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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파이네 분노, 이용규 가치 역설 [SQ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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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파이네 분노, 이용규 가치 역설 [SQ이슈]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7.05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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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34·KT 위즈)는 버럭했다. 애써 아니라고 했으나 이용규(36·키움 히어로즈)의 끈질긴 승부로 인한 짜증을 숨길 수 없었다. 

팀의 대승에도 데스파이네는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내려갔다. 이용규는 두 차례 대결에서 16구를 던지게 하며 데스파이네를 끌어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데스파이네 입장에선 충분히 짜증날 법했다.

강제 은퇴 위기에 몰리기까지 했던 이용규지만 자신의 장점을 살리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상대 투수를 괴롭히는 ‘용규 놀이’는 다시 한 번 그 진가를 발휘했다.

키움 히어로즈 이용규(오른쪽)가 4일 KT 위즈전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일 키움과 KT가 맞붙은 수원 KT위즈파크. 3회초 키움 공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2사 1,2루에 이용규가 타석에 나섰는데, 2구를 시작으로 5개의 공을 파울로 걷어내며 풀카운트 승부를 벌였다. 이용규가 10구째 1루수 땅볼로 물러나며 상황이 마무리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데스파이네가 1루로 향하는 이용규를 바라보며 포효했다. 이용규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고 데스파이네 또한 이용규를 쳐다보며 신경전을 벌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벤치클리어링이 금지됐기에 선수단이 전부 그라운드로 뛰쳐나오진 않았으나 사실상 벤치클리어링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은 여기서 종료되지 않았다. 키움 벤치에선 이에 대해 매우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는데, 이어진 3회말 조용호의 타석 때 한현희는 1구를 몸쪽으로 바짝 붙이더니 2구로 다리를 맞혔다. 이에 다시 한 번 양 팀 벤치가 달아올랐다.

큰 소요없이 일단락됐으나 데스파이네는 웃지 못했다. 무실점 투구를 하던 그는 5회 박동원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았고 투구수가 111구까지 불어나 결국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6회 KT가 경기를 뒤집었으나 데스파이네는 승리를 챙길 수 없었다.

3회말 한현희의 투구에 맞은 조용호(가운데)와 고의가 아니라며 억울해하는 박동원(왼쪽). [사진=연합뉴스]

 

경기 후 KT 포수 장성우는 데스파이네의 행동에 대해 대신 해명했다. 단순히 파울을 많이 걷어낸 것 때문이 아니라 2구째 파울을 한 뒤 아쉬워하는 제스처를 취한 게 신경을 건드렸다는 것. 그러나 썩 납득이 될 만한 말은 아니었다. 2구째가 계기가 될 수는 있겠으나 많은 공을 던지게 한 것에 더욱 짜증이 일었따고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렇다고 데스파이네가 이상한 건 아니다. ‘용규 놀이’는 전부터 투수들의 짜증을 불러일으켜 왔다. 시작은 2010년 8월 29일. KIA 타이거즈 소속이던 이용규는 당시 넥센 히어로즈 박준수(현 박승민 KT 코치)에게 20구를 던지게 했다. 이후 많은 공을 걷어내는 것을 ‘용규 놀이’라고 명명하게 됐다. 2015년엔 친정팀을 만나 양현종을 17구까지 던지게 하며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양현종은 결국 조기 강판됐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선 맡은 이닝 혹은 타자를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용규 놀이’로 인해 투구수가 불어난다면 벤치에선 예상보다 이른 교체를 할 수밖에 없다. 상대팀엔 지옥과 같은 ‘용규 놀이’다.

이용규는 여전한 선구안과 컨택트 능력으로 자신의 쓰임을 입증하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부침이 많았다. 2019시즌 주장 완장을 달았던 이용규는 감독의 기용법 등에 불만을 갖고 항명에 나섰다. 그러나 악수가 됐다.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받으며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지난해 타율 0.286, 출루율 0.381의 좋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한화에서 방출된 이유였다.

손을 내민 키움과 계약한 이용규는 건재함을 알리고 있다. ‘용규 놀이’는 여전한 장기다. 주전급 선수들 중 이정후(0.438)에 이어 2위다. 야구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이용규의 타석당 투구 수는 4.47개로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 중 정은원(한화·4.54개)에 다음으로 많았다. 

뛰어난 선구안은 물론이고 컨택트 능력도 여전하다. 방망이를 휘둘렀을 때 공을 맞춘 확률인 컨택트 비율은 93%(리그 2위), 2스트라이크 이후 커트 비율도 89.5%(3위)로 높다. 안 좋은 공은 걸러내고 좋은 공은 걷어내며 상대 투수의 투구수를 늘린다.

매서운 타격감으로 양산해내는 안타, 빠른발을 통한 도루 등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는 예전 일이 됐지만 상대 투수의 멘탈을 흔드는 ‘용규 놀이’는 왜 이용규가 여전히 쓰임새가 있는 선수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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