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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하승진 구자철… 스포츠유튜버 시대 '빛과 그림자' [민기홍의 운동話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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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하승진 구자철… 스포츠유튜버 시대 '빛과 그림자' [민기홍의 운동話공장]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9.09.30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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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게 됐습니다. 기사화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18일 잠실실내체육관 인터뷰실. ‘배구 여제’ 김연경은 아시아선수권대회 조별리그 1차전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채널 이름 ‘식빵언니’가 폭소를 자아낸다. 경기가 안 풀릴 때 김연경이 내뱉는 비속어를 재치 있게 표현했다. 오픈 한 달이 지난 현재 구독자는 15만 명을 돌파했다.

# “어떻게 보면 망해가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남자, 221㎝’라는 소개 글이 눈에 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하승진 역시 유튜버로 변신했다. 지난 7월 22일 올린 ‘한국 농구가 망해가는 이유’란 영상은 조회수 208만을 돌파할 만큼 파급력이 컸다. 현역 때 달변으로 유명했던 하승진은 감독 지도 방식, 팬 서비스 등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누리꾼 다수가 “팩트 폭행”이라고 호평했다.
 

[사진=김연경 유튜브 '식빵언니' 캡처]

김연경, 하승진 뿐이랴? 김병지 이천수 송종국 이상윤(이상 축구), 박명환 안지만 최준석(이상 야구) 등 선수시절 ‘한 운동’ 했던 이들이 개인 채널을 개설하고 ‘썰을 푸는’ 콘텐츠가 급증했다. 은퇴선수뿐이랴. 구자철 김보경 이용(이상 축구), 김동현(UFC) 등 현역들도 가세했다. 스포츠산업에 휘몰아치는 유튜브 열풍 아니 유튜브 태풍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세대는 요즘 TV를 안 본다. 지상파 채널과 신문사는 노심초사다. 구독자수 1950만 명을 보유한 6세 아동 유튜버가 강남에 95억 건물을 매입하는 시대다. 미디어산업 흐름이 개인 동영상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유튜브 채널이 급증하는 건 당연한 현상. 체육계도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그런데 유독 요즘 급증한다는 인상이 짙다. 왜일까.

◆ 결국 돈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결국 돈 아니겠습니까.”

뉴미디어 업계에서 10년 이상 종사한 한 뉴미디어 전문가의 말이다.

슛포러브(축구·107만), PDB(야구·22.7만), 뽈인러브(농구·11.6만) 등은 그 영향력이 실로 막강하다. 스타 BJ 감스트(139만), 릴카(87.3만), 강은비(8만)는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잡은 스포츠업계의 대표적 케이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하는 걸로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유튜브. 이름값 높은 스타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툴이다.
 

[사진=하승진 유튜브 '하승진' 캡처]

◆ 인생2막, 새 옵션

운동선수가 은퇴 후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제도권에서 수십 년을 보낸 이들이 선뜻 다른 분야로 진출하기 쉽지 않다. 예능 프로그램에 자리 잡은 강호동(씨름), 안정환(축구), 서장훈(농구) 같은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체육인들에게 새로운 인생2막 옵션인 셈이다.

사회인야구 레슨 동영상을 주기적으로 올리는 ‘썩코치’ 윤석이 좋은 예다. 야구 명문 천안북일고, 고려대 출신이지만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는 연착륙했다. 그는 “‘한국 최초’ 엘리트 야구선수 출신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구독자는 7만7000명, 총 조회수는 3151만회다.

◆ 섭외가 용이하다

박명환야구TV(6.1만)엔 프로야구 팬이라면 반가워 할 왕년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절친한 정수근, 구자운, 신윤호, 이정훈 등이 다녀갔다. 안지만(1.8만)과 합방도 했다. 최근 용언니(2.7만)를 개설한 축구대표팀 풀백 이용은 팀(전북 현대) 동료 이동국을 사전 섭외했다. 이동국은 “6개월 동안 채널이 살아남으면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병지가 운영하는 꽁병지TV(32.6만) 게스트 라인업은 화려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멤버 골키퍼 조현우, 미드필더 문선민에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때 모신 스승인 베트남 축구영웅 박항서 감독까지 출연했다. 선후배 서열이 확실한 체육계에선 부탁을 거절하기도 쉽지 않을 터.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이면 섭외가 된다.
 

[사진=김병지 유튜브 '꽁병지TV' 캡처]

◆ 이천수와 이승우, 대중의 욕구 긁기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주전 수문장으로 김승규를 쓴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독일 전에서 ‘카잔의 기적’을 일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조현우를 벤치에 앉혀두는 경우가 더 많다. 레전드 골키퍼 김병지는 자신의 채널에서 나름의 생각을 밝힌다. 대중이 궁금해 하는 대목이니 조회수도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이천수와 이승우는 묘하게 닮았다. ‘악동+천재’ 이미지를 지닌 스타가 약 15년 간격을 두고 등장했다. 2000년대를 수놓은 이천수가 2010년대 아이돌 이승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팬들은 듣고 싶다. 정수근이 털어놓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비하인드와 롯데 자이언츠 시절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 기존 언론은 다루지 못한 B급 감성

“구독자 3만 명을 넘으면 ‘오예스’ 먹방을 시작하겠습니다.”

최준석이 세컨라운드(2.28만) 개설을 자축한 콘텐트에서 댓글을 읽다 내건 공약이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뛸 때 그가 초코과자를 한 입에 넣은 채 씹지 않고 삼키는 장면은 유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수도 없이 패러디됐다. 한 누리꾼은 오예스 먹방과 더불어 무겁기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이대호와 달리기 콘텐츠를 제안해 절대 지지를 받았다.
 

[사진=최준석 유튜브 '세컨드라운드' 캡처]

김연경이 진천선수촌에서 탁구를 친다든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사라진다든가, 하승진이 트와이스 나연 닮은꼴이라는 댓글에 미안해한다든가, 미국프로농구(NBA) 진출 당시 나온 기사 ‘폭풍 2도움’ 헤드라인이 이젠 자랑스러운지, 여전히 부끄러운지를 답변한다든가 … 스타의 유튜브는 기존 언론보다 훨씬 은밀하고 재밌다.

◆ 정보 제공의 장

체육인 유튜버가 단지 웃음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해외 경험이 풍부한 구자철과 김보경은 현역임에도 크리에이터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 축구 해설위원은 “구자철(슛별친 ShootingStar·8.2만)과 김보경(KBK Football TV·2.8만)은 유튜브의 모범사례를 제시하고 있다”며 “관심에 초점을 맞춘 자극적 발언이 늘어난 여타 채널들과 다르다”고 극찬했다.

구자철은 조깅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지 부터 갖가지 트레이닝 노하우를 전수한다. 자신은 “유소년 시절 연령별로 필요한 트레이닝을 못 받았다”며 “좋은 시스템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고 말한다. 김보경도 허벅지 근육, 코어 강화, 드리블과 슈팅 훈련 등 여러 곳에서 경험한 훈련법, 컨디션 관리 비법을 전수한다. ‘꾼’이 아니라면 모르는 최고급 정보다.

 

반면 스포츠 유튜버 현상이 낳은 부작용도 짙다.
 

[사진=구자철 유튜브 '슛별친 ShootingStar' 캡처]

익명을 요구한 한 축구인은 현역 흔들기를 우려했다. 그는 “대표팀 출신이라 대표팀 내부상황을 잘 아는 이들이 감독의 선수기용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정말 보기 좋지 않다. 시청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골라 관심을 끄는 건 댓글과 다르지 않다”며 “대표팀은 물론이고 프로선수, 학생선수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스포츠스타 유튜브를 즐겨보고 있다”는 한 팬의 의견도 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선배들의 과거 행적을 낱낱이 드러낸다거나 농담, 험담이 지나칠 때는 불편할 때가 있다”며 “스타 BJ들이 수준 낮은 발언 때문에 잊을 법 하면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다는 사실을 스포츠 크리에이터들도 명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유튜브 열풍.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한 소셜미디어 전문가는 “실패한 스포츠스타도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네임밸류가 높으면 빨리 자리 잡을 수야 있지만 신뢰 없는 정보, 가십성 멘트에 치중하다 금방 외면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사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경쟁은 치열해진다. 지속성과 콘텐츠 기획력이 없다면 빨리 도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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