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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트콤... 제2 제3의 '순풍산부인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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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트콤... 제2 제3의 '순풍산부인과'는 없다?
  • 이승훈 기자
  • 승인 2019.08.28 08: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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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승훈 기자] 언제부터였을까. TV 편성표에서 시트콤이 사라졌다.

매일 저녁 안방극장을 웃고 울게 만들며 다음날 대중들의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되던 시트콤이 자취를 감췄다. 최근 각종 SNS를 통해 2000년대 초반 큰 사랑을 받았던 ‘순풍산부인과’부터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하이킥’ 시리즈 등이 역주행 인기를 누리고 있기에 시트콤에 대한 대중의 향수는 더욱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 1998년 첫 방송을 시작한 SBS ‘순풍산부인과’에서 박미달을 연기했던 7살 김성은이 이제는 28살의 어엿한 성인이 될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프로그램은 여전히 각종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과거의 웃음 코드가 현재에도 통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상파와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방송국들은 ‘프로듀사’, ‘보그맘’, ‘으라차차 와이키키’, ‘대장금이 보고있다’ 등 시트콤을 표방한 ‘예능 드라마’만 제작할 뿐, 정통 코미디를 주축으로 한 시트콤은 편성하지 않고 있다. 시트콤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바람이 간절하다는 걸 알면서도 방송사는 왜 과거와 같은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는 걸까.

 

[사진=SBS ‘순풍산부인과’ 포스터]
[사진=SBS ‘순풍산부인과’ 포스터]

 

◆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와 관찰 예능의 강세→시청자들의 달라진 눈높이

요즘 안방극장에서 시트콤 부재 이유를 꼽자면 단연 대세 장르로 자리매김한 ‘로맨틱코미디의 부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로맨틱과 코미디를 합친 이른바 ‘로코’는 남녀 간의 사랑이 중심이긴 하지만 유쾌한 코미디 요소가 극 흐름 속에 적절하게 가미된 장르를 말한다. 시트콤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인 웃음과 재미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옮겨간 셈이다.

또한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등 스타들의 일상생활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관찰 예능이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시트콤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잘 짜인 대본과 연출, 스튜디오 등이 필요한 시트콤보다 카메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촬영이 가능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제작 측면에서도 쉽고 그 효과는 크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예능에선 과거 시트콤 하이라이트이자 해당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특유의 엔딩 장면을 패러디하거나 더빙, 유행어 관련 콘텐츠 등을 만들면서 시트콤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평소 TV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시청자 K 씨 또한 시트콤이 사라진 현 상황에 대해 “1회부터 정해진 배우들만 출연하는 시트콤과 달리 요즘 관찰 예능에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 뿐 아니라 수많은 연예인들이 출연한다. 또 최근 로코 드라마에는 시트콤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B급 유머와 사랑의 설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 등 다양한 소재들이 담겨있다. 드라마, 시트콤 등이 ‘코미디’라는 장르로 합쳐진 듯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고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전문성 역시 강해지고 있는 것도 이유다. 다소 뻔하거나 막장 스토리, 단순한 재미가 과거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면, 요즘 시청자들은 작품 속에 담긴 뚜렷한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로맨스라면 틀에 박힌 사랑 이야기를 벗어던지고 신선해야 되며, 장르물은 사회 비판을 강하게 한다거나 판타지적 요소까지 섞여야 한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빼앗을 수 있으며, 종영까지 순탄한 흥행 성적을 이어갈 수 있다.

일각에서 시트콤을 정의할 때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가벼운 장르”라고 말할 만큼 시트콤에 대한 무게를 저평가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시트콤과 드라마의 차이점을 ‘내용의 가벼움’으로 규정할 정도다 보니 더욱 설 자리가 좁아진 실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주5일 편성의 부담감, 제작비·제작환경의 고충도 잇따라

월화, 수목, 금토, 토일드라마와 다르게 시트콤은 특정 요일 없이 매일 방송된다. 심지어 호흡 또한 길다. ‘순풍산부인과’는 2000년 12월 1일을 마지막 회로 682부작이었으며,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293부작, ‘거침없이 하이킥’ 167부작, ‘지붕 뚫고 하이킥’ 126부작,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123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청춘시트콤 ‘논스톱’도 시리즈 당 422부작, 301부작, 248부작 등으로 종영했다. 단순한 수치로도 알 수 있듯 시트콤은 계속해서 탄생하지만 회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감소한 건 방송 횟수가 끝이 아니다. 매회 안방극장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물론, 아직까지 인기 역주행을 하는 시트콤이지만 시청률 하락세는 면치 못했다.

‘시트콤의 전성기’라고 불렸던 1990년~2000년대에는 20% 중후반의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는 10% 초반으로 가파르게 하락했다.

방송 제작환경의 고질적인 문제로 손꼽혀온 ‘생방송 촬영’도 지난 7월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완화되는 듯 했지만, 제작비와 제작기간이 동시에 늘어나면서 “부담은 오히려 상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송 관계자 L 씨는 “시트콤은 예전과 같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 방송 초반에는 대중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지만 단지 일시적인 반응에 불과하다”면서 “아무래도 시트콤은 주5일 방송이기 때문에 제작비가 부족하다. 광고 수입으로 이를 채워야하는데 시청률이 낮아지면서 PPL(간접 광고) 투자도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적인 제약을 설명했다.

“제작비 문제로 일일드라마 또한 없어지고 있는 추세다”는 그의 말도 ‘변화된 근무 환경으로 인한 제작비 부담’ 이유에 힘을 보탰다. 실제로 MBC 측은 지난 7월 12일 막을 내린 ‘용왕님 보우하사’를 끝으로 일일드라마를 폐지했으며, KBS 측도 ‘차달래 부인의 사랑’ 종영 이후 아침일일극 후속작을 편성하지 않았다. SBS는 “지상파 광고 시장 축소와 제작비 증가 등 국내외 방송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프로그램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방송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할 예정”이라면서 지난 2017년 7월 저녁 일일드라마를 전격 폐지했다.

 

[사진=플레이리스트 SNS]
[사진=플레이리스트 SNS]

 

◆ 웹드라마로 넘어간 ‘신인 발굴의 등용문’

송혜교, 정일우, 윤시윤부터 신세경, 이종석 등까지. 우월한 비주얼은 물론, 수준급 연기력으로 현재 대한민국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사로잡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시트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들이다.

과거 시트콤은 ‘신인 배우 등용문’이라는 수식어로 수많은 스타들이 출연하고 싶어 하는 1순위 프로그램 장르였다. 시트콤에 얼굴을 내비치는 순간 화제성은 기본, 보는 이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여년이 흐른 지금, ‘신인 등용문’이 바뀌었다. 이제는 ‘웹드라마’가 대세다.

방송 관계자 K 씨는 “최근 웹예능과 웹드라마가 많이 제작되면서 ‘신인 발굴의 장’이 시트콤에서 웹 작품으로 옮겨졌다. 또 요즘 시청자들은 짧은 순간에 큰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를 즐겨보기 때문에 방송 제작사들은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볼 수 있는 웹드라마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고 털어놨다.

10분에서 30분 등 다소 짧은 재생 시간으로 TV가 아닌 인터넷으로 즐길 수 있는 ‘웹드라마’는 2010년대부터 웹툰의 뒤를 잇는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웹드라마는 유튜브와 트위터, 네이버TV 등 다수의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을 주 시청자로 확보하고 있다. 때문에 아이돌과 배우 등 갓 데뷔한 신인 스타들은 자신의 탄탄한 필모그래피와 폭 넓은 활동을 펼치기 위해 웹드라마, 웹예능 출연에 도전하고 있다. 실제로 이미 일부 신인 스타들은 웹드라마 출연 이후 강력한 팬덤이 형성되거나 후속작으로 유명 스태프들이 제작하는 방송에 캐스팅되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K 씨는 현재 시트콤이 생겨나지 않는 이유로 ‘캐스팅 라인업의 공석’도 지적했다. 그는 “웹드라마처럼 짧은 영상 플랫폼이 대세로 기울면서 배우들 역시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시트콤 출연을 기피하고 있다. 이미 ‘웹드라마’라는 인기 콘텐츠가 있는데 굳이 긴 시간과 오랜 촬영 기간을 투자하면서 시트콤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순풍산부인과’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하이킥 시리즈’ 등을 제작한 김병욱 PD를 언급하면서 “시트콤계에서 훌륭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병욱 사단 작품이 아닌 이상 신인 감독, 작가의 시트콤 ‘입봉작’에 출연하려는 배우들은 없을 것이다. 선뜻 자신을 내려놓고 제대로 된 코믹 연기에 도전하려는 배우들도 드물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시트콤을 제작하기까지 극복해야 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변화가 거듭되는 환경에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말처럼 시트콤 또한 지속적으로 현 방송가의 상황을 고려함과 동시에 발전해야 된다. 이대로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버전업해 부활할 것인가. 시트콤이 생사의 기로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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