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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완주', 그 누가 돌을 던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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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완주', 그 누가 돌을 던지랴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3.31 0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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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시작은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었지만 결국 무관으로 마쳤다. 하지만 배구판을 통째로 강타한 '학폭(학교폭력)' 쇼크 속에서도 분위기를 추슬러 레이스를 완주한 김연경과 인천 흥국생명에 돌을 던질 이 누가 있으랴.

흥국생명은 3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2020~2021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2-3으로 분패, 2년 만의 V리그 정상 탈환에 실패했다.

앞서 1, 2차전 도합 6세트를 내리 내주면서 20점 이상 기록한 게 단 한 차례에 그칠만큼 무기력했지만 이날은 두 세트를 먼저 뺏기고도 3, 4세트 만회했다. 이미 판세가 기운 상황에서 티켓팅 전쟁을 뚫고 안방을 찾은 홈팬들 앞에서 최소한의 도리는 한 셈이다.

경기를 마치고 만난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김연경 모두 '완주'에 의의를 뒀다.

박미희 감독이 한 시즌을 돌아봤다. 

박미희 감독은 "7번째 시즌인데 가장 긴 것 같다. 우승도 해봤지만, 정말 과정이 쉽지 않다. 스포츠의 가치가 무엇인지 나도, 선수들도 많이 느낀 것 같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칭찬해주고 싶다"며 "외부 요인으로 준비했던 걸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경기 앞서 "부담은 없지만, 챔프전은 리그의 꽃이다. 세트를 이겨야 경기도 이길 수 있는 것"이라는 말로 GS칼텍스의 무실세트 우승을 저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던 그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오늘은 지나간 과거다. 새로운 시즌,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특히 주장 김연경에게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라며 "운동하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을 테지만, 올 시즌에는 특히 심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큰 선수 답게 제자리 지켜주면서 리더 역할 해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김연경 역시 주장으로서 동료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냈다. 

"2차전 끝나고 나서 선수들에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정말 잘했다'는 말을 해줬다. 플레이오프(PO)를 이기다보니 다들 욕심 아닌 욕심이 생겼다. 실력 면에서 GS칼텍스가 낫다고 생각했는데, 욕심내다 보니 아쉬움도 많이 생겼다. '열심히 했다'고 격려해줬다"며 "1, 2차전 모두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졌다. 3차전은 지더라도 물고 늘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할 수 있는 것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흥국생명은 지난여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간판 윙 스파이커(레프트) 이재영을 잔류시키고, 국가대표 세터 이다영을 데려왔다. '월드클래스' 김연경까지 가세하면서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배구연맹(KOVO)컵 결승전 패배는 약이 됐고, 정규시즌 초반 10연승을 달렸다. 연승이 깨진 뒤에도 좀처럼 패하지 않았다.

김연경 역시 다사다난한 한 시즌을 보냈다.

잘 나아가던 중 팀 내 불화설이 제기됐고, 사실로 드러났다.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외국인선수 전력도 정상이 아니었다. 부상으로 외인을 교체했는데, 대체 외인 브루나가 입국하자마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완전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 학폭 사실이 드러나면서 주전 2명이 갑작스레 전력에서 이탈했다. 팀은 흔들렸고, 연패에 빠졌다.

하지만 김연경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섰다. 이전 같은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젊은 선수들 위주로 다음 시즌을 위한 양분을 쌓았다.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을 했고, PO에서도 승리했다. 챔피언결정전 마지막 투혼은 박수를 부르기 충분했다.

김연경은 올 시즌 득점 6위, 공격성공률 1위, 서브 1위, 오픈공격 1위, 시간차공격 2위, 퀵오픈 3위, 후위공격 6위, 디그 5위, 리시브 12위, 수비 7위 등 공수를 막론하고 전 지표에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팀이 위기에 처한 순간 보여준 리더십은 그가 왜 세계적인 선수인지 새삼 알게 했다. PO에서 손가락 인대 부상을 입고도 마지막까지 분투했다. 챔피언결정전 3차전 그는 27점(공격성공률 52.17%), 리시브효율 42.86%, 디그 17개를 기록했다.

김연경은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옆에서 동료들이 많이 도와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겨내고 챔피언결정전 왔다는 것만 해도 잘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내일도 운동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시즌이 끝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오늘 저녁에는 선수들과 술 한 잔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속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음이 무겁고, 좀 더 책임감을 갖게 한 시즌"이라면서 "내 나름대로는 마무리가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올 시즌을 총평했다. 그렇게 11년 만에 돌아온 '배구여제'의 시즌이 마무리 됐다.

박미희 감독과 김연경 모두 잠시 동안 배구는 잊고 쉬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추락할 때 받은 상처도 깊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는 시즌으로 남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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