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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 두산 곽빈, 포크볼과 함께 나르샤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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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 두산 곽빈, 포크볼과 함께 나르샤 [프로야구]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8.25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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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3년의 기다림, 10차례 등판. 두산 베어스 곽빈(22)이 첫 선발승을 따내기까진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고생 끝에 달콤한 열매 하나를 챙긴 곽빈의 야구 인생은 ‘꽃길’로 이어질 수 있을까.

곽빈은 2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쏠) KBO리그(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 5이닝 3피안타(1홈런) 2볼넷 9탈삼진 2실점 호투했다. 9-2로 크게 앞선 6회 마운드를 넘겼고 불펜이 리드를 지켜내며 값진 승리를 따냈다.

아직 한참 성장 가능성이 큰 어린 투수지만 선발승 하나를 챙기기 위해 견뎌야 했던 과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그렇기에 더욱 값진 수확이다.

두산 베어스 곽빈이 2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배명고 시절 속구 최고 시속 153㎞ 공을 뿌리고 타자로서도 주말리그 타점상을 수상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 속에 201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의 1차 지명을 받았다.

김명섭 배명고 감독은 곽빈의 창창한 미래에 대한 전망과 이미 팔꿈치 수술 이력이 있는 그를 2학년까지는 투수로 내보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교 통산 28⅓이닌을 소화하는데 그쳤다. 앞서 자양중학교에서도 추성건 감독은 곽빈의 급격한 신체적 성장을 이유로 뛰어난 재능에도 투수로 기용하지 않았다.

고3 시절 투수로 등장한 곽빈의 임팩트는 남달랐다. 김명섭 감독은 “투수 곽빈의 모습을 2년간 철저히 숨겼다”고 했는데 고3 주말리그에서 보여준 투구는 놀라웠다. 최고 시속 153㎞의 광속구를 뿌렸고 큰 기대감과 함께 두산의 선택을 받았다. 1차 지명 직후 열린 72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선 배명고에 사상 첫 대회 트로피를 안기며 MVP로 선정됐다.

그러나 그해 투수 에이스로 나선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18세 이하(U-18) 야구 월드컵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최강팀 미국과 경기에선 8⅓이닝 동안 144구를 던졌다. 혹사 논란이 일었다.

이듬해 두산에서 데뷔한 곽빈은 불펜으로만 32경기에 나서 3승 1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ERA) 7.55로 아쉬움을 남겼다. 첫 두 달 18경기 17⅓이닝 동안 ERA 3.12로 기대감을 나타냈으나 5월부터 완연한 하락세를 탔고 6월 결국 1군에서 말소됐다.

곽빈은 시즌 10번째 선발 등판 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승을 따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또 팔꿈치가 문제였다. 한 번 나타난 통증은 사라질 줄 몰랐고 그해 10월 팔꿈치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 이후 길고 긴 재활을 거쳤다. 2019년엔 육성선수로 전환돼 재활에만 전념했고 지난해 여름 퓨처스리그에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였으나 통증이 재발해 다시 한 번 기약 없는 재활에 돌입해야 했다.

올 시즌도 시작은 퓨처스 무대였다. 김태형 감독은 지난 5월 선발 수업을 마치고 3년 만에 1군에 복귀한 곽빈에게 로테이션 한 자리를 할애했다. 될 듯 말 듯 아쉬운 상황이 반복됐다. 잘 던지다가도 3,4회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타순이 한 바퀴 도는 3회와 4회 피안타율이 0.324, 0.308로 치솟았다. 5회까지 2실점 이하로 막은 적도 2차례나 있었지만 승운도 따르지 않았다.

이날은 달랐다. 10번째 선발 도전에 나선 곽빈은 1회를 큰 위기 없이 넘기더니 2회를 삼자범퇴, 3회엔 ‘KKK’로 넘기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타선도 힘을 냈다. 9-0 큰 리드 속에 마운드에 오른 곽빈은 또 다시 삼진 3개를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승리 투수 요건을 얻기까지는 아웃카운트 3개. 쉽지는 않았다. 5회초 1사 후 에르난 페레스에게 좌측 솔로포를 맞은 곽빈은 최인호와 9구 승부 끝 좌중간 안타, 장윤호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다. 1사 1,2루에서 노태형에게 1타점 적시타까지 내줬다.

그러나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다. 조한민을 7구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내더니 정은원에겐 유격수 땅볼을 유도해내며 승리 투수 요건을 챙겼다.

2018년 6월 1일 KIA 타이거즈전 구원승 이후 1180일 만에 승리이자 프로 첫 선발승. 곽빈에겐 남다른 하루였다.

곽빈은 정재훈 코치의 도움 아래 포크볼을 더하며 1180일 만에 승리를 따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뉴시스에 따르면 곽빈은 경기 후 “오랜 재활동안 정말 힘들었다. 이런 순간을 보고 버틴 것 같다”며 “재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나는 투수고, 야구 선수인데 이 거리에서도 공을 못 던진다’는 거였다. 그게 제일 힘들더라. 친구들은 다 야구를 하고 있는데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거리인) 18.44m도 아파서 못 던지니 속상했다”고 지난 날을 돌아봤다.

숨은 조력자로 정재훈 투수 코치를 빼놓을 수 없다. 정 코치 또한 부상과 깊은 악연이 있었다. 두산 시절 구원왕, 홀드왕을 차지하는 등 핵심 불펜이었으나 부상으로 두산이 우승을 차지한 2015년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됐고 복귀해 맹활약한 2016년엔 부상으로 대열에서 이탈해 우승 반지를 얻지 못한 채 커리어를 마감한 것.

곽빈을 옆에서 지켜보던 정 코치는 현역 시절 자신의 주 무기였던 포크볼을 새 무기로 제안했다. 선발 등판 사흘 전이었는데, 곽빈은 흔쾌히 받아들이며 이날 경기에서 체인지업 대신 포크볼을 뿌렸다.

곽빈은 “코치님이 ‘꿀팁’을 2,3가지 이야기해주셨다. 덕분에 알겠더라”며 “포크볼 덕분에 커브도 살아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탈삼진 9개 중 포크볼로 잡아낸 건 하나에 불과했지만 속구와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다 급격히 떨어지는 포크볼로 인해 한화 타자들의 타이밍을 완벽히 빼앗아냈다. 150㎞ 육박하는 속구에 한화 타자들의 방망이는 연신 헛돌았고 빠른공으로만 삼진 6개를 잡아냈다.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 긴 기다림을 보상 받은 것 같은 수확이었다. 곽빈은 이 경기를 통해 “내 공을 믿자”는 교훈을 얻게 됐다며 “선발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멘탈적인 발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앞으로를 더 기대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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