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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물] 김우중 회장 별세, '부산 대우 창단-대한축구협회장' 축구인 김우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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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물] 김우중 회장 별세, '부산 대우 창단-대한축구협회장' 축구인 김우중은?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12.10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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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대우그룹을 재계 2위로 키운 신화의 주인공. 그러나 막대한 분식회계로 끝없는 내리막길을 걸었던 희대의 경영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굴지의 대기업으로 평가 받던 대우그룹 창립자인 그는 축구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인스타그램 캡처]

 

대한축구협회는 10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명복을 빌었다. 대한축구협회장을 역임했던 그의 이력도 간략히 소개했다.

김 전 회장은 주로 베트남에서 생활했으며 지난해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귀국해 1년여 동안 투병 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사재를 출연해 세운 아주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무리했다.

1936년 대구 출생인 그는 경기중-경기고를 거쳐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만 30세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립했다. 자본금은 500만 원이었다.

45세 때 회장에 오른 그는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현대에 이어 국내 2위 기업을 이끈 총수였다. 1998년 수출액은 한국 총 수출액(1323억 달러)의 14% 수준인 186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지며 크게 흔들렸다. 대규모 구조조정도 계획해봤지만 이듬해 8월 해체를 피할 수 없었다.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다. [사진=연합뉴스]

 

경영인으로는 평가가 많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축구계에 세운 공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사원 체육대회 때 직접 선수로 뛸 정도로 축구광이었던 그는 1983년 부산 대우 로얄즈 창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쟁 대기업이 야구단을 창단할 때도 일언지하의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던 고인이다. 부산의 봄을 이끌었던 안정환의 행보에도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대우는 대부분 구단이 외국인 선수로 남미 선수를 선발했던 것과 달리 동유럽권 선수를 선발했고 프랑크 엥겔, 비치케이 베르털런 등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등 차별화를 뒀는데, 이는 김우중 전 회장의 지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열정을 바탕으로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제45,46대 대한축구협회장을 역임했다. 다만 당시 내부 관계자들의 부패함에 질색하며 물러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빈소는 아주대병원에 차려졌다. 영결식은 오는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예정돼 있고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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