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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레이블탐방] (74) 디쉬크림슨이 말하는 ‘힙합밴드’ 설명서 'Anonymous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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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레이블탐방] (74) 디쉬크림슨이 말하는 ‘힙합밴드’ 설명서 'Anonymous Traveler'
  • 박영웅 기자
  • 승인 2020.10.23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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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웅의 밴드포커스’와 함께 연재 중인 ‘인디음악 전문 인터뷰’ 인디레이블탐방이 돌아왔습니다. 수년간 인디신 전문 취재를 통해 다져진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디뮤지션들의 심층적인 인터뷰를 다룰 계획입니다. 뮤지션과 함께하는 음악 리뷰와 여러 이야기를 통해 국내 밴드 음악을 편하게 이해하며 즐기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스포츠Q(큐) 박영웅 기자]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밴드음악 마니아들에게 랩과 록을 뒤섞은 음악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하드코어’로 통칭해서 불리던 랩 메탈 장르를 떠올릴 것이다.

레이지어겐스트 더 머신과 콘(korn)으로 대표되던 하드코어 랩 메탈 장르는 1990년대 초중반에 등장해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최전성기를 맞이한 음악이다. 기존 메탈 혹은 펑크에 랩을 뒤섞은 이 음악은 당시로서는 ‘최신 밴드 문화’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국내 밴드신 역시 세계적인 음악 흐름에 맞춰 2000년대 초중반 하드코어 특히 랩 메탈을 시도하는 밴드들이 꽤 많이 등장했었다. 심지어 가요시장에서도 서태지가 하드코어 랩 메탈을 가지고 솔로 컴백을 하면서 이 장르는 당시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많은 대중의 마음속에 확실히 각인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을 훌쩍 넘어가면서 록 장르의 쇠퇴와 랩, 힙합, 댄스 등을 기반으로 한 팝 음악이 전 세계 음악 시장을 휘어잡으면서 랩 메탈 밴드들은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소멸해갔다. 결국 국내 인디신 역시 랩과 메탈을 기반으로 했던 하드코어 밴드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랩과 록 사운드를 접목한 새로운 밴드가 등장했다.

바로 디쉬크림슨이다.

 

◆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랩&록 다장르 밴드

디쉬크림슨은 지난 2018년 데뷔한 5인조(김인중(드럼, 리더), 씨클(보컬, 랩), 이상훈(기타), 다연(베이스), 브레익손(DJ))밴드다. 팀명은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던 멤버들의 이름 약자를 따서 '뷔페 접시 같은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은 추억의 하드코어 랩 메탈 장르를 떠올리게 하는 밴드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을 자세히 들어본다면 예전 하드코어 랩 메탈 밴드들과는 다른 차이점을 여럿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디쉬크림슨은 자신들을 스스로 ‘힙합밴드’라 부르고 있다.

우선 강렬한 록 사운드 위에 쉴 새 없이 투박했던 랩을 쏟아내던 이전 밴드들과는 다르게 좀 더 정통 힙합 스타일에 가까운 랩을 구사하고 있다. 정통 힙합 뮤지션이자 래퍼인 씨클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보컬 씨클이 정통 힙합 래퍼이다 보니 어떤 장르를 결합하던 힙합적인 느낌이 나는 것 같아요. 이것이 이전 하드코어 밴드들과는 다른 점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김인중)

"정통 힙합은 랩의 가사 전달력을 정말 중요시합니다. 사람들에게 랩이라는 것을 들으며 가사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인데 밴드 음악과 합쳐진 만큼 더 힘들 수 있어요. 그래서 합주를 하면서 딕션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또한 멋있는 말이 아닌 일상어를 쓰면서 중요한 가치를 가사에 끌어내 전달하려고 합니다. 일단 제가 정통 힙합을 하던 뮤지션인 만큼 이 부분만큼은 꼭 신경을 쓰고 있어요. 그래야만 이전 하드코어 밴드들과 차별성이 분명히 생긴다고 생각합니다."(씨클)

또 하나의 차이점은 주로 메탈 장르와 랩을 주로 섞었던 팀들과는 다르게 어려 장르적 요소를 랩에 대입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들 음반을 들어보면 펑크, 게러지, 어쿠스틱, 레게, 신스팝 등 다양한 장르를 정통 힙합 스타일의 랩과 혼합한 음악들이 즐비하다.

"살아오면서 들었던 음악들이 멤버 각각 다 달라요. 밴드 쪽을 하신 상훈이 형부터 레게를 중심으로 밴드를 이끌던 인중이 형 등 다른 배경의 아티스트 5명이 모여서 만드는 것이다 보니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정통 래퍼다 보니 다른 팀보다 더욱더 오리지널 힙합의 느낌을 살리면서 그 위에 여러 장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디쉬크림슨이 말하는 힙합밴드라고 생각합니다."(씨클)

 

◆ 디쉬크림슨이 말하는 힙합밴드의 설명서 'Anonymous Traveler'

이처럼 '힙합밴드' 디쉬크림슨은 랩과 록 사운드를 뒤섞어 활동하던 이전 하드코어 밴드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가진 모습이다. 특히 이런 차별성은 지난 9월 발매된 새 앨범 'Anonymous Traveler'에서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Anonymous Traveler'는 총 9곡이 수록된 정규앨범으로 메탈, 어쿠스틱, 레트로 팝 등 다양한 장르에 정통 힙합 스타일 랩이 결합한 '다채로운' 팝 앨범이다. 예전 랩 메탈 기반의 하드코어 밴드들을 떠올리게 하는 타이틀곡 '불붙여', 'Demon'을 비롯해 레트로 팝 장르를 기반으로 한 'U&I', 어쿠스틱과 랩을 조합한 '블루스카이', 블루지한 연주와 랩을 섞어놓은 'its me', 최신 힙합 장르 스타일 곡 'Sunset(Feat·영림)' 등 실험적이고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확실히 강렬한 록 사운드만이 중심이 됐던 이전 하드코어 밴드들과는 달리 다양한 스타일의 사운드와 연주, 정통 힙합 스타일 랩이 조화를 이루면서 트렌디함까지 챙기고 있는 대중적인 앨범이라 말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7월 30일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꾸준히 싱글을 냈습니다. 워낙 다양한 장르와 다른 스타일의 곡들이 많다 보니 이 앨범들을 내면서 우주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들이 들었고 이번 정규앨범에 이런 감정을 실어보기로 했죠. 그래서 제목을 '익명의 여행자' 이렇게 짓게 됐습니다. '익명의 여행자'라는 뜻은 소란스럽게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여러 음악을 느껴보고 만들겠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다 장르 힙합밴드의 정체성을 담았다'고 말하면 설명이 더 쉬울 것 같습니다."(김인중)

"앨범 적으로 주목할 점은 '불붙여' 같이 강한 사운드 곡도 많지만 가사 중에 욕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조카들이 들어도 될 정도로 깨끗한 가사들을 활용했어요. 뾰족하거나 과시하거나 자랑하거나, 허세 같은 것이 아닌, 일반인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을 이겨내거나 공감하자는 내용이 많습니다. 희망을 주고 위로를 주는 내용이죠. 확실히 우리 비주얼과 기본적인 사운드와는 반전이 있는 앨범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씨클)

 

◆ 'Anonymous Traveler' 공동리뷰

이렇게 전반적인 앨범 소개를 이어가던 디쉬크림슨 멤버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곡 2~3곡을 선정하고 공동리뷰를 부탁했다. 멤버들은 타이틀곡 '불붙여', '디쉬크림슨', 'Take it slow'를 추천 곡으로 꼽았다.

우선 이번 정규앨범 타이틀곡 '불붙여'는 디쉬크림슨이 말하는 힙합밴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곡이다. 전성기 시절 레이지어겐스트 더 머신의 히트곡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타 리프 등 깔끔하게 떨어지는 연주 위에 보컬 씨클의 정통 힙합 스타일의 랩이 잘 어우러진 노래다. 듣자마자 귀에 꽂히는 멜로디와 최신 스타일 랩은 곡의 대중성을 극대화하는 모습이다.

"2번 트랙에 '디쉬크림슨'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 노래는 페스티벌에 활용하는 곡이에요. 그런데 반응이 워낙 좋았고 이런 스타일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멤버들 사이에 나와서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곡을 만들지 레퍼런스를 찾다가 레이지어겐스트 더 머신 레퍼런스를 잡고 만든 곡입니다. 가사를 쓰는 데는 30분 정도 걸렸고 랩의 색이 레이지어겐스트 더 머신과 우리와는 다른 만큼 이 부분은 우리 색깔에 맞춰 만들었죠. 이 곡은 처음 스타트할 때 부르는 곡이에요. 공연에서는 곡이 좀 더 길어요. 러닝 타임이 7분 정도 되고 인트로가 2분 정도 들어가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곡은 그냥 신나게 무엇인가 열정을 끌어올려 주는 곡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김인중)

 

멤버들이 선택한 두 번째 리뷰 곡은 디쉬크림슨이다. 이 곡 역시 '불붙여'와 비슷하게 레이지어겐스트 더 머신의 스타일을 제대로 해석하고 디쉬크림슨 스타일로 구현해낸 곡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레이지어겐스트 더 머신을 떠올리게 하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기타 리프와 중독성 있는 반복 가사, 그리고 빈티지하면서도 강렬한 록 사운드 모두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특히 너무 빠르지 않은 템포의 힙합 비트를 곡에 녹여내면서 디쉬크림슨만의 색까지 잡아낸 노래다.

"디쉬크림슨이라는 곡은 아까도 말씀드렸듯 페스티벌 마지막에 활용하는 곡이에요. '불붙여'가 처음으로 시작하는 곡이라면 이 곡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입니다. 팀 이름을 걸고 만든 곡입니다. 우리 아이덴티티가 있다는 소리죠. 솔직하게 우리를 잘 보이게 하는 곡 같아요. 기타 리프가 너무 좋습니다. 스스로 '우리가 이런 노래를 만들었단 말이야'라고 놀라는 곡이기도 합니다. 불붙여나 다른 곡도 마찬가지지만 드럼도 아예 라이브 녹음을 했고 곡 믹스에도 긴 시간을 들인 곡입니다. 공연하듯 녹음한 곡이라 더 신날 겁니다. 코로나 시대로 우울하고 분노가 있으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김인중)

 

디쉬크림슨 멤버들이 선택한 마지막 리뷰 곡은 'Take it slow'다. 이 곡은 정통 힙합 래퍼 씨클을 위한 노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내 힙합 장르 뮤지션들이 들려주고 있는 전형적인 스타일의 랩 음악이다. 씨클의 뛰어난 랩 실력과 중독성 넘치는 대중적인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특히 앨범 속 록 사운드 중심의 곡들 사이에 'Take it slow'가 배치되면서 장르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는 앨범의 의도를 제대로 살려주고 있다.

"작곡은 지포인트라는 친구가 했어요. 가사는 제가 썼는데 이 노래 역시 30분이 안 걸렸어요. 5분간 계속해서 간결하고 부드럽게 랩을 쏟아내는데 이 부분이 이 곡의 포인트인 것 같아요. 회사가 없던 시절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좀 더 트렌디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골수 '힙합 빠돌이'라 힙합만의 고집, 무거움과 강한 그루브 그런 것을 깨기 힘들었는데 오히려 이렇게 반복되는 느낌의 가볍고 대중적인 곡을 부르면서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 같아요. 확실히 어린 친구들은 이 곡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느낌 자체가 팝적이고 대중적인 느낌이 짙어서겠죠. 마지막 수록곡 'Sunset(Feat·영림)' 도 이런 느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Take it slow'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것 같아요."(씨클)

◆ 공연을 갖고 노는 밴드 디쉬크림슨

디쉬크림슨은 이미 인디신 내에서도 엄청난 공연 퍼포먼스로 정평이 나 있는 밴드다. 어떤 무대에 서든 관객들의 높은 호응과 반응을 끌어내면서 해외에서까지 관심을 보이는 공연계 섭외 1순위로 분류되는 밴드가 됐다. 그렇다면 디쉬크림슨이 생각하는 공연 매력은 무엇일까?

"밴드에 가장 중요한 것이 공연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노력하고요. 노력을 끊임없이 하면 공연능력은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억나는 것이 지난해 제천국제 영화제 공연을 했는데 그때 관객 분들이 동네 주민이라 어린애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계셨는데 잘한다고 하면서 열정을 보여주시는데 큰 감동을 받았어요. 당시 디쉬크림슨을 부르니까 엄청난 호응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러면서 더 힘을 얻고 공연에서 열정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기타연주부터 랩 퍼포먼스, 디제잉까지 하나하나 다 정밀하게 준비하고 있죠. 거기에 씨클의 즉흥적인 공연능력이 워낙 좋아서 이걸 살려주려고 더 노력합니다. 다만 요즘 코로나 19 시국으로 공연을 하지 못해 안타까운 것이 많아요. 사실 일본 쪽에서도 섭외가 와서 공연하기로 했지만, 취소가 됐어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빨리 코로나 19사태가 진정되길 기도합니다."(김인중)

 

◆ 디쉬크림슨 음악적 목표

마지막으로 디쉬크림슨에게 음악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답변은 진지했다.

"지금 활동하는 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이 멤버로 쭉 음악을 지속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돈은 좋은 음악이 나오면 벌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 마음이 맞는 똑같은 멤버들은 두 번 다 시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변함없이 이 멤버들을 지키면서 오래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 흰머리가 됐을 때까지." (씨클)

◆ 멤버소개

 

씨클(보컬)=제주도 출신, 어릴 적부터 음악 듣기를 좋아하면서 많은 음악을 접하게 됐다. 그래서 결국 가장 마음에 맞는 정통 힙합을 시작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전문 정통힙합 뮤지션으로 가려던 꿈을 접었다. 이후 세션과 연주 쪽에 관심이 많았고 여기서 현재의 멤버들을 만나며 디쉬크림슨을 결성했다. 특히 팀의 리더이자 드러머 김인중과는 일시적인 활동을 통해 가장 먼저 인연을 맺었다.

 

김인중(드럼, 리더)=전주 출신. 전 갈릭스 멤버다. 김인중이 주력으로 했던 음악은 펑크, 레게 등이다. 진정한 록 마인드로 무장된 뮤지션, 하지만 어느 날 런디엠씨 등의 뮤지션들의 콜라보 공연을 보다가 아주 신선한 밴드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 씨클을 만나며 팀을 결성하게 됐다.

 

이상훈(기타)=서울 출신, 장구로 음악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국악고를 가고 싶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기타로 진로를 바꿨다. 블루스 로커빌리 등을 연주해왔다. 사실 힙합에 대한 지식은 적은 데 바운스랑 보컬 음색 라임 등이 기타 연습하기에 정말 쉬워 접해보고 나중에 힙합을 해볼까 생각하게 됐다. 결국, 30대에 씨클을 만나면서 팀을 시작하게 됐다. 가사를 보고 음악을 만드는 실력자.

 

브레익손(DJ)=부산 출신. 팀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디제이. 중학교 시절 비보이를 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비보이를 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가 우연히 연습실에 있던 턴테이블을 만졌고 운명을 느꼈다. 이후 돈을 모아 장비를 사고 계속 음악을 만들었다. 결국 새로운 스타일 팀에서 활동하고 싶었고 '힙합밴드' 디쉬크림슨 멤버 씨클의 제의를 받고 합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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