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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황민경, 부상딛고 '언성히어로' 우뚝선 '캡틴' [SQ인터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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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황민경, 부상딛고 '언성히어로' 우뚝선 '캡틴' [SQ인터뷰①]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9.1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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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나 때문에 이기는 건 어려워도, 내가 못 버티면 지기 십상이다."

지난 시즌 여자배구 수원 현대건설은 '1위' 팀에서 꼴찌로 추락했다. 부진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린 주장 황민경(31)은 새 시즌 V리그 전초전인 한국배구연맹(KOVO)컵 전 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현대건설을 다시 정상에 올려놨다.

2020 도쿄 올림픽 4강신화를 일군 양효진과 정지윤 그리고 노익장을 과시한 황연주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지만 이번 2021 의정부·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숨은 최우수선수(MVP)는 단연 황민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시즌 황민경은 발바닥 부상으로 말미암은 악순환에 허덕이며 이름값을 못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졌고, 직전 시즌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한 게 무색할 만큼 부진했다. 팀도 결국 최하위로 마쳤다. 비시즌 몸 만들기에 집중한 그는 컵대회부터 '황밍키'의 부활을 알렸다.

지난 9일 경기도 용인 현대건설 훈련체육관에서 만난 황민경은 "한 번 정도 인터뷰실에서 불러줄 법도 했는데, 불리지 않아 아쉬웠다"는 너스레로 첫 인사를 건넸다.

지난 시즌 황민경과 현대건설은 동반 부진에 빠졌다.

◆ 흔들린 주장, 휘청인 현대건설

주장이 되고 처음 맞은 2019~2020시즌 현대건설은 KOVO컵에서 우승한 뒤 리그에서도 줄곧 1위를 달렸다. 2위 서울 GS칼텍스와 6라운드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정상 등극을 목전에 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즌이 조기종료돼 아쉬움을 삼켰다. GS칼텍스 앞서 트레블(3관왕) 달성도 가능했지만 감염병이 가로막은 셈이다.

황민경은 27경기 동안 267점을 올리며 2015~2016시즌 GS칼텍스에서 29경기 동안 기록한 270점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생산했다. 서브 역시 세트당 0.333개로 점프력과 힘을 갖춘 레프트로 주가를 올리던 2011~2012시즌(0.433개) 김천 한국도로공사 시절 이후 가장 좋은 수치를 남겼다. 시즌 도중 외국인선수를 교체하는 악재를 맞았던 현대건설이 우승을 다툴 수 있었던 이유는 황민경 등 국내 날개 공격진의 활약이 컸다. 

허나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 초반부터 흔들렸다. 선두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그들은 본래 윙 스파이커(레프트)인 외국인선수 헬렌 루소(벨기에·187㎝)를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고전했다. 황민경은 발바닥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복귀한 뒤에도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황민경은 "발이 아프니까 온 몸의 균형이 깨지면서 허리, 무릎도 아프게 됐다. 내가 내 역할을 어느 정도만 해줬어도 (팀이) 그렇게까지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나 때문에 이기진 못해도, 내가 못 버텼을 때 지는 것은 쉽다. 몸도 안 따라주고 마음도 조급했다. 쉬면 되는데 쉬지 못하고 경기에 나섰다. 100%가 아닌 상태로 뛰다 보니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후반기 현대건설은 전 시즌 1위 팀 위용을 어느정도 회복했다. 그도 "후반부 많이 좋아졌다. 세터와 호흡도 나아졌고, 나도 조금은 컨디션을 회복했다. 전체적으로 박자가 맞아가는 느낌을 받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치고올라가려는데 시즌이 끝났다"며 아쉬워했다.

황민경은 비시즌 부상 재발 방지를 위한 몸 관리에 힘썼다.

◆ KOVO컵 통해 부활 시동 건 황민경

새 시즌 앞두고 큰 변화가 있었다. 4시즌 동안 현대건설을 이끈 이도희 감독이 지휘봉을 강성형 감독에게 넘겨줬다. 강 감독은 이번 대회 도중 황민경 활약에 "지난해는 말 그대로 부상 때문에 실력 발휘를 못했다. 올해는 몸 관리를 잘했다"며 굳은 신뢰를 드러냈다.

황민경은 "웨이트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마음가짐도 달랐다. 배구를 잘하려면 몸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우선 몸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몸 상태를 정상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좋은 건 확실한데, 더 올려야 한다"고 했다. 

노력의 결실일까. 황민경은 이번 대회 공격성공률 1위(40.58%)에 올랐다. 키 175㎝ 공격수로서 작은 편인 그는 프로 입문 초창기 점프력과 파워를 겸비한 공격수로 통했지만 어깨와 무릎 등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린 이후 수비력을 키워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현재는 높은 타점에서 힘으로 때리기 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공을 잘 달래고, 블로커를 활용하는 데 능한 공격수가 됐다. 공격보다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로 통하는 그의 이번 대회 컨디션이 얼마나 쾌조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격 면에선 그 정도면 선방했다. 주로 속공수인 미들 블로커(센터)들이 1위를 차지하는 분야다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지난 시즌 그렇게까지 안 됐는데, 이번에 나름 빨리 잘 회복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내 활약에 80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기존에 장점으로 꼽혔던 리시브는 흔들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강성형 감독도 황민경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정규리그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다시 안정감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황민경은 2021 KOVO컵 5경기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공격성공률 1위에 올랐다. [사진=스포츠Q(큐) DB]
황민경은 2021 KOVO컵 5경기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공격성공률 1위에 올랐다. [사진=스포츠Q(큐) DB]

황민경은 "연습경기를 거의 못해 경기감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모든 팀이 마찬가지다. 우리는 리시브 효율에 집착하지 않았다. 세터에게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지 세터 손에 전달되지 않은 건 아니다. 리시브 포메이션이 새로 바뀐 상황에서 감독님도 '여유있게 올려놓으면 모두가 준비된 상황에선 어디서든 공격이 가능하다'며 부담을 줄여주셨다. 당연히 정규리그 때는 받아주는 것 이상으로 정확히 주는 걸 목표로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시브 라인은 옆에 있는 동료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다. 황민경 역시 새 시즌 동료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전 리베로 김연견이 큰 부상을 털고 제 기량을 회복하고 있다. 황민경에게 힘이 될 소식이다. 한편으론 지금까지 센터, 라이트로 뛴 정지윤이 레프트로 뛰게 돼 황민경에게 수비 부담이 가중될 수도 있다.

"(김)연견이는 큰 부상 이후 돌아온 지난 시즌 불편함을 안고 뛰었을 것이다. 이제 많이 적응돼 본인도 편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며 기대했고, 정지윤의 리시브라인 가세에 대해선 "(정)지윤이가 들어오면 수비가 약해질 수도 있는 대신 대충 올려도 잘 때려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 다른 면에서 장점이 확실하기 때문에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북돋웠다.

강성형 감독은 현대건설이 한창 좋았던 2019~2020시즌 그랬듯 좌우중앙을 고루 활용하는 빠른 배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시즌 레프트 라인에서 분전한 황민경과 고예림의 각오도 남다르다.

"감독님은 좀 더 빠른 배구를 원하신다. 빠른 플레이에는 체력이 전제된다. 레프트는 공을 받고 빠르게 네트 앞으로 뛰어가고 다시 돌아오는 플레이를 반복하기 때문에 체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감독님이 체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새 시즌에도 변함 없이 공수 양면에서 황민경이 해줘야 할 몫이 상당하다.
새 시즌에도 변함 없이 공수 양면에서 황민경이 해줘야 할 몫이 상당하다.

◆ 자율과 책임 속 3년차 주장의 역할

이도희 감독이나 강성형 감독이나 선수들의 생활을 크게 통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자율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앞세운다. 자연스레 코트 안팎에서 주장인 황민경이 해줘야 할 몫이 적지 않다. 3년째 주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번 대회 우승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을 게시하고는 '든든하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에 나온 선수들을 보면 고참이 많다. (고)예림이가 KOVO컵 때 어깨도 아프고 힘들어했다. 자존감이 떨어졌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있어 든든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또 (양)효진 언니, (황)연주 언니도 힘든 상황에 들어와서 늘 잘해줬기 때문에 언니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말로하기는 쑥쓰럽고, 그냥 그렇다고 혼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황민경이 처음 현대건설 주장을 맡았을 때 한국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양효진, 황연주 등 V리그의 살아있는 전설인 두 베테랑의 존재는 중참으로서 팀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오래 배구하는 언니들은 무조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매년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오는데 그걸 이겨내고 버텨내는 것. 보통 노력으로는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다. 나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존재가 든든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황민경은 주장 3년차를 맞았다. KOVO컵 정상을 탈환한 뒤 개인 SNS를 통해 '든든하다'며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황민경은 또 후배들과도 격 없이 지내는 주장으로 통한다. 개인 유튜브 '황밍키'를 비롯해 구단 SNS나 개인 채널을 통해서도 고예림뿐만 아니라 이영주, 정시영, 정지윤은 물론 이나연, 김주하 등 다양한 후배들과 친분을 드러냈다. 주장답게 후배들을 향한 격려도 잊지 않는다. 특히 올여름 정지윤뿐만 아니라 이다현, 김다인이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를 경험해 기대치가 상당하다.

"(김)다인이가 경험이 많이 생겼다. 지난 시즌은 주전 첫 해라 힘들어 했는데, 국제무대를 경험하면서 단단해지고 스스로 자신감이 생겨 기대된다. 나도 그랬지만 맞으면서 크는 게 있다. 한층 단단해진 느낌이다. (이)다현이도 외국선수들을 보면서 느낀게 있는 것 같다."

"사실 (정)지윤이는 멘탈이 흔들리는 게 겉으로 크게 느껴지진 않는 선수다. 지윤이에게 솔직히 '경기 많이 말아먹을 거다. 많이 말아먹어봐야 3년 뒤 (올림픽에서) 너가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나는 말아먹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연연하지 말고 버텨내'라는 말을 해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조언 아닌 악담이다. 앞으로 더 힘들어 질 거라고, 더 맞아야 된다고 하는 것이니."

어느덧 주장 3년차다. 7개 팀 주장 중 자신만의 장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시끄럽게 코트 안에 활기를 불어넣는 점? 또 후배들이 나를 좀 더 편하게 대하는 것 같다. 워낙 선수들 성격이 좋아 다 잘 지낸다. 내가 주장을 맡기 전에도 그랬지만 선후배가 거리낌 없이 지내는 게 우리팀 장점"이라고 자부했다.

*현대건설 황민경 인터뷰는 ②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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