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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정조국이 또 다른 정조국에게 [SQ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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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정조국이 또 다른 정조국에게 [SQ초점]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12.09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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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형은 서른셋에 MVP 탔다. 너는 아직 젊고, 보여줄 게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조국(36·제주 유나이티드)이 18년간 이어온 프로생활을 마감한다.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였던 그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과거의 자신에게, 또 다른 정조국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제주는 9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정조국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도자로 제2 인생을 시작하는 정조국은 “3~5개월 전부터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해서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다. 제주가 K리그2(프로축구 2부)에서 우승했고, 박수 받으면서, 내 스스로 의지로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고 밝혔다.

역시 같은 시기 은퇴를 결정한 이동국(41·전북 현대)만큼이나 정조국도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굴곡진 커리어를 쌓아왔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유망주로 각광받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선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 리그앙 무대를 밟으며 유럽진출 꿈을 이뤘고, K리그에서 롱런하면서 숱하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2016시즌 친정팀 FC서울을 떠나 광주FC에서 새롭게 도전하면서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MVP)을 동시 석권한 건 K리그에서 손꼽는 드라마틱한 반전 스토리로 기억된다.

정조국이 9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지난 18년간의 선수생활을 돌아봤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는 지금이 박수받으면서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최고의 유망주, ‘패기만만’ 19세 정조국

정조국은 2003년 안양LG(현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에 입문했다. 첫 해 32경기에서 12골 2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했고, 올해까지 392경기에서 121골 29도움을 남겼다. 각급 연령별 국가대표팀에서 뛰었고, 2011~2012년 프랑스 리그앙에 진출해 AJ오세르와 AS낭시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프로 데뷔전과 데뷔골을 꼽았다. 당시의 정조국에게 지금의 정조국은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을까.

그는 “냉정히 말해주고 싶다. ‘넌 아직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다’라고. 나만 골 넣으면 되고,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당돌했던 친구를 프로로 만들어주신, 가장 존경하는 조광래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믿고 기다려주고, 따끔하게 조언해주시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감독님이 있어 프로선수 정조국이 있다”고 돌아봤다.

서울을 시작으로 경찰청, 광주FC, 강원FC, 제주 등 총 5개 팀에 몸 담으며 K리그 우승 2회(2010, 2012년 서울), K리그2 우승 1회(2020년 제주),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 1회(2015년 서울), 리그컵 우승 2회(2006, 2010년 서울) 등 트로피 6개를 수집했다. K리그에서 지금껏 신인상, MVP, 득점왕을 모두 차지한 이는 정조국 외에 이동국과 신태용 현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밖에 없다.  

정조국은 “K리그에서 해볼 건 다 해봤다. 가장 아쉬운 건 공격수다 보니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다. 넣은 만큼 놓친 찬스도 많다"면서도 “그래도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허투루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K리그에서와 달리 대표팀에선 기대만큼 보여주지 못했다. A매치 13경기에서 4골을 넣었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전후로 청소년대표에서 한국 축구 미래로 불렸지만 성인 레벨에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는 “월드컵에 못 나갔다는 게 가장 아쉽다. 모두 변명이겠지만 대표팀만 가려고 하면 부상 당하고, 코칭스태프가 관찰하러오면 경기를 망칠 때도 많았다. 기대를 많이 받다보니 자만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선수로서 못 나갔던 월드컵을 지도자로서 나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동안 겪어왔던 착오와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잘 준비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정조국은 박수받을 때 떠나기로 결정했다. [사진=제주 유나이티드 제공]

◆ 축구인생 내리막? 서른셋에 쓴 반전드라마

서울에서 8년을 뛴 뒤 그는 낭시에 입단하며 유럽진출 꿈을 이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두 차례 연속 월드컵 출전에 좌절했던 그지만 유럽에서 가치를 알아본 것. 허나 역시 고전했다. 객관적 지표만 놓고 보면 성공적인 해외생활은 아니었다. 오셰르 시절 포함 주로 교체로 나섰고, 2시즌 동안 도합 4골을 넣는 데 그쳤다.

정조국은 “내 나름대로 그게 최선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즐거운 순간들이다. 월드컵 출전만큼 유럽진출이 꿈이었다. 최근에는 중국, 중동 등 선수들이 원하는 곳이 다양해졌는데, 나는 오로지 유럽진출만이 꿈이었다. (갈 수 있었던 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제3자가 평가하겠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축구를 보는 시선, 인간으로서도 시야가 넓어진 게 사실이다. 지도자 생활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나름 임팩트를 남긴 멋진 골도 좀 넣었다. 후배들이 프랑스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6시즌은 정조국 축구인생 최고의 한 해였다. 프랑스에서 뛰던 때와 안산 경찰청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서울에서만 뛴 그지만 2015시즌 11경기 1골에 그쳤고, 출전시간이 줄며 방출수순까지 겪게 됐다.

그는 “2015년 겨울은 정말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떠나야 할지 남아야 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그만큼 서울은 내게 첫사랑과 같았고, 애사심도 굉장히 강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조국에게 친정팀 FC서울을 떠나는 일은 축구인생 가장 큰 도전이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정조국은 "광주에서 데뷔하던 날 잠을 3시간 밖에 자지 못할 만큼 긴장했다"고 회고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정조국을 움직인 건 아들의 “아빠는 왜 경기 안 뛰어?” 한마디였다. 

그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당시 아내나 부모님도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아들이 해줬다. 아빠로서 정말 창피하고, 어디로든 숨고 싶게 만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결심이 섰다. 축구인생을 걸고 도전해야만 했다. 광주까지 가서 잘 풀리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걸 쏟아 부었지만 쫓기지 않으려 노력했던 때”라고 반추했다. 

하지만 그는 광주로 이적하자마자 보란 듯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33세 나이로 리그에서 20골을 넣고 득점왕과 베스트11, MVP까지 휩쓸었다. 우승 팀이나 준우승 팀이 아닌 제3 구단에서 MVP가 나온 사례는 현재까지 정조국이 유일하다.

그는 “힘들고 어려울 때는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기 마련이다. 상투적인 말일 수 있지만 편안하게 긍정적인 마인드로 하다보면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항상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또한 많은 굴곡이 있었다. 동생들에게 농담 반으로 ‘형은 서른셋에 MVP 탔다’고 ‘너는 아직 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서 “(앞으로) 그런 친구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다”고 힘줬다.

정조국이 후배들에게 건넨 조언에 그의 굴곡진 커리어가 담겨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정조국이 또 다른 정조국에게

2016시즌 정조국이 K리그1(1부) 득점왕을 차지한 이후 4년 연속 토종 공격수가 아닌 외국인선수가 득점왕에 올랐다. 올해 은퇴하는 정조국, 이동국(2009년) 외에 현역 스트라이커들은 득점왕 경험이 없다.  

정조국은 “2003년 프로 데뷔 후 정말 많은 외인들과 경쟁했다. 해볼 만하면 또 다른 외인이 왔다. ‘왜 비싼 돈 줘가면서 외인을 쓸까. 차라리 돈 덜 받는 나를 키워주지. 나도 저만큼 기회주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많이했다”면서도 “돌이켜보면 외인들과 싸우면서 정말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고, 근성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이어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선수들을 닮아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누구나 갖고 있는 스타일이 다 다르다. 자신만의 색깔, 장점, 특징, 무기를 살렸으면 한다. 나 역시 스피드나 헤더, 기술이 특출나게 좋진 않았지만 박스 안에서 슛만큼은 자신 있었다. 외인들과 부딪치면서 그들의 장점을 보고 배우는 한편 자신만의 색깔을 닦아나갔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지도자 역량 역시 중요하다. 선수들을 가르친다기보다 그들의 경기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로 앞으로 그려나갈 지도자 인생 근간이 될 철학도 짧게나마 들려줬다.

산전수전 다겪은 정조국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의 축구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다. 19세 신인상을 탄 그는 33세가 돼서야 MVP에 오를 수 있었다. 멈추지 않고 도전을 거듭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정상에서 내려오는 법을 터득할 수 있기도 했다. 이날 정조국이 과거의 자신과 후배들에게 건넨 말은 곧 ‘또 다른 정조국’에게 전하는 당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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