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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퍼펙트게임 '제로' 한국프로야구, 그 가능성을 심히 탐(探)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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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퍼펙트게임 '제로' 한국프로야구, 그 가능성을 심히 탐(探)하다
  • 류수근
  • 승인 2015.05.18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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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류수근 국장] ‘1876, 1936, 1982.’ 세 숫자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메이저리그(MLB), 일본프로야구(NPB), 한국프로야구(KBO)가 탄생한 해다.

세 연도가 말해주듯 프로야구가 융성한 3국 중 한국프로야구는 막내 중에서도 한참 어린 ‘늦둥이’ 격이다. 메이저리그와는 106살, 일본프로야구와는 46살의 차이가 난다.

메이저리그는 1876년 내셔널리그와 함께 스타트했다. 1901년부터는 아메리칸리그와 양 리그 체제가 됐다. 일본프로야구는 1936년 일본직업야구연맹을 출범시켰고 1950년부터는 센트럴과 퍼시픽 양대 리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막둥이’ 한국프로야구는 올해로 34시즌째를 맞았다. MLB나 NPB와는 역사적으로나 구단 수, 시설 면이나 관중 수 모든 면에서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인다.

‘늦둥이’ KBO, 짧은 역사 속 기록적인 성장세 보여 

▲ 두산 외국인투수 유네스키 마야가 지난달 9일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한국프로야구 사상 13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9이닝 동안 136개의 공을 던졌고 삼진은 8개를 잡아냈지만 볼넷을 3개 허용했다.  [사진= 스포츠Q DB]

한국프로야구는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야구월드컵과 올림픽에서의 눈부신 선전은 한국야구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박찬호를 비롯해 추신수와 류현진 등이 뛰었거나 활약 중이고,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선동열 이종범 조성민 이승엽 등에 이어 이대호 오승환이 선전하고 있다. 한국프로야구는 올해 10구단 원년 시대를 맞아 840만 명의 관중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록적인 면에서도 MLB와 NPB의 각종 투타 기록을 꾸준히 쫓아가고 있다. 경력이 상대적으로 짧아 팀이나 개인의 통산 기록은 MLB나 NPB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단일 시즌이나 경기당 투타 기록 등에서는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타자와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는 타격 3관왕과 투수 3관왕이다. 전자는 타율, 타점, 홈런을 일컫고 후자는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을 말한다. 이런 기록들은 한 시즌을 기준으로 통계가 이뤄지고 순위가 매겨진다.

개중에는 시즌 단위가 아니라 제한된 수의 경기를 기준으로 하는 위대한 기록들도 있다. 타자 들이 노리는 사이클링 히트와 사이클링 홈런, 투수들이 도전하는 노히트 노런, 퍼펙트 게임 등이 대표적인 기록들이다. 한 타자가 만드는 사이클링 히트(안타-2루타-3루타-홈런)는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꽤 많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이클링 홈런(솔로-투런-스리런-만루)은 한미일 프로야구 1군에서 아직 단 한 번도 탄생한 적이 없다.

미국과 일본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기록은? ‘퍼펙트게임’

노히트 노런은 최소 9이닝 동안 단 하나의 안타와 득점도 허용하지 않고 완료한 게임을 일컫는다. 볼넷, 몸에 맞는 볼, 실책 등에 의한 출루나 실점은 허용된다. 우리나라에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투수는 13명이나 된다. 지난달 9일 두산의 외국인 선발투수 유네스키 마야는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의 최근 히어로가 됐다.

투수에게는 노히트 노런 보다 더 값진 ‘꿈의 기록’이 있다. 최고 순도를 자랑하는 ‘퍼펙트 게임’이다. ‘퍼펙트 게임’은 상대팀 타자를 단 한 번도 출루시키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다. ‘퍼펙트 게임(perfect game)’이외에 ‘퍼펙토(perfecto)’라고도 한다. 그대로 번역하면 ‘완전한 경기’다. 일본에서는 ‘완전시합’이라고 한다.

9이닝 동안 27명의 타자를 모두 범퇴시키고 승리하는 게 최소한의 조건이다. 안타는 물론, 사사구와 실책도 허용되지 않는다. 9이닝을 완벽하게 던지고도 승부가 나지 않아 연장전에 돌입하면 경기에 이길 때까지 주자를 내보내지 말고 계속 던지면서 승리해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876년 역사가 시작된 이래 모두 23차례의 퍼펙트 게임이 나왔다. 1880년에 1호를 시작으로 19세기에 2번, 20세기에 14번, 21세기에 7번이다. 가장 최근의 퍼펙트게임은 2012년 8월 15일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 펠릭스 에르난데스에 의해 달성됐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통산 15차례가 나왔다. 1950년 1호를 필두로 50년대 5차례, 60년대 5차례, 70년대 4차례였고, 그 후 뜸하다가 90년대 딱 한 차례 있었다. 199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마키하라 히로미가 거둔 게 최근 기록이다.

반면 한국프로야구에는 퍼펙트게임 기록이 ‘제로’다. (한 차례 있긴 하지만 2군에서 나온 기록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이용훈이 2011년 9월 17일 한화 이글스와의 2군 경기에서 달성했다.)

‘퍼펙트게임’은 신만이 아는 ‘꿈의 기록’

"여기 아오모리시영구장에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첫 '완전시합'이 달성됐다'" 일본 본토 최북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아오모리의 시영구장에 서 있는 후지모토 히데오의 퍼펙트게임 기념비의 비문이다. 지난 2004년 일본특파원 시절 도쿄에서 항공기편으로 아오모리에 도착해 택시편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공원 안에 있는 시영구장 한 켠에 깔끔하게 대리석으로 조성된 기념비가 있었다. 기념비 아래 석판에는 퍼펙트 게임 기록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한국 언론인 최초로 취재했다는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퍼펙트게임’은 말 그대로 ‘완전한 경기’다. 투수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꿀 것이다.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뒤 관중들의 연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동료들의 헹가래로 공중에 치솟는 꿈, 영화의 주인공이 이 보다 더 극적일 수 있을까? 하지만 몇 백 승을 올린 대투수라고 해도 퍼펙트 게임만은 남의 일로 여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야구는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행운이 70%이고 재주는 30%라는 얘기다. 운 없이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퍼펙트게임은 실력에다 ‘운칠기삼’ 이상의 행운이 깃들어져야 가능한 ‘신이 내리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22년 5번째 퍼펙트게임 이후 1956년 6호가 나올 때까지 34년이란 긴 공백기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는 달성빈도가 늘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은 무려 6차례나 포효가 이어졌다. 2012년에는 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3차례의 무결점 경기가 완성됐다.

퍼펙트게임 기록의 양산 여부는 타자 우선 시대냐 투수 우선 시대냐 하는 점과, 피칭과 타격 기술, 장비의 향상, 규칙의 변화 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1961년 이후 구단수가 16팀에서 30팀까지 늘어난 점이 퍼펙트게임에 용이한 환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구단의 증가로 경기수가 늘어나 기록이 탄생할 기회가 늘어났고 뛰어난 선수들의 특정 구단 쏠림 현상이 약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투수들은 던지기가 용이해졌다.

한국프로야구는 역사가 짧아 퍼펙트게임이 없다고?

한국프로야구에는 왜 단 한 번의 퍼펙트게임 기록도 없을까? 역사가 짧아서 일까?

MLB와 NPB 기록은 프로야구 역사와 퍼펙트게임 수와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올해로 140시즌째를 맞는 메이저리그는 그동안 23차례를 기록했으니 약 6년만에 한 번씩 퍼펙트게임이 탄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80번째 시즌을 맞는 일본은 간격이 더 짧아서 5년여만에 한 차례꼴로 ‘완전시합’이 성사됐다.

이 계산을 적용하면 34시즌째를 맞는 한국프로야구는 단순 비교로 5~6차례의 퍼펙트게임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제로’다. 왠지 좀 머쓱해지는 숫자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1922년 찰리 로버트슨(시카고 화이트삭스)이 5호를 달성한 이후 34년만인 1956년 돈 라센(뉴욕 양키스)의 6호가 나오기까지 34년이 걸린 적이 있었다. 이 공백기를 고려하더라도 이제는 한국 팬들도 제1호 ‘퍼펙트게임’을 지켜볼 때가 됐다.

한국인은 ‘퍼펙트게임’을 이룬 적이 있다? 없다?

▲ 후지모토 히데오의 퍼펙트 게임 기념비에 설치되어 있는 석판이다. 경기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경기 시간은 1시간 19분. 오후 4시14분에 시작된 경기는 5시33분에 초스피드로 끝났다. 내야플라이 3, 외야플라이 6, 내야땅볼 11, 탈삼진 7이었다고 적고 있다.

메이저리그 첫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은 리 리치몬드였다. 언더핸드스로로 던지는 등 지금의 야구와는 여러 가지 룰이 다른 시대였다. 우스터 루비 렉스(필라델피아 필리스 전신)의 좌완 투수였던 그는 1880년 6월 12일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블루스와의 경기에서 역사적인 첫 기록을 던졌다.

리치몬드는 이날 경기에서 5탈삼진에 외야 플라이 볼은 3개만 허용했다. 경기는 1-0 승리였다. 리치몬드의 퍼펙트 게임은 메이저리그 출범 5시즌째에 나왔다.

1950년 6월 28일, 메이저리그보다 70년 늦게 일본프로야구 사상 첫 퍼펙트게임이 탄생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후지모토 히데오(藤本英雄)가 그 주인공이다. 후지모토는 일본 본토 최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 시민구장에서 벌어진 니시닛폰 파이어리츠 전에 선발 등판, 역사적인 첫 ‘완전시합’을 거두며 4-0 승리를 이끌었다.

후지모토의 나이 만32세 1개월은 현재까지도 NPB 사상 최연장자 퍼펙트 게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일본프로야구 시작 15시즌째에 나온 기록이었다.

‘후지모토 히데오(1918~1997)’, 그런데 그 이름에는 아픈 한국의 역사가 숨어 있다. 그의 본명은 ‘이팔용(李八龍)’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8세 때 부모를 따라 부산과 마주하고 있는 야마구치현 시모네시키시 히코시마로 이주했다.

히코시마소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후지모토는 세모노세키상고, 메이지대를 거쳐 1942년 도쿄 교진군(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는 강속구를 앞세워 프로 데뷔 첫해에 패전 없이 10연승을 올렸고, 2년째에는 34승 방어율 0.73 탈삼진 253개로 최다승, 최우수방어율, 최다탈삼진, 최고승률, 최다완봉승 등 5관왕을 차지했다.

1943년에는 나고야전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고, 일제의 태평양전쟁 기간 중이던 1944년에는 투수 겸 3번 타자이자 감독까지 겸임했다. 지금까지도 만25세 감독은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1947년 주니치로 이적했으나 어깨 통증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채 이듬해 요미우리로 다시 복귀했다. 하지만 봅 펠러(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투수)가 집필한 투구기술서를 통해 ‘슬라이더’를 스스로 터득, 어깨 부상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첫 퍼펙트게임은 당시 ‘마구’로 통한 ‘슬라이더’를 앞세워 이뤄졌다. 후지모토의 ‘퍼펙트 게임’ 달성 과정을 보면 정말 신이 내려주는 기록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시 니시닛폰 파이리츠와전의 선발은 후지모토가 아니라 다다 후크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다가 식중독으로 복통을 호소하는 바람에 후지모토가 대신 선발 마운드에 올랐다. “아오모리의 등판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후지모토는 전날 홋카이도 하코다테에서 아오모리로 이동하는 연락선 속에서 밤새 마장을 즐겼다. 수면이 절대 부족했다.

▲ 요미우리의 역사를 담은 기념집에는 후지모토 히데오의 1호 퍼펙트 게임 내용이 빠짐없이 기재되어 있다. 2000년 우승기념호인 '교진군역사신문'에는 "후지모토가 했다. 완전시합이다!-프로야구사상 최초의 쾌거'라는 제목아래 경기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슬라이더가 선명했다. 최후의 타자도 삼진으로 조였다"라는 박스기사도 눈에 띈다.(이상 아래 중앙)  2004년까지 요미우리 70년사에는 "타격도 빛난, 사상 첫 완전시합 투수"라는 제목아래 그의 활약상을 기술하고 있다. (아래 오른쪽).

일본 북동부지역 순회 원정경기였던 터라 경기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적었다. 교진군 담당 취재기자들 대부분이 도쿄로 돌아갔고 단 4명의 기자만이 경기를 지켜봤다. 카메라 기자는 전무해 역사적인 기록달성의 순간은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못했다. 투구 수는 92구, 7탈삼진에 내야땅볼 11개, 내야 플라이 6개, 외야플라이 3개였고, 최종 스코어는 4-0 승리였다.

천부적인 재능에 망국의 한을 가슴에 안고 강속구와 마구를 장착했던 이팔용, 일본프로야구 제1호 퍼펙트 게임은 한국인이 만든 기록이었지만 후지모토라는 일본인 이름으로만 빛나고 있다.

‘운칠기삼’의 30%는 기술, 땀으로 그 가능성을 높여라

‘퍼펙트 게임’의 가능성을 높일 방법은 없을까? 2010년 뉴저지 공과대학 브루스 뷰키에 교수가 수리모형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통산 311승(205패)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톰 시버는 퍼펙트게임 가능성이 MLB 사상 7번째로 높았다.

하지만 시버는 퍼펙트게임을 끝내 맛보지 못했다. 반대로, 돈 라센은 1956년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유일하게 포스트 시즌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지만 명예의 전당은 커녕 올스타 선출 경험조차 없었다. 개인 통산 81승(91패)을 기록했다.

이미 언급한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30%’는 기술, 즉 노력으로 가능하다. 돈 라센은 톰 시버의 승수보다 4분의 1에 못 미치는 91승을 올렸지만 그 역시 충분히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고 성심껏 경기에 임하다 보니 꿈의 기록을 안을 수 있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도 남부럽지 않은 실력을 갖춘 투수였다.

퍼펙트 게임은 리그별로 팀 기록과의 관계가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투수의 기록으로 보는 게 대세다. 그런 만큼 퍼펙트 게임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투수의 완벽한 피칭이다. 단 하나의 안타, 단 하나의 사사구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볼넷을 허용하지 않는 제구력은 필수다. 그러면서도 적어도 9이닝이상을 혼자서 투구해야 한다.

이처럼 구위와 구종은 물론 흔들림 없는 체력과 지속적인 집중력까지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배짱도 갖춰야 한다.

속된 말로 투구가 ‘꽂히는 날’이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투수의 호투만이 100%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다. 퍼펙트게임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야수들도 도와줘야 한다. 포수의 완벽한 포구와 블로킹, 내·외야수 구분할 것 없이 빈틈없는 수비가 후원해줘야 한다. 단 한 번의 미트질이나 글러브질, 타구 판단미스는 퍼펙트 게임을 헛되이 만든다. 공격에서는 적절히 점수를 내서 리드해 줘야 한다.

퍼펙트 게임에서도 두서너 차례는 안타 성 타구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수비수의 손에 자석이 붙어있는 듯 척척 빨려 들어가고 유격수나 3루수도 이날만큼은 자로 잰 듯 1루에 총알 송구를 뿌려대야 한다.

감독과 코치의 전략도 맞아떨어져야 한다. 상대타자의 타구방향을 예측한 시프트도 적중해야 하고, 마운드에서 잠시 흔들리더라도 그날만큼은 투수를 믿어줘야 한다.

퍼펙트 게임을 위해서는 상대팀 타선도 도와줘야 한다. 한복판에 들어오는 직구에도 무언가에 홀린 듯 연방 헛쳐야 하고, 날카로운 변화구에 헛방망이질도 해줘야 한다. 치는 타구마다 상대 수비수 방향으로 날아가 줘야 하고, 한참 잘 맞는 타자가 부상으로 빠지면 금상첨화다. 이처럼 퍼펙트게임 패배를 당하는 팀에는 ‘지지리도’ 운 없는 일들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대외적인 변수도 존재한다. 구장의 환경, 잔디의 상태, 외야 펜스의 높이, 바람의 세기 등이다. 아무래도 외야가 넓고 잔디가 고르게 자라고 바람 없는 환경이 퍼펙트 게임에 유리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퍼펙트 게임은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이뤄지는 ‘종합예술의 정수’다.

한·일 투수와 수비 기록 비교 ‘기본기 차이에 주목하라’

행운도 실력 있는 자에게 따르기 마련이다. 퍼펙트 게임에도 안정된 투수력과 수비력이 기본 조건이다. 여러모로 일본프로야구는 우리와 비교된다. 메이저리그보다 역사가 짧고, 이웃한 나라이며, 선수들의 신체조건이 유사하다. 그라운드에서 나타난 기록들을 비교하면 우리보다 일본프로야구가 훨씬 퍼펙트 게임에 가까운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14시즌 일본프로야구와 한국프로야구의 투타 기록을 잠시 살펴보자.

 
 

지난해 한 시즌동안 투수기록을 보면 한국프로야구 기록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평균자책점은 평균 1점대 가까이 높고, 피타율도 1푼 정도 많다. 볼넷을 내주는 4구율도 한국팀들이 높다. 폭투도 많다. 한국이 일본보다 적은 경기를 소화했다는 점을 반영한다면 기록은 더 나빠진다. 또 눈에 띄는 것이 완투와 완봉 숫자다. 한국은 대부분 ‘5’이하다. 9이닝이상 버텨야 가능한 만큼 완투 능력은 ‘퍼펙트게임’의 필수 조건이다.

 
 

수비기록에서도 한일간의 차이가 크다. 한국타자의 높은 타율은 그만큼 퍼펙트게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수비력을 눈여겨 볼만하다. 수비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경기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팀 실책이 대부분 더 많다. 패스트볼(포일) 빈도도 높은 편이다. 동일한 대외조건이라면 일본 투수가 더 야수를 믿고 던질 수 있다. 자신의 능력과 무관하게 상대 타자가 출루할 확률도 그만큼 낮아진다. 한 명이라도 1루를 밟으면 ‘퍼펙트게임’은 허공으로 날아간다.

전문가 조언 “완투형 능력을 키워야”

프로야구는 각국에 놓인 상황과 여건이 꽤 다르다. 플레이하는 선수와 코칭스태프, 구장 시설과 그라운드 상황, 응원 문화도 다르다. 이런 면에서는 한일 기록을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플레이는 상대적으로 실패율을 낮춘다는 점이다. 퍼펙트게임에 필요한 투수력과 수비력에 도움이 될 만한 기본기 두 가지를 전문가에게 물었다.

스포츠Q 편집위원인 박용진 전 감독은 “우선 완투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투 능력의 상실은 투수 분업화가 주된 요인이다. 최동원 선동열 시대는 선발투수라면 200구까지도 던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100구 언저리만 던지면 언제 교체해줄까 벤치를 바라본다. 스프링캠프부터 근력과 지구력을 더 기르면서 실전처럼 불펜투구수도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 감독은 또 “펑고를 통해 수비력을 배가시켜야 한다. 안정된 수비력을 키우려면 기본 동작을 몸에 익히기 위한 훈련량이 더 필요하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펑고를 많이 받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반사적으로 수비가 이뤄져야 한다. 몸이 자신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런 훈련량이 일본야구에 비해 부족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플래시백] 마키하라의 퍼펙트 게임은 ‘종합 케미의 산물’

퍼펙트 게임은 투수가 한다? 어느 퍼펙트 게임이든 그 내용을 잠시 들여다 보면 이 물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지를 알게 된다. 일본프로야구 마지막 ‘완전시합’의 주인공은 요미우리의 마키하라 히로미다. 그의 대기록은 1994년 5월 18일 후쿠오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 대 히로시마 도요카프 7차전에서 나왔다.

먼저 내역을 살펴보면 탈삼진 7, 내야 땅볼 11, 내야 플라이 6, 외야 플라이 3이었고, 투구수는 102구였다. 경기시간은 2시간14분이었다.

▲ 마키하라 히로미가 일본프로야구 사상 15번째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후쿠오카돔 모형이다. 2004년 특파원 시절 찍은 것이다.

경기전 걸려온 의문의 전화 ‘행운’을 부르다

당일 경기 직전, 마키하라에게 의문의 전화가 후쿠오카돔으로 걸려왔다. “시급히 연락을 원하니 이 번호로 전화해 주세요"라고 쓴 메모를 전화번호와 함께 전달받았다.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라고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오늘은 좋은 피칭을 해주세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팬으로부터 이 말을 듣는 순간, 등판 이전에 최고조로 달했던 긴장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경기가 시작됐다. 마키하라는 초반에는 직구 위주로 스트라이크를 선행시키는 피칭을 했고, 7회 이후는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결정구로 사용했다.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아, 뭐랄까. 꿈속이에요. 정말로요. 투수했던 사람은 모두 동경하는 거니까요. 투수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고 기쁨을 폭발시켰다.

1993년 시즌 후 마키하라는 FA를 선언했으나, 등번호와 같은 17개의 장미를 안고 집을 방문한, 당시 감독(나가시마 시게오)의 강력한 요청을 받고 요미우리 잔류를 결정했다.

퍼펙트게임 달성 당일, 나가시마 감독은 마키하라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고 조용히 덕아웃에서 전황을 지켜봤다. 어떤 주문도 하지 않았다. 마키하라의 피칭 모습에 감독도 ‘느낌’이 온 것이었다. 퍼펙트게임 달성 후 덕아웃으로 향한 마키하라를 포옹으로 맞이했을 뿐이다.

위기 없는 퍼펙트 게임은 없다! ‘동료는 한몸이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3회 초 1사후 히로시마 니시야마는 8구, 풀카운트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마키하라를 괴롭혔지만 종국에는 142km 직구를 던져 유격수 앞 땅볼로 잡아냈다. 4회초 1사후. 오가타에게 두 번째 스리 볼로 몰렸으나 이 또한 빠른 직구로 밀어붙여 헛스윙 삼진으로 낚았다. 경기 후 마키하라 본인은 “던진 순간, 볼넷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가타가 배트를 꾹 참았다면 퍼펙트 게임은 일찌감치 물 건너갔을 것이다.

5회 초 2사후. 가네모토를 1스트라이크 0볼에서 128km짜리 포크볼로 맞혀 잡아 투수땅볼. 그러나 마키하라는 평범한 투수 땅볼을 1루에 원바운드로 송구한 뒤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는 “이미 그때부터 퍼펙트게임을 의식하고 있어, 긴장했다”고 말했다. 기록을 의식하면서 송구동작이 흔들린 것이다.

6회초에도 위기를 맞았다. 선두타자 고바야카와에게 초구 127km의 슬라이더를 던졌고, 배트 중심에 맞은 타구는 강렬한 직선 타구가 됐다. 다행히 파울라인보다 불과 몇 센티미터 오른쪽으로 빗나가 파울이 됐다. 결국엔 커브를 던져 2루 땅볼로 낚았다.

‘배짱’은 생명선, ‘가장 자신 있는 구종으로 승부하라’

가장 큰 위기는 9회 초에 왔다. 퍼펙트게임만은 당하고 싶지 않았던 히로시마는 9회에 총력전으로 임했다. 마키하라는 "가와다가 대타로 기용돼 빠른 볼 1개를 노릴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그 예감을 무라타 포수에게 말했다. 무라타는 타석에 선 대타 가와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초구는 변화구가 어떻겠냐?"고 마키하라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마키하라는 "직구가 좋은 코스로 들어가면, 안타를 맞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만약 변화구를 던졌다 맞으면 후회로 남을 것 같다”며 "직구로 가고 싶다“고 했다. 무라타는 마키하라를 믿으며 "알았다. 좋을 대로 하라"고 답했다.

마키하라는 초구를 바깥쪽 직구로 던졌고 가와다는 헛스윙을 했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승부를 걸 수 있게 됐다. 이후 2스트라이크 1볼에서 144km의 빠른 볼을 던졌고 가와다가 센터 방향으로 받아쳤지만 발이 빠른 야시키가 타구를 따라 잡아 중견수 플라이로 끝났다.

야시키는 "어려운 타구가 날아오면 다이빙해서라도 잡겠다고 생각하며 수비에 임했다. 하지만 의욕이 앞선 나머지 앞으로 너무 전진해 버렸다“고 나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벤치에서 이 플레이를 보고 있던 나가시마 감독은 "그 모습에 식겁했다"고 회고했다.

대외 환경도 그대 편, ‘역시 신만이 아는 기록?’

마키하라의 퍼펙트 게임에는 상대 중심 타선의 결장도 한몫했다. 이날 히로시마는 중심타선의 핵인 에토와 마에다 두 명이 나란히 부상으로 결장했다. 둘은 담장이 높은 후쿠오카돔에서도 스탠드에 큼지막한 타구를 꽂아 넣을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마키하라는 둘의 결장이 “정신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인정했다.

좋은 구장 환경도 원군이 됐다. 후쿠오카돔은 당시 외야 펜스가 높아 홈런이 나오기 어려운 구장으로 인식됐고, 깔끔한 인조 잔디 구장은 불규칙 바운드를 줄였다. 돔 구장은 바람의 영향이 적어 타구 방향을 예측하는데도 유리했다. 수비 변수가 작용할 여지가 그만큼 작아진 것이다.

마키하라는 2002년 현역 은퇴 후 방송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에서 그의 별칭은 '미스터 퍼펙트'다. ‘퍼펙트게임’은 은퇴 후에도 더없이 유효한 홍보수단이다.

<편집자주> 필자는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야구부 차장, 연예부장을, 스포츠서울닷컴에서 편집국장을 거치면서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두루두루 취재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쳐 4년간 근무한 일본특파원 시절에는 주니치의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요미우리의 조성민 정민태 정민철, 오릭스의 구대성, 지바롯데의 이승엽 등을 전담 마크하며 한국 선수들의 성공과 좌절은 물론, 일본 야구의 겉과 속을 찬찬히 지켜봤다. 현재 스포츠Q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ryus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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