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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銀' 조구함, 한국유도 구한 '난세영웅' [도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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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銀' 조구함, 한국유도 구한 '난세영웅' [도쿄올림픽]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7.30 0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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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비록 그토록 갈망하던 금빛은 아니었지만 그는 2020 도쿄올림픽 한국 유도 선수 중 포디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조구함(29·KH그룹 필룩스). 그의 이름처럼 한국 유도를 벼랑 끝에서 끌어올리며 구해냈다.

조구함은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대회 유도 남자 100㎏ 결승에서 일본 혼혈 선수 에런 울프와 골든스코어(연장전) 끝에 안다리 후리기 한판으로 졌다.

9분 35초에 달하는 장시간 혈투 끝 결과는 아쉬웠지만 5년 전을 떠올리며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조구함이 29일 2020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100㎏에서 은메달을 차지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6년 리우 대회는 조구함에게 악몽과 같은 기억이다. 힘겹게 잡은 앞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왼쪽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된 것.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황 속 의사의 수술 권유도 뿌리치고 부상 투혼을 택했다. 자칫 선수 생명을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었으나 조구함은 리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16강전에서 한판패를 당한 뒤 곧바로 귀국했다. 한국 유도는 당시 세계 1위를 4명이나 보유하고도 단 하나의 금메달도 수확하지 못했는데 이는 16년 만의 수모였다. 조구함은 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대표팀은 절치부심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쉽사리 분위기를 반전하지 못했다. 선수촌 훈련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청천벽력 같았다. 훈련할 마땅할 곳을 찾지 못해 헤매는 시간이 길어졌다. 조구함 또한 방황했다.

9분 35초간 혈투 끝에 최후의 패자가 됐지만 조구함은 이번 대회 한국 유도 유일한 결승 진출자로 이름을 올렸다. [사진=연합뉴스]

 

이는 이번 올림픽 부진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남자 유도 66㎏급 안바울(남양주시청)과 73㎏급 안창림(KH그룹 필룩스)이 동메달을 얻은 게 전부였다. 단 한 명도 결승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노골드’를 떠나 은메달도 하나도 얻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였다. 1972년 뮌헨 대회 이후 한국 유도가 은메달도 얻지 못한 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결전의 날을 준비했다. 이름부터 나라 조(趙)에 구한다는 뜻을 더한 것인데 한국 유도를 구해내야 하는 상황과 딱 맞아 떨어졌다.

16강에서 장기인 업어치기 두 번으로 한판을 완성한 조구함은 8강에서 뒷치기 절반으로 준결승까지 쾌속 질주했다. 행운도 따랐다. 4강에서 만난 호르헤 폰세카(포르투갈)이 경기 초반 손에 경련이 일었고 절반 승리를 따내며 결승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결승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울프 애런은 조구함을 철저히 분석하고 나왔고 업어치기에 대비해 좀처럼 깃을 내주지 않았다. 정규시간 4분을 그대로 흘려보낸 둘은 골든스코어에 돌입했는데 여기서도 쉽사리 기술을 시도하지 못하고 지쳐가기만 했다. 점차 발이 무거워졌고 언제까지 경기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연출됐다.

아쉬운 패배 뒤에도 승자를 추켜세워주는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조구함(왼쪽). [사진=연합뉴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마지막 힘을 쥐어짠 울프 애런이 밭다리 기술을 걸었는데, 피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한판패.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눈물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조구함은 감격의 눈물을 짓는 애런에게 다가가 따스한 포옹으로 축하의 뜻을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조구함은 “국가대표 생활을 10년 동안 하면서 가장 강한 상대를 만난 것 같다. (패배를) 인정한다”며 “결승에서 일본 선수를 만나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바랐다. 자신감이 있었는데 실력이 부족했다. 상대가 강했다”고 인정했다.

아직 끝은 아니다. 이루지 못한 포디움 최상단에 서겠다는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조구함은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3년 뒤 파리에선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구함은 커리어에 올림픽 은메달을 하나 추가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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