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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복의 리플이즘] 주택공사(LH)의 채용비리 그리고 밀레니얼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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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복의 리플이즘] 주택공사(LH)의 채용비리 그리고 밀레니얼의 초상
  • 이수복 기자
  • 승인 2019.10.02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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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수복 기자] 강준만은 ‘대중문화의 겉 과 속’ Ⅲ권에서 ‘사이버 공간의 리플은 개인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고, 집단의 움직임이 나의 행동이 되는 사이버 공간의 한국인의 삶의 증거들이다. 리플의 리플에 의한 리플을 위한 한국형 인터넷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베댓 저널리즘’이란 말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베스트 댓글이 여론을 주도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댓글의 영향력이 커진 것을 반영하는 신조어다. 사실 Reply를 가리키는 ‘리플’(댓글)은 한국의 독특한 인터넷 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한가지다. ‘이수복의 리플이즘’은 리플을 통한 동시대인들의 생각 또는 마음 읽기다. [편집자 主]

맬컴 해리스의 저서 '밀레니얼 선언' 표지.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수많은 통계와 논문을 분석해 완벽한 스펙과 끝없는 노력을 요구당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한 삶을 조명한다. [사진=생각정원 제공]
맬컴 해리스의 저서 '밀레니얼 선언' 표지.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수많은 통계와 논문을 분석해 완벽한 스펙과 끝없는 노력을 요구당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한 삶을 조명한다. [사진=생각정원 제공]

‘전부 파면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철밥통에, 공기업이 가진 각종 혜택이 너무 크다.’(unme****)

‘이게 나라냐 불 질러 버려라.’(cne9****)

‘전 공기업 전수 조사해야 한다.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썩었다.’(haig****)

일부 공기업의 비정규직 채용 및 정규직 전환 실태에 대한 감사결과 발표를 다룬 몇몇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성난 민심을 읽기에 충분합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요?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감사원은 지난달 3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인천국제공항공사, 한전KPS주식회사, 한국산업인력공단 등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는데 눈과 귀를 의심해야할 정도입니다.

먼저 LH의 경우 2017년 4월 기간제·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 채용 시 임직원이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동생에게 최고점을 부여해 채용했을 뿐 아니라 임직원이 그해 5월 채용담당자에게 자녀 등 친인척의 채용을 청탁하고 단독면접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친인척 5명을 채용했습니다.

실제로 LH의 A센터장은 기간제 근로자 채용 시 면접평가위원으로 참여해 친동생에게 최고점을 부여하고 결국 채용했습니다. LH의 한 임직원은 파견근로자로 자신의 조카를 채용시키기 위해 채용담당자에게 조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채용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채용담당자는 조카만을 불러 단독으로 면접을 진행한 뒤 채용했습니다. 부당 채용된 친인척 5명은 모두 같은 해 12월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행운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인천공항공사의 경우에는 2017년 12월 정규직으로 전환한 제2여객터미널 인력 중 협력사가 채용한 3604명의 서류·면접심 사표를 폐기했습니다. 또 협력사 간부급 직원이나 공항공사 임직원의 친인척 44명은 내부위원만으로 구성된 면접 절차를 거쳐 합격시켰습니다.

한전KPS는 비정규직 채용 시 채용공고 상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4명과 허위 경력증명서를 제출한 1명을 부당하게 채용했습니다. 이어 관련 지침과 달리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에 채용 공고하지 않았으며 임직원 친인척을 통해 지원한 75명을 선발했습니다.

산업인력공단은 2014년 이후 채용공고 등의 절차 없이 직원 친인척 등 14명을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했으며 업무와 무관한 특정경력을 응시자격으로 제한해 퇴직직원 3명을 선발했습니다.

또 시험응시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자가 시험전형에 참여해 전 지사장의 자녀 등 4명을 채용했으며 공고 등 채용절차가 필요한 계약직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채용절차가 필요 없는 일용직 근로자로 직원의 친인척 등 124명을 채용했습니다.

그야말로 ‘가족찬스’ ‘집안찬스’를 악용한 케이스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실 공기업은 신의 직장으로 통합니다. 보수도 좋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실이 ‘알리오’에 공시된 36개 공기업(시장형·준시장형)의 보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7842만원으로 집계됐다고 1일 밝힌 바 있습니다.

거기다가 안정성 면에서도 일반 사기업보다 훨씬 낫기에 취업준비생들은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공기업에 들어가려고 목을 매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나 공정과 정의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공기업은 상대적으로 채용절차가 더 투명할 것으로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17일 경향신문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하반기 공채 시즌을 맞아 취준생 147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는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8명은 ‘부모가 곧 스펙’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가족, 집안, 출신학교 등 배경이 취업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10명 중 8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취준생의 상대적 박탈감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취업 실패 경험이 있는 청년일수록 컸다고 합니다.

맬컴 해리스는 ‘밀레니얼 선언-완벽한 스펙, 끝없는 노력 그리고 불안한 삶’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좋은 일자리를 향한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피하고 싶은 질 낮은 일자리는 더욱 열악해졌으며, 좋은 일자리건 나쁜 일자리건 이전보다 불안정해졌다.”고 지적합니다. ‘밀레니얼 선언’은 미국에서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서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태어난 이들을 ‘밀레니얼’이라고 부르며, 이 세대를 탐구한 책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 생을 밀레니얼로 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인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 최고 ‘스펙’을 쌓은 이들이 어떻게 배반당하는지 고찰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현실이 다르길 바라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은 듯해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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