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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양궁 오진혁 김제덕 김우진, '이보다 조화로울 수가' [도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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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양궁 오진혁 김제덕 김우진, '이보다 조화로울 수가' [도쿄올림픽]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7.2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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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끝.”

최고참은 직감했고 꿈은 현실이 됐다. 양궁에선 다소 낯선 괴성을 질러댄 막내도, 2연속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건 대표 궁사도, 눈물 겨운 투혼을 펼친 베테랑도, 누구 하나 공로를 빼놓을 수 없었다.

오진혁(40·현대제철), 김우진(29·청주시청), 김제덕(17·경북일고)은 26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대만을 6-0(59-55 60-58 56-55)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년 리우 대회에 이은 2연패. 최고의 조화가 이뤄낸 산물이었다. 1988년 서울 대회에서 단체전이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금메달 9개 중 6개를 휩쓴 한국은 남은 남녀 개인전 두 종목에서 2연속 전 종목 석권에 도전한다.

김제덕(왼쪽부터)과 김우진, 오진혁이 26일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대만을 잡아내며 금메달을 수확했다. [사진=연합뉴스]

 

◆ 편견 깬 ‘괴성궁사’ 김제덕, 한국양궁 10년을 짊어지다

지난해 어깨 부상으로 대표 선발전을 포기했던 김제덕은 이번 대회 현재까지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올랐다.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올림픽에 첫 출전하는 고교궁사를 향한 시선은 기대보다는 우려에 더 가까웠다. 올림픽 금메달을 하나씩 안고 도쿄행에 오른 선배들과 달리 고교생 김제덕이 사고를 칠 것이라는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뚜껑을 열자 김제덕은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남자 개인전 예선에서 선배들을 제치고 전체 1위로 상위 라운드로 향했고 대한양궁협회가 정한 원칙에 따라 이번 대회 처음 도입된 혼성 경기 대표로 선발됐다.

어딘가 독특했다. 기존 양궁 선수들에게선 흔히 들을 수 없었던 함성이 경기 내내 터져나왔다. 관중석이 아닌 경기 중인 김제덕에게서 나온 ‘괴성(?)’이었다. 양궁은 조용한 스포츠라는 편견을 깬 생소한 외침은 마찬가지로 처음 올림픽에 나선 여자 막내 안산에게도 그대로 전달됐고 둘은 초대 혼성 대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단체전에서도 김제덕의 ‘패기’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힘찬 응원 구호로 선배들에게 힘을 전하는 동시에 상대의 기선을 제압했다. 더불어 선배들이 활을 당길 땐 뒤에서 시간을 세주고 오조준에 대해 활발히 소통하며 막내 이상의 역할을 다했다.

4강에서 성사된 한일전이 백미였다. 한 세트씩 차례로 따낸 한국과 일본은 결국 슛오프로 향했다. 세 발씩 쏘는 슛오프에서 첫 주자 김우진이 9점을 쐈고 일본 가와타 유키는 10점에 화살을 적중시켰다. 부담이 클 법한 상황에서도 김제덕은 10점을 쐈다. 중심부로부터 3.3㎝. 5.7㎝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와타의 화살보다 더 안쪽이었다. 양팀 마지막 주자가 모두 9점을 쏴 동점. 결국 김제덕이 중앙에 쏘아올린 한 발 덕에 한국은 결승으로 향할 수 있었다.

선배들의 활약에 큰 소리로 응원을 보내고 있는 김제덕(왼쪽). [사진=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우진은 “(김제덕이) 엑스텐(과녁 정중앙)에 가까운 걸 쏴주면서 분위기가 확 반전됐다. 제덕이가 만들어줬다”고 호평했고 오진혁은 “김제덕 선수가 영웅이 맞다. 힘든 상황마다 10점을 쏴주면서 분위기 계속 끌고 가 줬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 정말 고마운 동료이자 고마운 동생”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담대한 경기력은 결승에서도 이어졌다. 김제덕은 큰 소리로 포효하며 선배들에게 힘을 전했고 결국 처음 나선 올림픽에서 2관왕에 올랐다. 도쿄올림픽은 향후 10년, 어쩌면 그 이상 김제덕의 시대를 알리는 대회가 될 전망이다.

◆ “끝”, 오진혁의 인간극장 ‘힘줄 하나로’

1999년 충남체고 3학년 때 태극마크를 단 오진혁은 국군체육부대(상무) 전역 후에도 팀을 찾지 못하며 방황했지만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의 도움으로 현대제철에서 인생 제2막을 맞는다.

2009년 다시 대표팀에 선발됐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로 스타 탄생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개인전 정상에 우뚝섰다. 여자에 비해 다소 기세가 약했던 한국 남자 양궁이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수확한 값진 금메달이었다.

영광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리우 대회를 앞두고 선발전에서 탈락했고 이듬해 오른쪽 어깨 근육이 찢어졌다. 고질적인 문제를 보이던 어깨에 결국 크게 탈이 났고 의사로부터는 은퇴 권유까지 받았다. 어깨 회전근 힘줄 4개 중 3개가 끊어졌고 하나 남은 힘줄로 활시위를 당겼다. 자칫 어깨가 크게 망가질 수도 있는 상황.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한 발을 날리고 관중석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미소짓는 맏형 오진혁.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올림피언으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었던 오진혁은 투혼을 발휘했다.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회가 1년 미뤄지면서 고통의 크기도 그만큼 더 커졌다. 어깨 근육 유연성을 늘려주는 주사를 맞아야만 대회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혹의 궁사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고 투혼으로 짜내는 힘은 고통의 크기보다 컸다. 연년생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라도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렸다.

개인전 금메달의 영광을 누렸으나 단체전은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 단체전 동메달에 그쳤는데, 당시 3연속 정상 수성에 도전했던 터라 더욱 뼈아픈 실패였다. 단체전 2연패 달성에 어떻게든 보탬이 되겠다는 각오였다.

가장 큰 고비였던 일본과 준결승에서도 침착하게 시간을 활용하며 중요한 길목마다 10점을 쐈다. 

대만과 결승전 두 세트를 모두 잡아내고 4-0으로 앞선 3세트. 46-55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 오진혁. 9점 이상을 쏴야 금메달을 확정짓는 상황. 오진혁은 활시위를 힘껏 당겨 화살은 쏴보낸 직후 “끝”이라고 외쳤다. 놀랍게도 과녁 정중앙에 꽂히는 10점으로 마무리한 오진혁의 드라마 같은 피날레였다.

양궁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된 오진혁. 연합뉴스에 따르면 시상식을 마친 오진혁은 “중년 여러분도 할 수 있다. 안 해서 못하는 것”이라며 “젊게 마음을 먹으면 몸이 젊어진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울림을 전했다.

대표팀 에이스 김우진은 듬직함으로 선후배간 가교 역할을 하며 조직력을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 단체전 2연패 김우진, 최고의 결혼 선물

고교시절부터 태극마크를 단 김우진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올랐고 이듬해 세계선수권에서도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했지만 2012년 런던 대회를 앞둔 선발전 문턱을 넘지 못하며 슬럼프에 시달렸다.

힘겹게 나선 2016년 리우에선 달랐다. 구본찬(현대제철), 이승윤(광주남구청)과 함께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들어올렸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궁사로 발돋움했다. 바늘 구멍 만큼 뚫기 힘들다는 대표 선발전까지 2대회 연속 통과하며 도쿄올림픽을 겨냥했다.

20살 이상 차이로 삼촌과 조카 혹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도 볼 법한 오진혁과 김제덕 사이에서 김우진은 가교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래로는 김제덕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편한 선배가 돼줬고 오진혁에겐 편하게 다가가며 조직력을 끌어올렸다.

패기 넘치는 김제덕(왼쪽부터)과 편한 분위기를 형성해준 김우진,오진혁은 올림픽 단체전 2연패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사진=연합뉴스]

 

김제덕은 “형들이 ‘오늘 하루만 더 미치자’고 계속 말해줬다”며 “욕심을 부리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몸에 힘이 들어가서 원하는 슈팅이 안 나온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형들과 대화하며 파이팅하면서 즐겼다”고 말했다.

가장 안정적이고 탄탄한 실력의 김우진은 선후배가 모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오진혁이 결정적인 순간 10점을 쏘아올리고 김제덕이 결승행을 가른 한 방을 날릴 수 있었던 것도 김우진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어 부담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경기에 나설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번 금메달은 김우진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오는 12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랑 김우진은 충북도청에 근무하는 예비신부에게 더 없는 결혼 선물을 안겨주게 됐다. 1년 미뤄진 올림픽 때문에 덩달아 결혼 일정도 밀렸지만 이젠 한층 더 당당하게 웃을 수 있게 됐다.

오늘의 동료는 내일의 적이 된다. 27일 시작해 오는 31일 끝나는 남자 개인전에서 각자 다른 목표로 정상을 노린다. 오진혁은 9년만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김우진은 간절히 바랐던 첫 올림픽 개인전 우승, 김제덕은 3관왕과 함께 ‘황제’ 등극을 노린다.

셋은 시드를 결정짓는 랭킹라운드에서 1~3위를 휩쓸어 준결승이나 결승에 가서야 만나게 된다. 포디움에 모두 함께 올라서는 희망찬 기대도 충분히 가능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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