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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쟁이' 신춘호 회장 업적 돌아보면, 농심 갈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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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쟁이' 신춘호 회장 업적 돌아보면, 농심 갈 길이 보인다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3.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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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영면에 들었다. 일본에서 간편식 취급받던 라면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맛을 입혀 주식으로 삼게 된 데 그의 철학이 있다. 신 회장 생애를 돌아보면 농심이 걸어온 길은 물론 앞으로 농심이 가고자 하는 방향도 엿볼 수 있다. 

고(故) 신춘호 회장이 지난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65년 창업해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신라면은 전세계 100여개 국가로 수출돼 '한국 식품 외교관'으로도 통한다.

신 회장은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달리 주식이어야 한다며,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범 국가적으로 혼분식 장려운동도 일었으니 전망이 밝다고 봤다.

신춘호 농심 회장이 지난 27일 별세했다. [사진=농심 제공]

신춘호 회장 브랜드 철학은 확고하다. △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 제품명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 △ 그리고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요구했다. 

신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뒀다. 당시 라면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겠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경기도 안성 공장 설립 때도 신 회장 고집이 여실히 드러났다. 국물 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의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turn-key) 방식 일괄 도입은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했다.

당시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재산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새우깡은 4.5톤 트럭 80여 대 물량 밀가루를 사용하면서 개발한 상품이다.

[사진=농심/연합뉴스]

신춘호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통한다. 

농심은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 역대 히트작품들은 신 회장 천재성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 중심이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다. 신 회장이 "내 성(姓)을 이용해 라면 팔아보자는 게 아니다.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한 일화가 유명하다.

신춘호 회장 마지막 작품은 '옥수수깡'이다.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이나, '감자깡', '고구마깡' 등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고 했다. 옥수수깡은 지난해 10월 출시돼 품절대란을 일으킬 만큼 화제가 됐다. 

[사진=농심 제공]
'안성탕면'은 신춘호 회장이 직접 네이밍한 제품 중 하나다. [사진=농심 제공]

그렇게 만들어진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 나아가 한국 라면이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첨병 노릇을 했다. 신 회장은 해외진출 초기부터 신라면 세계화를 꿈꿨다. 신 회장은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디자인도 바꾸지 말자. 최고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주문했다. 

농심이 라면을 처음 수출한 건 창업 6년 만인 1971년. 지금은 세계 100여개 국가에 라면을 공급 중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9억9000만 달러(1조290억 원) 해외매출을 기록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인 만큼 나라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고급화 전략을 내세우기도 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에서 기인했다. 실제 신라면은 미국시장에서 일본라면보다 3~4배 비싸게 팔린다. 

농심 관계자는 "월마트 등 미국 주요유통채널은 물론 주요 정부시설에 라면 최초로 입점돼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춘호 회장 주요 연보. [사진=연합뉴스]

신춘호 회장은 2018년 중국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때,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 라면 1위로 꼽았을 때, 누구보다 환히 웃었다고 전해진다.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힌 뒤 2011년 내놓은 라면이 신라면블랙이었다.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참 어렵게 꾸려왔다. 밀가루 반죽과 씨름하고 한여름 가마솥 옆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내 손으로 만들고 이름까지 지었으니 농심의 라면과 스낵은 다 내 자식같다. 배가 고파 고통받던 시절, 내가 하는 라면사업이 국가적인 과제 해결에 미력이나마 보탰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산업화 과정의 대열에서 우리 농심도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우리의 발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우리의 농심가족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쌓아온 소중한 경험과 힘을,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순수하고 정직한 농부의 마음으로, 식품에 대한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면서 세계로 나아가자.” (고 신춘호 회장 저서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중) 

신춘호 회장은 세상을 떠나기 전 임직원에게 "거짓없는 최고 품질로 세계 속 농심을 키워라"라는 당부를 남겼다. '품질제일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조해온 신 회장 다운 마지막 업무지시다. 신 회장 의지를 이어갈 농심은 현재 미국 제2 공장과 중국 청도 신공장 설립을 진행 중이다.

농심 관계자는 “신 회장님은 최근까지도 신제품 출시 등 주요 경영사안을 꼼꼼히 챙기실 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이 크셨다”며 “마지막까지 회사 미래에 대한 당부를 남기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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