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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리뷰] '벌새' 김보라 감독이 보여준 한국 영화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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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리뷰] '벌새' 김보라 감독이 보여준 한국 영화의 희망
  • 주한별 기자
  • 승인 2019.09.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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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주한별 기자] 2009년 '똥파리', 2011년 '파수꾼', 2014년 '족구왕'과 2016년 '우리들'. 그리고 2019년 '벌새'

2009년 '똥파리' 열풍 이후 한국 영화계에는 영화 팬들을 사로잡을 '수작'들이 등장해왔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에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관객들의 선택을 받아온 것은 꾸준한 독립영화에 대한 제작 지원, 투자 덕분이다. 많은 영화인들이 독립영화를 통해 관객을 만났고, 한국 영화의 기둥이 됐다.

최근 '한국 영화 위기론'이 불거졌다. 비슷한 소재, 편향된 장르로 영화 팬들은 한국 영화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많은 영화들이 흥행에 참패했고,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도 이전보다 줄었다.

그렇기에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특별한 영화다. 지난 2018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세계 28개 영화제에 초청되고 많은 상을 수상했다. 국내 영화 팬들은 1년여의 기다림 끝에 영화 '벌새'를 보게 됐다.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한국의 이야기. '벌새'는 지난 29일 개봉 이후 관객들의 뜨거운 호평이 이어지며 개봉 첫 주 만에 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 '벌새'. 그렇다면 어떤 점이 특별할까?

#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의 이야기

 

[사진 = 영화 '벌새' 스틸컷]
[사진 = 영화 '벌새' 스틸컷]

 

최근 몇 년간 충무로의 화두는 '여성'이다. 한국 영화가 점차 다양성이 부족해지고 있고, 남성 중심의 영화 시장의 분위기 역시 이러한 문제점으로 꼽혀왔다.

영화 '벌새'는 여성 청소년인 은희(박지후 분)가 주인공인 영화다. 여성 감독인 김보라 감독은 1981년생으로 올해 나이 39세다. 1994년, 중학교 2학년인 은희와 비슷한 또래다.

그만큼 영화 '벌새'에는 김보라 감독이 여성으로 겪어온 1990년대가 녹아있다. 김보라 감독은 1994년을 살아가는 은희라는 청소년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녹아내고 또 그 당시를 함께 공유했던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은희의 성장담이라는 개인적인, 또 작은 이야기에서 출발한 영화 '벌새'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당시 한국 사회의 문제와 아픔을 꼬집는 거대 서사로 이어진다. 영화의 성평등 테스트로 일컬어지는 '벡델 테스트'를 만든 작가 엘리슨 벡델은 김보라 감독과의 대담에서 "여자 중학생의 이야기를 마치 영웅의 대서사시처럼 만든 영화"라고 '벌새'를 평했다.

# 우리들의 20세기, 1994년

 

[사진 = 영화 '벌새' 스틸컷]
[사진 = 영화 '벌새' 스틸컷]

 

최근 한국 미디어에서는 1990년대 다시보기가 유행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 '뉴트로' 라고 불리는 1990년대 감성에 대한 향수, 유행도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는 이제 30년이 지난 시기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 시대의 낭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벌새'가 마주하는 1990년대는 마냥 낭만적인 시절은 아니다. 

'벌새'는 그 시대의 약자였던 여성 청소년의 입을 통해 여전한 가부장제의 폭력, 약자에 대한 폭력을 이야기 한다. 은희가 느끼는 관계에 대한 어려움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비상하던 당시의 한국적 배경과 맞물려 관객들에게는 이상한 시대였던 1990년대를 회상하게 만든다.

영화 후반부에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는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벌새'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방점을 찍는 장면이다. 은희의 주변부에만 머물던 불온한 공기와 폭력들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구체화된다. 각종 모순으로 가득하지만 일상으로 포장되어 흘러가던 부조리함은 결국 폭발하고, 그것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라는 사건으로 표현된다.

영화 '벌새'가 은희의 성장담이 아닌 우리 사회의 이야기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1994년에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 함께 태어난 은희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맞이하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도 마주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의 비극은 끝이 아니다. 영화 속 성수대교 붕괴 사건에 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20년 간격을 두고 발생한 두 비극적인 사고는 1990년대와 2010년대를 이어주는 장치가 된다.

그렇기에 '벌새'는 매우 치밀한 영화다. 영화는 청소년의 성장담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끄집어내고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감독 본인의 청소년 시절의 경험에서 시작됐을 이야기는 감독의 말처럼 나르시즘을 덜고 시대의 공감을 얻어 완벽한 영화가 됐다.

# 김새벽과 박지후, 두 얼굴

[사진 = 영화 '벌새' 스틸컷]
[사진 = 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 '벌새'의 배우의 연기 역시 영화의 설득력을 높여준다. 은희 역을 맡은 박지후는 2003년 생으로 올해 나이 16세다. 영화 '가려진 시간'으로 데뷔한 박시후는 1994년을 살아가는 소녀 은희 연기를 펼치며 새로운 '충무로 스타'로 거듭났다.

배우 김새벽 역시 영화에서 빛난다. 은희의 유일한 이해자이자 버팀목인 김영지를 연기한 김새벽은 독립영화 팬이라면 '믿고 보는 배우'로 손꼽힌다.

지난 2011년 '줄탁동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영화 팬들의 눈을 사로잡은 김새벽은 '한여름의 판타지아', '걷기왕',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서 호연을 펼친 배우다. 

정인기, 이승연 등 베테랑 배우들의 활약과 아역 배우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특히 유리 역을 맡은 설혜인 배우는 영화 '우리들'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한국 영화는 재미없다'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비슷한 소재와 뻔 한 내용, 그리고 신파 감수성과 과도한 폭력까지 한국 영화의 단점으로 손꼽히는 전형성들이다.

영화 '벌새'는 한국 영화의 힘을 다시 보여준 영화로 영화 팬들에게 사랑 받으며 '역주행'에 나섰다.

'벌새'와 '우리집', '밤의 문이 열린다'는 8월 개봉하며 영화 팬들에게 호평 받은 독립 영화들이다. 세 영화 모두 여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여성 주인공이라는 특징이 있다. 한국 영화의 변화가 이번 여름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영화 '벌새'의 놀라운 성취가 앞으로 한국 영화의 위기를 극복해내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지 영화 팬들의 기대감이 남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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