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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김하경, '백업' 아닌 '게임체인저' [여자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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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김하경, '백업' 아닌 '게임체인저' [여자배구]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2.25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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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세터 김하경(25·화성 IBK기업은행)이 여자배구 '1강' 인천 흥국생명을 상대로 공격수들을 진두지휘했다. '봄 배구' 진출을 위한 귀중한 승점 획득에 앞장서며 팬들에게 이름을 각인했다.

IBK기업은행은 24일 경기 화성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 2020~2021 프로배구 도드람 V리그 여자부 6라운드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 승리, 3위를 탈환했다.

주역은 단연 김하경. 2014~2015시즌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2순위로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입은 키 174㎝ 세터다. 과거 현 소속팀에서 방출됐던 아픔을 딛고 이날 수훈선수로 선정돼 방송사는 물론 취재진 인터뷰에도 응했다. 최근 김유리(서울 GS칼텍스)가 데뷔 11년 만에 처음 방송 인터뷰를 경험한 걸 떠오르게 한다.

더불어 학폭(학교폭력) 논란으로 흉흉한 배구판에 단비 같은 소식이기도 하다.

2세트 교체 투입된 김하경이 분위기 반전을 이끌며 IBK기업은행에 귀중한 승점 3을 안겼다. [사진=KOVO 제공]

1세트를 따낸 IBK기업은행은 2세트에선 8-11로 밀렸다. 김우재 IBK기업은행 감독은 주전 세터 조송화가 흔들리자 김하경을 교체 투입했고,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김하경은 정확한 패스워크로 야전사령관 노릇을 톡톡히 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공 끝을 제대로 살려줬다. 직전경기 공격성공률 38.78%에 머문 외국인선수 라자레바는 이날 성공률을 58.70%까지 끌어올렸다. 김하경은 세트성공률 53%를 기록하며 2단 패스 페인팅으로 2점을 곁들였다.

특히 2세트 24-23 세트포인트에서 상대가 라자레바의 공격을 예상할 때 김주향에게 토스하는 선택이 압권이었다. 블로킹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은 흥국생명 세터 김다솔이 붙은 김주향에게 공을 띄워 세트를 끝내도록 도왔다.

중계방송사 KBSN스포츠와 인터뷰에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스타팅으로 뛴 적이 별로 없었고 수훈선수가 된 것도 처음"이라며 "지난 경기에서 많은 자신감을 얻어서 오늘 팀에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팬들에게 스스로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하자 "저는 장난기도 많고, 팀 분위기를 띄우려고 활발히 행동하는 선수"라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방송 인터뷰를 끝내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김하경은 "언론 인터뷰 자체가 데뷔 후 처음"이라며 얼떨떨해 했다.

지난 16일 흥국생명전 선발로 나섰을 때도 3-0 완승을 견인했던 김하경. [사진=스포츠Q(큐) DB]

김하경은 올 시즌 팀에 합류한 국가대표 세터 출신 김사니 코치 지도하 착실히 기량을 쌓았다.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한 조송화가 스타팅라인업을 항상 지켰지만 언제 찾아올 지 모를 기회를 기다렸다.

지난해 12월 30일 기회가 찾아왔을 때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GS칼텍스전 앞서 미열 증세를 보인 조송화 대신 선발로 뛰었다. 갑작스레 레귤러로 나서게 된 터라 주포 라자레바와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설상가상 시즌 내내 높은 공격점유율에 지쳐있던 라자레바가 세터와 호흡이 삐걱거리자 의욕을 상실한 듯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해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김하경은 "그때는 갑작스러워서 긴장도 많이 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돌아봤다.

결과적으로 그날의 쓰라린 경험이 약이 된걸까. 

지난 16일 흥국생명전에서 다시 몸이 좋지 않은 조송화 대신 선발 출전해 셧아웃 완승을 이끌고 자신감을 충전했다. 이번엔 팀이 어려울 때 교체로 들어와 게임체인저 소임을 다했으니 앞으로를 기대케한다.

김하경은 지난 2017년 7월 IBK기업은행에서 방출된 적이 있다. 자칫 배구팬 뇌리에서 잊혀질 뻔했지만 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실업팀 대구시청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김우재 감독이 제2 세터로 김하경을 낙점하면서 다시 프로에 복귀하게 됐다.

그는 "방출 당시에는 힘들었는데 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렇게 프로에 다시 올 기회 자체가 흔치 않은데"라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김하경이 데뷔 7년만에 첫 방송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KBSN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김하경은 "경기도 많이 못 뛰고 아쉽게 실업팀으로 가게 됐는데, 다시 돌아왔을 때는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왔다"며 "연습할 때 맞지 않는 부분을 잘 맞추려고 집중했고, 언니들도 '괜찮다. 자신감 있게 올려달라'고 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어느 시즌이든 봄배구는 중요하지만 열심히 한 만큼 올해 꼭 봄 배구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2010년 흥국생명에서 데뷔한 뒤 선배 괴롭힘에 못이겨 배구를 그만뒀던 김유리의 사연과 오버랩된다. 김유리는 배구판을 떠나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다시 실업무대를 거쳐 프로로 돌아왔다. 지난 5일 흥국생명 완전체를 상대로 맹활약한 뒤 첫 방송사 수훈선수 인터뷰를 진행해 감동을 자아냈다.

김하경은 "나 역시 그 인터뷰를 보고 같이 울었다"며 "나도 저런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다시 배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팀원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세터 한 명이서 한 팀을 한 시즌 내내 끌고 갈 수는 없다. 특히 일정이 빠듯하기로 유명한 V리그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라자레바 태업 논란이 일었을 때, 한편으론 IBK기업은행 백업 세터의 경험 부족에 기인한 결과라는 비판도 따랐다. 좀처럼 투입될 일이 없으니 실전감각이 떨어지고 동료와 호흡에서도 아쉬움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김우재 감독은 김하경을 비롯해 이진 등 다른 세터들도 이따금씩 활용하며 선수층을 두텁게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직전경기 연패를 끊어내고 분위기를 반등한 흥국생명을 상대로 김하경의 활약을 앞세워 셧아웃 승리를 거둔 건 여러 의미에서 값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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