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6-18 14:27 (금)
레스터 '동화' 시즌2, 아버지 영전에 바친 FA컵 트로피
상태바
레스터 '동화' 시즌2, 아버지 영전에 바친 FA컵 트로피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5.18 0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레스터 시티는 소위 '빅6'라 불리는 강팀 반열에 드는 팀은 아니다. 위상이 제고된 현재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빅6로 분류되진 않는다. 최근 유럽 슈퍼리그 창설을 발표했을 때도 레스터는 그 여섯 주인공들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빅클럽으로 가는 기로에서, 우승 목전에서 늘 고배를 마시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와 달리 레스터는 주어진 기회를 잘 잡고 있다. 최근 5년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에서 한 차례씩 우승하며 토트넘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레스터는 16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첼시와 2020~2021 FA컵 결승전에서 후반 18분 터진 유리 틸레만스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레스터는 그동안 4차례 준우승(1948~1949, 1960~1961, 1962~1963, 1968~1969시즌)에 머문 아쉬움을 씻고 4전 5기 끝에 정상에 섰다. 1884년 창단 이후 137년 만에 첫 FA컵 우승 기적을 썼다.

지난 2015~2016 EPL에서 0.02% 우승 확률을 현실로 이뤄내며 창단 132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동화를 썼던 레스터가 5년 만에 FA컵 챔피언에 등극하며 드라마 '시즌2'를 연출한 셈이다.

레스터 시티가 5년 만에 자국 대회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창단 137년 만에 FA컵에서 처음 우승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레스터 시티가 5년 만에 자국 대회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창단 137년 만에 FA컵에서 처음 우승했다. [사진=AP/연합뉴스]
레스터 시티가 5년 만에 자국 대회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창단 137년 만에 FA컵에서 처음 우승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유리 틸레만스(왼쪽 두 번째)가 그림 같은 결승골로 창단 첫 FA컵 트로피를 선사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레스터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2021~2022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본선 진출권을 확보했다. 리그에서도 현재 3위에 올라있다. 사실상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뛸 공산이 크다.

레스터는 이날 점유율 36-64, 슛 개수 6-13으로 밀렸지만 골키퍼 카스퍼 슈마이켈의 선방쇼와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승리를 따냈다. 후반 18분 틸레만스가 25m 거리에서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첼시 골문 왼쪽 상단을 정확히 찔렀다.

이어진 첼시 공세를 잘 막아낸 레스터가 승리를 확정 짓자 레스터의 함자 차우두리와 웨슬리 포파나는 최근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빚고 있는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펼치며 팔레스타인을 공개 지지해 눈길을 끌었다.

반면 UCL 결승에 진출한 첼시는 더블(2관왕)을 노렸지만 좌절했다. 앞서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 리그에서 UCL 결승 전초전을 벌여 승리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이어 아스날, 레스터에 연패하고 말았다.

레스터 선수들은 이날 3년 전 고인이 된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 전 레스터 구단주를 위해 뛰었다. 경기 전 브랜든 로저스 감독은 "비차이 전 구단주와 함께 뛸 것"이라고 밝혔고, 틸레만스는 결승골을 터뜨린 뒤 "내 골은 그의 가족과 클럽, 유산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수들은 유니폼 안에 비차이 전 구단주 사진을 품고 경기에 나섰다고 한다.

아이야왓 스리바다나프라바 레스터 구단주가 팬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팀을 재건한 아이야왓 스리바다나프라바 레스터 구단주가 아버지 영전에 FA컵을 바쳤다. [사진=EPA/연합뉴스]

태국 출신 비차이 전 구단주는 선수단과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킹파워그룹 회장이던 그는 2010년 레스터를 인수했다. 비차이 전 구단주 부임 후 레스터는 1~2부를 오가는 평범한 구단에서 탈피했다. 과감한 투자로 리빌딩한 레스터는 2014~2015시즌 승격하자마자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과 함께 2015~2016시즌 EPL에서 우승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시즌 전 그들이 우승할 확률이 0.02%로 책정됐으니, 기적을 일으킨 셈이다.

이듬해 UCL에서도 8강에 올랐고, 지난 시즌에도 마지막까지 UCL 진출을 다투다 5위로 마쳤다. 올해는 FA컵에서 우승한 데다 현재 순위를 지켜 4위 안에 들게 되면 다시 한 번 UCL에 도전하게 된다.

비차이 전 구단주는 재정적 결정권을 진 수뇌부가 으레 구단 운영에 깊게 간섭하는 관행에서 벗어난 인물로 통한다. 팀만을 생각하는 태도로 큰 존경을 받았다. 지난 2018년 그가 불의의 헬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레스터 선수들은 모두 그의 자국인 태국까지 넘어가 조문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비차이 전 구단주의 막내 아들 아이야왓 스리바다나프라바가 팀을 이끌고 있다. 우승을 확정한 뒤 로저스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아이야왓 구단주와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아이야왓 구단주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 우승 트로피를 든 뒤 아버지 영정 사진이 있던 경기장 상단을 가리켰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뒤로 하고 팀을 재건한 그가 아버지 영전에 FA컵 우승을 바친 것이다. 레스터의 동화 같은 우승이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감동을 자아내는 이유 중 하나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