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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를 공격수로!' 원초적 대안, 실질적 해결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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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를 공격수로!' 원초적 대안, 실질적 해결책일까
  • 신동훈 명예기자
  • 승인 2020.09.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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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신동훈 명예기자] 최근 K리그(프로축구) 무대에서 수비수를 공격수로 사용하는 일이 잦다. 선발부터 전문 수비수를 스트라이커로 내세우거나, 후반 중반 수비수를 최전방에 투입해 '타겟맨' 역할을 부여한다. 득점을 위한 원초적 접근 방법이지만 실질적 해결 방법일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수비수를 공격수로 활용한 사례는 지난 20일 인천 유나이티드와 울산 현대 간 2020 하나원큐 K리그1(1부) 경기에서도 나왔다. 아길라르를 최전방에 세운 '제로톱' 전술로 나선 인천은 전반 25분 주니오에게 실점한 이후 반격을 펼쳤지만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후반 시작과 함께 김준범을 빼고 송시우를 넣었음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대중은 20일 울산과의 대결에서 후반 공격수로 나왔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김대중(오른쪽)은 20일 울산과의 대결에서 후반 공격수로 나왔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이에 조성환 인천 감독은 후반 28분 과감한 교체를 시도했다. 우측 미드필더로 나선 최범경을 빼고 수비수 김대중(27)을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넣었다. 김대중이 투입된 이후 김대중의 높이를 활용한 롱패스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를 얻지 못했다. 김대중은 이렇다 할 슛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인천은 무득점을 기록해 0-1 패배를 당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조성환 감독은 김대중 투입에 대해 "원래 김대중은 울산이 경기 후반부에 비욘 존슨과 같은 신장이 큰 선수를 투입할 경우를 대비해 교체명단에 넣었다. 하지만 무고사가 경미한 부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이 안 풀렸기 때문에 타겟형으로 활용하려고 투입했다"고 밝혔다.

프로 진출 후 수비수로만 뛰었던 곽광선은 최근 전남에서 공격수로 선발 출장하고 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프로 진출 후 수비수로만 뛰었던 곽광선(오른쪽)은 최근 전남에서 공격수로 선발 출장하고 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 2020시즌 트렌드?

조성환 감독이 말한 대로 수비수를 공격수로 투입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해당 수비수가 갖고 있는 큰 키를 이용해 수비진 시선을 끌고, 헤더 능력을 통해 패스를 연결하거나 한 방에 마무리를 하려는 게 대부분이다. 이렇게 수비수를 공격수로 활용하는 일은 2020 K리그(K리그1+K리그2) 무대에서 유독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제주 유나이티드 임동혁(27)이 대표적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제주로 이적한 임동혁은 부천에서 주축 수비수로 활약했을 만큼 수비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시즌 시작 후 5경기 4골을 넣은 주민규가 부상과 부진을 겪고, 정조국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면서 '최전방 문제'에 직면하자 남기일 제주 감독은 임동혁을 공격수로 활용했다. 수비 시절 빠른 스피드와 볼 컨트롤 능력이 장점이라 평가 받았던 임동혁은 타겟형 스트라이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2골까지 기록했다.

대전 하나시티즌 이정문(22)도 뽑을 수 있다. 2019시즌부터 대전에 수비수로 합류한 이정문은 194㎝ 압도적인 신장으로 대전에서 다양하게 활용됐다. 주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지만 유사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도 소화했고 경기 중간 교체로 수비를 넣고 이정문을 최전방에 올리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이정문은 세트피스 상황과 경기 막판 존재감을 보이며 이번 시즌 3골을 넣었다.

두 선수가 나름 일정 이상의 결과를 얻은 사례라면, 실패 사례도 분명히 있다. 김형열 FC안양 감독은 최전방 미우리데스와 아코스티가 부진하자 지난 6월 27일 8라운드부터 수비수 닐손 주니어(31·브라질)를 최전방 공격수로 활용했다. 닐손 주니어의 피지컬을 이용하는 건 물론 패스 능력까지 내세워 안양 전체 공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닐손 주니어는 준수한 활약은 했지만 안양의 득점력이 개선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다시 수비수로 돌아갔다.

최근 전남 드래곤즈에서 공격수로 나서는 곽광선(34)도 있다. 전남은 쥴리안이 부상당하고 김보용, 하승운, 에르난데스를 제로톱처럼 활용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프로생활 내내 수비수로만 활약했던 곽광선을 최전방 공격수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3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나온 곽광선이지만 득점은 없었고 경기력도 좋지 못했다.

또 조성환 감독이 김대중을 후반 중반 교체 투입한 것과 유사한 경우도 있다. 지난 16일 대구FC와 성남FC의 대결에서 성남이 후반 40분까지 2-3으로 밀리자, 김남일 감독은 홍시후-토미-나상호가 공격진에 있음에도 박태준을 빼고 수비수 안영규(30)를 최전방에 두는 선택을 했다. 안영규 투입으로 수적우위를 만들어 동점을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득점은 나오지 않았고 팀은 졌다.

김신욱은 수비수로 프로 무대에 왔지만, 공격수로 전향해 울산-전북을 거치며 K리그 대표 공격수로 등극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김신욱은 수비수로 프로 무대에 왔지만, 공격수로 전향해 울산-전북을 거치며 K리그 대표 공격수로 등극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김진혁은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전향해서 나선 사례 중 단기간 최대 임팩트를 남긴 선수다 [사진=프로축구연맹]
김진혁은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전향해서 나선 사례 중 단기간 최대 임팩트를 남긴 선수다 [사진=프로축구연맹]

◆ 실질적 해결 방법이 되기 위해선

2020시즌을 제외하고 과거에도 수비수를 공격수로 활용한 사례는 많다. 상주 상무와 경남FC 시절 이광선, 부천FC 시절 김재우, 인천의 김정호가 수비수였지만 공격수로 필드에 나섰다. 하지만 '완벽하게 효과적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는 선수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전방에서 최선을 다해 뛰기는 했지만 공격수 빈자리를 완벽히 대체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임동혁, 이정문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성공으로 규정할 수 있는 선수는 크게 두 명으로 압축된다. 2009년 수비수로 울산에 입단했지만 당시 김호곤 울산 감독의 권유로 공격수로 전향한 이후 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가 된 김신욱(32)과 2019년 에드가의 부상으로 공격수 기회를 잡은 김진혁(27·상주)이 이에 해당한다.

김신욱은 K리그 통산 307경기에 출장해 109골 37도움을 기록했고, 울산, 전북 현대를 거치며 K리그1 우승 2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2회를 일궈냈다. 2013년엔 리그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고, 2015년엔 프로 통산 첫 득점왕에 올랐다. 한편 김진혁은 김신욱보다 커리어 면에선 밀리지만, 단기간 최고 임팩트를 냈다. 2019년 4월부터 공격수로 출장하기 시작한 김진혁은 4월에만 4골 1도움을 기록해 대구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고 이 달의 선수상까지 받았다.

두 선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공격수 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이다. 김신욱은 198㎝ 압도적인 신장 탓에 '키로만 축구를 한다'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만, 김신욱의 최대 강점은 볼 컨트롤이다. 체격조건을 활용해 공을 지켜내고, 빠르고 정확하게 패스를 넣어주거나 강력한 슛으로 마무리하며 승리를 이끄는 게 김신욱이 K리그 대표 공격수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김진혁은 많은 활동량과 스피드를 보유했다. 수비수로 나설 때도 공을 가지고 전방에 올라가 공격에 도움을 주는 게 그의 특징이었다. 공격수로 출장할 때도 이런 장점을 보여줬다. 최전방에서 버텨주고 공을 끌면서 김대원, 세징야 같은 선수들이 전방으로 올 때까지 공을 잡아줬고 결정력을 살려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대구 역습 축구의 방점을 찍어줬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두 선수는 탄탄한 신장과 더불어 공격수가 가져야 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단순히 큰 키를 가졌다고 공격수 역할을 완벽히 대체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수비수 출신 공격수가 선발 혹은 교체로 나설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원초적 대안으로 접근하는 것에 더해, 그 선수의 특징과 강점을 파악해 더 구체적이고 심도있는 접근을 해야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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