안 났다"며 "첫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기회가 날아갔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 오픈워터 백승호(사진)는 급하게 받은 임시 수영모에 매직펜으로 'KOR'이라고 쓴 뒤에야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황당하긴 마찬가지. 코치들은 급하게 지역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마크가 없는 수영모를 공수했다. 수영모는 경기 시작 30여분을 남기고 퀵서비스를 통해 대표팀에 전달됐고, 자원봉사자가 갖고 있던 매직펜으로 'KOREA'라고 적은 뒤 급하게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급하게 준비됐다보니 사이즈도 맞지 않아 흘러내리는 수영모를 붙잡고 경기해야만 했다. 백승호는 경기를 마친 뒤 “수영모가 계속 머리에서 벗겨졌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연맹의 안일한 일처리에 대한 부끄러움은 왜 선수 몫이어야 할까. 한국에서 처음 치르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인 만큼 누리꾼들은 물론 스포츠 팬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연맹은 지난 15일 부랴부랴 로고 자리에 천을 덧댄 뒤 그 위에 'KOREA'를 새긴 유니폼을 선수단에 지급했다. 연맹 관계자는 "21일부터는 정상적으로 후원사가 제조한 국가대표 유니폼과 용품을 지급해 경기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실망감을 지울 길이 없다.

대한수영연맹은 재정 악화와 집행부 인사들의 비리 행위로 2016년 3월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된 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장 없이 표류했다. 지난해 5월이 되서야 새 회장을 뽑고 조직 재정비에 들어갔다.

이후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새 집행부도 여전히 한국수영의 정상화를 꿈꾸는 수영인들에게는 신뢰를 주지 못 한다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회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여자수구 대표팀도 대회를 두 달여 앞두고 급하게 소집돼 첫 경기에서 역대 최다점수 차 패배를 당하는 등 졸속 행정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있는 상황. 대한수영연맹이 남은 기간에는 안방에서 치르는 대회에서 선수들이 경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많은 팬들이 눈을 부릅뜨고 주시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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