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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사건 청문회, 가해자 '노쇼'에도 꼬리 문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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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사건 청문회, 가해자 '노쇼'에도 꼬리 문 폭로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7.2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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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내 원수는 두 명 이상.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고(故) 최숙현 선수 다이어리)

“(폭행은) 자주는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있었습니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도환)

“감독님이 ‘가만두지 않을 거다. 내 등에 칼 꽂은 제자는’ 이런 식의 말을 했다.” (A선수)

핵심 가해자는 출석하지 않았지만 폭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내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 청문회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발언의 연속이었다.

22일 국회에서 ‘철인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 분야 인권침해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은 최숙현 선수가 생전에 쓴 일기 일부를 공개했다.

◆ 최숙현 일기에 "나의 원수...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최숙현 선수는 일기에 “나의 원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아래 “원수는 두 명 이상인데! 경주시청 선수들이요!”라며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과 선배 장윤정, 김정기(김도환의 개명 전 이름) 외에도 전 경주시청 소속 선수 2명(이광훈, 김주석)의 이름을 적었다. 그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해요. 기억에서도요”라고 덧붙였다.

이용 의원이 최숙현 선수 일기 일부를 공개한 건, 경주시청팀에서 김 감독과 장윤정의 막강한 영향력 앞에서 여러 선수가 특정 선수를 지속해서 가해한 정황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 의원은 “현재까지 밝혀진 가해자 외에 추가 가해자가 더 드러났다. 경주시청팀 내 감독의 영향이 이 정도였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김도환 "나도 폭행당했고, 금전 갈취당했다"

지난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혐의를 부인했던 김도환은 이날 16일 만에 다시 선 국회에서는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는 “(6일에는) 오랫동안 함께 지낸 (김규봉) 감독의 잘못을 들추기 싫었고, 내 잘못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다”며 “정말 죄송하다. 지금 이 말은 진심이다. 다른 말은 유족을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김도환은 자신의 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김규봉 감독, 안주현 운동처방사, 장윤정 등이) 최숙현 선수에게 폭행, 폭언한 걸 본 적이 있다. 폭행이 일주일에 한 번은 있었다”며 다른 가해 혐의자들의 가혹행위도 증언했다. 자신 또한 김 감독으로부터 폭행당하고 안 처방사로부터 금전을 편취당한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중학생 때부터 김규봉 감독에게 폭행당했다. 담배를 피우다 걸려, 야구 방망이로 100대를 맞기도 했다”며 “안 처방사에게 나도 매달 80만∼100만원을 보냈다”고 했다.

김도환은 김규봉 감독, 장윤정 등 주요 가해 혐의자의 고 최숙현 선수 폭행 사실을 증언하고, 자신이 폭행당한 사실도 고백했다. [사진=연합뉴스]

◆ 꼬리 문 동료 증언, 장윤정은 전면 부인 

A선수는 “2016년 5~6월 보강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윤정 지시로) 불려갔는데, 그때 옆에 있던 남자 선배(정현웅)에게 ‘좀 맞아야겠다’며 각목을 가져오라고 해서 각목으로 엉덩이를 맞은 적 있다”고 했다. 정현웅은 “그 당시 장윤정이 내게 시켜서 했다. 별 것도 아닌 이유로도 선수를 폭행하라고 직접 지시를 해서 각목을 가져와 때린 기억이 있다”며 “때리지 않았다면 나 또한 그 자리에서 왕따를 당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또 “장윤정이 최숙현 선수 멱살을 잡은 적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장윤정은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는 5일 경주시체육회에 낸 자필 진술서에서 “두 얼굴의 안주현 처방사에게 속았다. 우리는 피해자”라며 “2019년 뉴질랜드에서 안주현 선생이 (최숙현 선수를) 때리고도 김규봉 감독에게 ‘장윤정이 최숙현 선수를 괴롭혔다’고 보고했다. 알고 보니 안 처방사는 최숙현 선수가 녹취한 느낌을 받은 뒤, 모든 정황을 ‘장윤정이 괴롭혀서 그랬다’고 꾸미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규봉 감독의 거짓 증언 강요 정황이 드러났다. [사진=임오경 의원실/연합뉴스]

◆ 거짓 진술 강요 및 은폐 시도 정황도

뿐만 아니라 김규봉 감독과 장윤정이 권위를 앞세워 목격자들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한 정황도 드러났다. 가해자에게 유리한 진술을 통해 혐의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김 감독과 장윤정에게 유리한 내용의 진술서를 썼던 전·현직 경주시청 선수들이 용기 내 “강요에 의해 쓴 진술서였다”고 증언했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문회에서 “김 감독은 경찰 조사가 진행되던 5월 중순 경주시청 전·현직 선수들을 숙소로 불러 경찰 진술서를 쓰도록 하고, 다 쓴 내용을 장윤정과 함께 검토한 후 제출했다”고 했다. 동료들은 최숙현 선수에 관해서는 “운동하기 싫어 도망가고, 거짓말을 많이 했다”는 부정적인 진술을 하도록 강요당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위협적인 말로 압박을 가했다. B선수는 “감독님이 ‘가만두지 않을 거다. 내 등에 칼 꽂은 제자는’ 식의 말을 했다. ‘내가 때린 건 인정해’라면서 ‘그런데 내 직장, 내 밥줄을 건드려?’라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전했다.

최숙현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가해 혐의자들이 증거 인멸이나 말 맞추기를 시도한다는 게 우리 귀에도 들렸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최)숙현이가 가장 힘들어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숙현 선수의 어머니 류 씨는 이날 청문회에 출석해 관계자들의 증언을 듣다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 끝까지 나타나지 않은 주요 가해 혐의자 3인방

이날 김도환을 제외한 최숙현 사건 관련 핵심 가해 혐의자 3인방은 청문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규봉 감독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팀닥터 행세를 한 안주현 운동처방사는 우울증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장윤정은 폐문부재(집 문이 닫혀 있어 우편물을 전달하지 못한 경우)로 출석요구서가 반송됐고, 현재 연락 두절 상태다.

여야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체육계와 관계당국의 업무 처리 과정을 비판했다. 가혹행위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들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데 대한 날선 반응이다.

문체위가 22일 오후 5시까지 국회 청문회장으로 동행할 것을 명령하는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소용 없었다. 도종환 문체위원장은 “동행명령을 거부할 경우 국회 증언감정법 제13조에 의거해서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협의해 추후 조치방안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철인3종 선수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청문회를 지켜보며 “21세기 대한민국 스포츠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 일상이다. 경주시청이 유별나게 반인권적이고 그 팀의 선수들만 유독 악독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엘리트스포츠를 지탱해온 시스템이 배출한 필연적인 결과”라며 “이제는 그 시스템을 멈춰야할 때다. 지금은 사각지대를 찾아 보완할 때가 아니라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의 전면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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