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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자던 유상철 이강인, 물거품 된 마지막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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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자던 유상철 이강인, 물거품 된 마지막 소망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6.08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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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건강한 몸을 이끌고 발렌시아에서 제자 이강인(20)의 경기를 관전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이강인의 은사이기도 한 유상철(50)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하늘의 별이 됐다. 

인천 유나이티드에 따르면 유상철 전 감독은 7일 오후 7시경 서울시 송파구 아산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인천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19년 10월 황달 증세로 찾은 병원에서 췌장함 4기 진단을 받은 뒤 투병을 이어갔지만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몸이 건강해지면 제자 이강인(오른쪽)을 보기 위해 스페인을 찾겠다고 약속했던 유상철 감독이 암 투병 끝에 7일 세상을 떠났다. [사진=유튜브 터치플레이 유비컨티뉴 캡처]

 

멀티플레이어의 대명사인 그는 현역시절 수비수와 미드필더 공격수로 활약했다. 단순히 경험한 수준이 아니라 모든 포지션에서 최정상급 기량을 보였다.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거스 히딩크호의 핵심 선수로서 폴란드전 중거리슛으로 골을 터뜨리기도 했고 최후방 수비 역할을 맡으며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A매치 124경기를 뛰었고 18골을 만들어냈다.

은퇴 이후 행보도 주목을 받았다. 병마를 이끌고 팀을 기적적으로 잔류시켰던 인천 시절의 임팩트가 컸으나 지도자로 첫 발을 뗀 건 2007년 KBS 축구 예능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였다.

이 때 연을 맺은 이강인, 이태석(19·FC서울)은 한국 축구를 짊어질 유망한 선수들로 성장했다. 특히 이강인은 2019년 20세 이하 월드컵(U-20)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고 골든볼(대회 MVP)을 차지하는 등 가장 기대되는 대표팀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데, 유상철 감독이 발굴했다고 봐도 무방한 선수다.

세계적인 유망주로 성장한 이강인의 "다시 제 감독을 해달라"는 소망은 유 감독이 유명을 달리하며 지킬 수 있는 일이 됐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당시 ‘날아라 슛돌이 3기’ 감독을 맡은 유상철 감독은 이강인의 재능에 감탄을 나타냈다. 더욱 과감하고 적극적인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도왔고 이강인의 놀라운 능력은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후에도 스승은 이강인의 성장을 적극 도왔다. 이강인은 인천 유나이티드 유스팀을 거쳐 2011년 발렌시아에 입성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대주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유상철 감독의 쾌유를 기원하며 유튜브 채널 터치플레이에서 제작한 콘텐츠 ‘유비컨티뉴’에서 둘의 재회가 그려졌다. 유상철은 ‘건강한 일주일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는 제작진의 질문에 “강인이가 경기하는 걸 현장에서 보고 싶다”고 밝혔다. 각별한 애정을 지닌 제자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떻게 뛰고 훈련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었다.

이후 2019년 12월 한국을 찾은 이강인은 유 감독을 찾았다. 함께 캠핑장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지난 추억을 되새겼고 당시 부상을 안고 있던 제자에게 세심하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몸이 건강했다면 스페인을 찾을 계획이었다는 유 감독의 말에 이강인은 “건강해지셔서 오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강인(2번째 줄, 왼쪽에서 4번째)과 유상철 감독(위, 가운데)과 날아라 슛돌이 시즌3에서 활약했던 이태석(아래, 가운데)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유상철 감독에 대한 고마움과 애도의 뜻을 표했다. [사진=이태석 인스타그램 캡처]

 

이어 유상철 감독은 “선생님이 대표팀 감독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만날 수도 있다”고 말했고 이강인은 “그러면 진짜 좋을 것 같다. 다시 제 감독을 해달라”고 받아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스페인을 찾겠다는 약속도, 대표팀 감독이 돼 다시 한 번 이강인을 지도하겠다는 소망도 모두 이뤄지지 못했다. 유 감독은 치료에 전념했고 한 때 병세가 완화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결국 향년 50세로 세상을 떠나게 됐다.

이강인과 함께 ‘슛돌이’로서 고인의 가르침을 받았던 이태석도 통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태석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유 감독과 함께 했던 추억이 깃든 사진을 올리며 “저에게 축구라는 것을 첫번째로 알려주시고 축구선수라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 지도하에 이렇게 축구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도 정말 재미있게 축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비록 감독님을 뵐 수 없게 됐지만 감독님과 그동안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추억들 잊지 않고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제 힘들어하시지 마시고 편히 하늘에서 쉬세요”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축구계는 물론이고 팬들의 애도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축구사에 지우지 못할 이름 유상철. 스승은 떠났지만 제자들에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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