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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인디레이블탐방] (76) '레전드‘ 크라잉넛의 음악은 크라잉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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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인디레이블탐방] (76) '레전드‘ 크라잉넛의 음악은 크라잉넛이다
  • 박영웅 기자
  • 승인 2021.01.06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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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웅의 밴드포커스’와 함께 연재 중인 ‘인디음악 전문 인터뷰’ 인디레이블탐방이 돌아왔습니다. 수년간 인디신 전문 취재를 통해 다져진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디뮤지션들의 심층적인 인터뷰를 다룰 계획입니다. 뮤지션과 함께하는 음악 리뷰와 여러 이야기를 통해 국내 밴드 음악을 편하게 이해하며 즐기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스포츠Q(큐) 글 박영웅 · 사진 손힘찬 기자] 인디 1세대 밴드 크라잉넛이 지난해 데뷔 25주년을 맞이했다. 이들은 오늘날 ‘인디신’으로 불리는 음악터전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명곡들을 남기며 국내 대중음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런 이유로 크라잉넛은 국내 인디신을 넘어 대한민국 음악시장에서 레전드 밴드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스포츠Q는 2021년 새해를 맞아 인디신의 전설 크라잉넛과 진행한 신년특집 인터뷰를 준비했다.

 

◆ 크라잉넛 역사의 시작 '음악을 몰라도 도전했다'

크라잉넛은 지난 1993년 신나는 우리들만의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을 공유하던 공부 잘하던 동네 친구들이 모여 결성된 밴드다.

이들이 밴드를 결성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놀이문화였고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서였다. 사실 음악을 따로 배우거나 한 적도 없었다. 그냥 음악이 좋았고 함께하는 것이 좋아 곡들을 써나갔고 이런 하나하나의 행보들은 곧 밴드신의 역사가 됐다.

"어린 시절에는 (밴드 음악을 하는 게) 놀이 문화였던 것 같아요. 많은 친구가 밴드 음악에 빠져있었죠. 자연스럽게 밴드 음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들이 들게 됐던 것 같아요. 특히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였는데 한 친구가 메탈리카 음악을 연주했는데 여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더라고요. 이것도 밴드 음악을 하게 된 큰 계기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한경록)

"사실 음악을 배운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계속 시도해보니 뚝딱뚝딱 곡이 만들어졌고 그럴싸하더라고요(웃음). 모두 음악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이후 대학을 갔는데 세계 음악 흐름이 얼터너티브나 펑크 장르가 핫 할 때였죠. 그런데 주위에서 활동하던 대학 밴드나 클럽에서는 얼터너티브, 펑크 장르보다는 모두 헤비메탈을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다는 것에 경쟁력을 느꼈어요. 블루 오션이라 생각을 한 거죠."(이상면)

 

◆ ‘드럭의 아이돌’에서 대한민국 펑크밴드의 대표가 되다

결국 이들은 1995년 ‘인디'라는 단어 자체를 상징하던 공연장 '드럭' 오디션에 합격했고 본격적인 공연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음악을 하는 밴드가 있더라', '한국형 펑크스타일의 탄생' 등. 여러 호평과 함께 크라잉넛은 짧은 시간 동안 초창기 국내 인디신 무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목받는 밴드로 올라서게 됐다. 결국 여세를 몰아 다음 해인 1996년 컴필레이션 앨범 'Our Nation 1'을 발매하고 정식 데뷔 했으며 현재까지도 활동을 이어오며 밴드신 ‘레전드’로 자리하게 됐다.

"우리는 드럭이란 클럽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진짜 잘 버티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당시 시대가 재미있었죠. 운이 좋았어요. 홍대 서교동이라기보다는 상수동 변방에 클럽이었던 드럭에서 95년부터 티켓을 받고 공연을 시작하게 됐죠. 사실 시작할 때는 손님 없었어요. 하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시더라고요. 많은 팬분 중에서는 크라잉넛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오시는 분들도 정말 많았죠."(한경록)

"우리가 만든 노래를 사람들이 따라 부르고 알아주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고 대중들의 관심도가 계속해서 커지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이상혁)

 

◆ 큰 성공의 비결? 카피밴드가 아닌 자작곡 밴드로!

95년 크라잉넛이 공연을 시작하던 당시 인디신에는 최신 유행하던 외국의 인기 밴드들의 곡을 카피해 무대에 서는 팀들이 많았다. 하지만 크라잉넛은 자작곡 무대를 고수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만든 것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적도 없던 이들에겐 이런 선택이 '신의 한 수'나 다름없었다. 만드는 곡마다 히트했고 크라잉넛이라는 밴드의 독보적인 음악 색깔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카피 곡으로 공연하던 팀들이 많이 있었어요. 사실 유명 밴드의 곡을 카피한다는 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죠. 보통 실력으로는 제대로 완성할 수 없는. 더 힘든 작업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우리가 만든 것이 가장 쉽고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작곡으로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죠. 좋았던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스킬이 단련되기 전이었던 만큼 자작곡을 만들면서 서로 발견하고 배우고 하면서 성장했고 진정한 '인디 마인드'가 무엇인지도 깨달았고 '우리만의 음악 스타일'도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대중 여러분들도 우리 음악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먼저 찾아주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크라잉넛이 있게끔 만들어 주신 거죠."(한경록)

"특히 음악에 대해 제대로 완벽하게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작곡을 만드는 과정이 하나의 놀이 같았죠. 자연스럽게 힘들게 배워야 할 것들을 즐겁게 익혀나갔고, 그렇게 초반 10년간 남들이 긴 시간 배워야 할 것을 다 흡수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게 원동력이 돼 저희가 25년을 버틸 수 있었고 현재도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이상면)

 

◆25년? 앞으로 50년이상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이처럼 크라잉넛은 자신들만의 자작곡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발전해오면서 큰 성공을 거두며 부와 명예를 쌓았고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레전드 밴드가 됐다. 그런데 이런 성공의 과정에서 놀랄만한 부분이 있다. 크라잉넛이 그동안 보여준 끈끈한 우정과 의리다. 이들은 지금까지 활동해 오면서 단 한 순간도 멤버 탈퇴나 해체를 걱정해야 하는 불화나 갈등을 겪지 않았다. 오히려 힘겨운 순간에 더욱 똘똘 뭉쳐 여러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었고 꾸준히 크라잉넛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올 수 있었다. 이들의 이런 끈끈한 우정은 크라잉넛이 레전드 밴드로 올라서는데 가장 큰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끈끈함의 비결은 무엇일까?

참고로 박윤식(보컬),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은 중학교 동창으로 만나 지금까지 함께 활동해오고 있으며 김인수(키보드)는 99년 정식 합류했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각자 역할과 장점이 뚜렷한 사람들입니다. 25년간 이런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각자의 벨런스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관계를 이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음향에 관심이 있는 친구, 각자 분위기에 잘 맞는 악기를 잘 다루는 친구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겹치거나 충돌이 잘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 1원까지 소통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원래 친했던 사람일수록 작은 부분에서 더 서로를 배려하고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때문에 저희는 어떤 수익 어떤 부분도 공평하게 나누고 오픈하면서 투명하게 활동해왔습니다. 그러니 싸움이 날 이유가 없죠. 사실 노브레인도 이런 부분을 저희에게 배워간 거예요. 우리가 이런 방식에는 원조입니다(웃음)."(한경록)

 

◆ 크라잉넛 히스토리? 25주년 앨범에 모두 담았습니다

크라잉넛은 자신들의 26년간의 활동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지난해 발매된 25주년 기념앨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의 히스토리를 나열하는 것 보다 25주년 앨범을 직접 들어보는 게 자신들이 걸어왔던 길을 더욱더 빨리 이해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크라잉넛의 25주년 앨범에는 이들의 역사와 발전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크라잉넛은 그동안 총 8개의 정규 앨범을 냈고 이 중 120개의 자작곡을 보유하고 있다. 이중 엄선한 16곡을 25주년 앨범에 담았다. 앨범 속에는 '서커스매직유랑단(1999)', '말달리자(1998)' 같은 초창기 메가 히트곡을 비롯해 사회문제를 직격했다고 평가받는 '지독한 노래(2001)', 헤비메탈 성향의 연주와 청년 문제를 다룬 '비둘기(2009)', 그들만의 발라드 감성을 담은 '밤이 깊었네(2001)', 최근 세대들에게까지 큰 사랑을 받는 한국형 모던펑크이자 크라잉넛의 방향성을 담아냈다고 평가받는 '뜨거운 안녕(2006)', 크라잉넛 제2의 전성기를 열어준 '룩셈부르크(2006)' 등이 수록됐다.

이번 25주년 앨범은 크라잉넛 역사가 담긴 명곡들이 수록됐다는 점 말고도 그들의 음악적 범위를 확장 시킨 앨범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원곡보다 더 라이브적인 느낌을 살려낸 곡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와 최신 장비를 활용해 풍성한 사운드를 구현해낸 음악들, 살짝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한 곡들도 들어있다. 25주년 앨범의 이런 작업은 크라잉넛이 이후에도 새로운 방향성을 담은 또 다른 음악적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예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120곡 이상의 노래들 중에 16곡을 엄선했습니다. 최근 낸 앨범보다는 90년대 느낌, 크라잉넛 초창기 느낌을 살리고 역사를 볼 수 있는 그런 필모그래피 느낌의 앨범이에요. 이 앨범을 듣는 분들은 '크라잉넛이 ‘추억팔이’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활동안 하고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 밴드입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추억팔이가 아닌 추억여행 같은 앨범입니다."(한경록)

"라이브적인 요소를 새로 살려 넣은 곡들도 있고 요즘 느낌으로 재해석한 곡들도 있고 여러 시도를 했어요. 특히 사운드는 예전과 비교해 정말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솔직히 코로나 때문에 이번 앨범에 매진할 수 있었고 만족스러운 25주년 기념 음반이 나온 것 같아요."(박윤식)

"사실 25주년에서 시도한 여러 부분이 앞으로 보여줄 음악적 방향성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는데. 솔직히 음악과 관련해선 규정을 안 해놓습니다. 다양성이 저희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활동 초반에 고민을 많이 한 '펑크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 때문이었죠. 악플이 많았습니다. ‘너희가 무슨 펑크냐?’는 등. 그래서 고민 끝에 자신을 스스로 펑크밴드라고 규정하지 않기로 했죠. 그냥 우린 크라잉넛이고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음악을 하는 밴드라고요. 25주년 앨범을 들어보면 이런 고민의 흔적과 과정들도 고스란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음악을 사랑해주는 분들이라면 꼭 들어봐 주시길 바랍니다."(김인수)

 

◆ 레전드 크라잉넛, 이젠 본인들의 성공을 넘어 신 전체를 바라보다

본인들의 히스토리를 말하던 크라잉넛은 인디신 1세대 밴드이자 레전드답게 신 전체에 대한 걱정스러운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이후 대형 신예 밴드들이 등장하지 않는 얼터너티브&펑크 장르에 대한 걱정이 매우 컸다. 사실 현재 국내 펑크 장르는 맥을 못 추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디팝이라는 가요와의 경계가 모호한 음악들이 대세를 이루며 밴드다운 밴드들은 나타나질 않고 있다.

"기자님이 '인디팝'이라고 요즘 인기 있는 인디신 음악들을 정의해 주셨는데 맞는 표현 같아요. 요즘 신 자체가 대중적인 음악을 중시하는 레이블 중심화가 됐고 이런 레이블들에서는 인디팝을 하려는 뮤지션들만을 주로 찾다 보니 우리같은 하드한 장르를 하는 밴드들은 문턱을 넘어서기 힘든 상황이 된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하드한 밴드만을 다루던 기획사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 보니 매년 괜찮은 팀들은 나오는데 빵 뜨는 팀들은 나오지 않고 있죠."(한경록)

"하지만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요. 결국 하드한 음악들이 다시 인정받는 날이 올 겁니다.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이 계속 나온다면 반대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색이 담겨있는 음악적인 색을 찾아서 꾸준히 활동한다면 기회는 분명 올 겁니다."(이상혁)

"저희를 본다면 크라잉넛은 클럽공연이 재미있어 시작했고 이걸 발판삼아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성공을 위해 기획사를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이 인디신에서 만큼은 먼저 클럽공연을 다니면서 즐기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 활동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음악이 재미있을 때 좋은 곡도 나오고 성공도 따라오는 것 아닐까요."(박윤식)

 

◆ 크라잉넛 향후 계획 '유튜브+신인발굴과 교류'

크라잉넛에게 향후 굵직한 계획들을 물었다. 이들은 인디신의 레전드이자 큰형님들답게 유튜브를 통한 지속적인 공연 활동과 신인 발굴, 동료 밴드들과의 음악 교류로 록 음악 활성화를 이끌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계속해서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 이외에도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죽어가고 있는데 유튜브 방송에 투자해서 많은 밴드가 공연할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크라잉넛쇼'라는 채널을 통해 인디밴드 중 괜찮은 친구들이 한 팀씩 공연하곤 했었는데 이런 식의 채널을 활성화해보고 싶습니다."(이상면)

"사실 이런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훌륭한 신인들을 발굴하고 동료들과 음악 교류를 맺어 더욱더 끈끈하게 발전하면서 록 음악을 활성화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솔직히 록 음악을 많이 못 듣는 이유는 공연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라도 나서서 하나의 공연이라도 더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코로나로 힘겨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대중들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션은 언제나 대중들과 소통해야 합니다."(한경록)

◆ 한줄 목표 그리고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크라잉넛에게 한 줄 목표와 팬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유행에 따라가지 않고 만들고 싶은 대로 가면서 이 시대를 노래하고 싶다. 크라잉넛의 음악은 크라잉넛이니까."(멤버모두)

"팬 여러분들 코로나 19 시국에 우울해질 수 있는데 그럴수록 우리끼리 즐거움을 찾아봐요.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을 음악으로 만들어 봅시다."(멤버모두)

 

◆ 크라잉넛 소개

1993년 서울 동부이촌동 중학생이었던 박윤식(보컬),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이 만나 밴드를 결성했다. 크라잉넛이라는 팀명은 이들이 즐겨 먹던 호두과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었지만 음악은 잘 모르는 문외한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만의 노래를 만들며 실력을 키웠고 언제부턴가 음악을 즐겼다. 99년도에는 키보드 김인수가 합류하면서 현재의 크라잉넛이 완성됐다. 현재 크라잉넛은 인디신 1세대 밴드이자 레전드, 국민밴드로 불리고 있다.

* 대표 히트곡

'서카스매직유랑단(1999)', '말달리자(1998)', '룩셈부르크(2006)', '밤이 깊었네(2001)'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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