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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훈 아산 U-18 감독 "UEFA P급? 정말 중요한 건요..." [SQ인터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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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훈 아산 U-18 감독 "UEFA P급? 정말 중요한 건요..." [SQ인터뷰①]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11.01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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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스포츠Q(큐) 글·사진 김의겸 기자] "안전하고 쉬운 걸로! 잡고서 생각하지 말고 본능적으로. 공에 멀리 있어도 공격에 관여한다는 점 잊지 말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 출전하는 팀을 지휘할 수 있는 지도자 자격증 UEFA Pro(프로) 라이센스를 보유한 오동훈(38) 감독이 이끄는 K리그2(프로축구 2부) 충남 아산 산하 18세 이하(U-18) 팀 훈련장에선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축구를 위한 상황 대비 훈련이 한창이었다.

지난달 어느덧 아산에서 보내는 두 번째 시즌을 매듭지어가고 있는 오 감독을 만나 그가 유럽으로 건너가 최고 레벨 지도자 자격증에 도전한 계기, 그리고 한국에서 그리는 코치로서 삶에 대해 물었다. 

한국인 최초로 UEFA P급 지도자 자격을 따낸 뒤 한국으로 돌아와 K리그 산하 유소년팀 최고 연령대 사령탑으로 일하고 있다. 비단 비(非)선수 출신이고, 한국 축구인 중 가장 먼저 UEFA P급 인증을 받았다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오 감독의 지난 행적 그리고 현재 아산의 유망주들에게 불어넣는 철학은 축구 팬들에게 충분히 흥미롭게 다가올 법하다.

오동훈 아산 U-18팀 감독은 한국인 최초로 UEFA Pro 라이센스를 취득한 지도자다.
오동훈 아산 U-18팀 감독은 한국인 최초로 UEFA Pro 라이센스를 취득한 지도자다.
오동훈 감독은 비선수 출신으로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 등 축구강국을 거치면서 지도자로서 역량을 쌓았다. 

◆ 비선출, 축구지도자 유학을 감행하다

오동훈 감독은 2018시즌 잠시 서울 이랜드FC U-18팀 코치로 일하면서 한국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까지 10년여간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을 거치면서 축구 지도자로서 이론을 공부하고, 현장 경험을 체득했다. 

선수 경력이 없는 그는 군 전역 후 못다한 축구의 꿈을 지도자로서 이루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용 포르투갈어 회화 책자만 달달 외운 뒤 브라질 유학을 감행했다. 한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함과 동시에 언어를 갈고 닦았다. 졸업하자마자 당시 축구 전술 및 코칭에 있어 최고 수준이던 포르투갈의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이론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스페인으로 건너가 지도자 코스를 밟으며 일선에서 청소년 그리고 여자 선수들을 가르쳤다.

"한국에선 비선출이 지도자가 되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처음에 브라질에선 피지컬 코치로서 역량을 쌓았다. 트레이너로서 이론을 통달한 것은 물론 브라질 프로 팀에 실습도 나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선수들의 육체에 집중하지 축구 전술적으로 다루는 게 적어 아쉬웠다. 재미가 없어 열심히 할 자신이 없었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봐도 브라질에서 훈련하는 방식은 축구와 동떨어진 요소가 많다고 느꼈다. 그러던 찰나 마지막 학기 때 포르투갈의 축구 이론을 처음 접했다. 포르투갈 등 유럽에선 이미 선진화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지도자가 꿈인 내게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포르투갈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다."

오동훈 감독은 포르투갈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포르투갈은 통역관 출신 조세 무리뉴 감독이 FC포르투를 이끌고 유럽을 정복하는 등 포르투갈 지도자들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던 시기다. 그는 축구 코칭 이론적인 면에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와 집을 쉐어하던 동기가 오 감독에게 각종 축구 전술 이론 자료를 통째로 복사해 넘겨줬는데, 그 외장 하드디스크는 지금도 그의 '보물 1호'란다.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훈련 수준 차이가 많이 나더라. 브라질 1·2부 팀에서 실습하며 만났던 지도자들보다도 내 대학원 동기들의 식견이 높았다. 당시에는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프로에 몸 담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동기 중 비선출인데 프로 감독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6부 팀을 이끌고 8년 동안 5차례나 우승하면서 1부까지 승격시켰으니 현지에서도 레전드로 통한다."

[사진=오동훈 감독 본인 제공]
UEFA Pro 라이센스는 오동훈 감독의 행동력에 대한 보상이지만 이 자격증이 그가 가진 역량을 모두 대변하는 건 아니다. [사진=오동훈 감독 본인 제공]

◆ 도전 또 도전 "망설일 틈이 없어요"

오동훈 감독은 사실 2011년 대구FC를 통해 한국 프로축구계에 입문할 뻔했다. 포르투갈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던 때 브라질 코리치바FC에서 실습하던 시절 알게 된 모아시르 페레이라 감독이 통역직을 제안했는데, 원하는 직무가 아니라 거절했다. 지도자 일은 아니지만 프로 구단에서 일하는 경험만으로도 값지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을 때는 이미 타이밍이 어긋나 일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그는 포르투갈에서 한 학기만 마치고 스페인으로 넘어갔다. 

"대학원 졸업장이 내가 축구인으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진 않았다. 브라질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만 나는 결단이 과감한 편이다. 바로 축구 지도자 코스를 신청하고 스페인으로 갔다. 포르투갈에 적을 둔 상태로 스페인에서 지도자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가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브라질로 유학을 떠날 때도 그랬듯 스페인어 공부를 많이 하진 않았다. 스페인에 도착해 어학원에 등록했을 때 치른 테스트에서 8단계 중 상위 5번째 등급을 받을 만큼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는 유사성이 많았다. 그는 브라질에서 어학연수 수준에 그친 게 아니라 학부생으로 생리학, 해부학 등도 배웠으니 어휘 체계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였다.

"읽고 쓰는 건 포르투갈어와 비슷해 금방 따라갈 수 있었다. 회화는 지도자 코스를 시작하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UEFA B급 정도면 엄청나게 어려운 구술 시험은 없다. 훈련을 진행할 때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단어 위주로 짧게 설명하기 때문에 남들 하는 거 보면서 훈련 중 필요한 어휘들을 습득했다."

포르투갈에 이어 스페인에서 보내는 시간도 오동훈 감독에겐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축구 지도자를 양성하는 코스의 깊이는 물론 다루는 영역까지 매우 폭넓고 다양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주·보조강사 체제로 훈련 프로그램을 짜는 데 집중한다면, 스페인에는 지도자가 수강해야 할 10개 이상 과목에 각기 다른 전문가들이 총출동한다.

"전술, 기술, 체력은 기본이고 훈련방법론, 심리학, 사회학, 해부학, 생리학은 물론 간단한 스포츠법률과 팀 매니지먼트 과목까지 따로 있다. 한국이 코치(coach)에 국한된다면 스페인에선 매니저(manager) 차원에서 접근한다. 모든 면에서 감독으로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조금씩 다 경험하게 한다. P급 과정에선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것까지 배운다."

[사진=오동훈 감독 본인 제공]
동양인이 스페인에서 축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사진=오동훈 감독 본인 제공]

◆ 동양인이 스페인에서 축구를 가르쳐?

"브라질에선 실습생에 그쳤다면, 스페인에선 돈을 받고 메인 코치로 일했다는 뿌듯함이 있다. 한 팀에서만 일한 게 아니라 동시에 2~3팀에서 직책을 맡기도 했다. 보수는 적었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비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스페인은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8을 시작으로 메이저 3연패를 달성한 뒤 한창 트렌드를 선도하는 축구 선진국이었다. 아시아에서 건너온, 원어민도 아니고 선수 출신도 아닌 지도자가 스페인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니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과제였다. 착실히 내공을 쌓아 자신감을 무기 삼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오동훈 감독에게 인종차별은 '당연히 겪는 일' 정도로 치부된다. 그만큼 지도자로서 선수들에게 설득력을 얻는 게 일순위였다.

"브라질에서 일 할 때는 자신감이 없었다. 내가 원어민처럼 말을 못해서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스페인 생활을 돌아보면 오히려 브라질에 있을 때 언어능력이 더 좋았다.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면 외국인인지 모를 정도로 원어를 구사했는데, 사실 내 능력과 자신감이 부족했고 실력이 없었던 것이다."

"스페인에서 처음 일할 때 혼자 동양인이다보니 '밖에 있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에 무지 신경쓰였다. 지도자로서 역량이 쌓이자 그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내가 정말 몰입하면 외부환경은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하더라. 그런 건 신경쓸 겨를도 없다." 

"스페인 건너가고 3년째였던 2016년 들어 어느날 선수들의 불성실한 태도에 화가 났다. 선수들의 부모들, 훈련장 내 다른 운동장 선수들까지 다 있는데 속사포처럼 모진 말을 쏟아내며 열을 올렸다. 내가 몰두하니 보여주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 표출됐던 것이다. 몰두하면 주변요인은 신경쓰이지 않는다. 스스로 위안 삼고 변명 삼는 핑계일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늘 같이 취재왔을 때 신경쓰여 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사진=오동훈 감독 본인 제공]
스페인에서 날고 기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느낀 열등감을 양분 삼아 내공을 쌓았다. [사진=오동훈 감독 본인 제공]

◆ 유학생활 10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오동훈 감독은 특유의 무던한 성격, 주저하지 않는 행동력은 타고 났기 때문에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줄 조언이 없다고 했다. "나는 유학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의지와 끈기를 가지고 어려운 상황을 버텨내는 것. 브라질에 처음 갔을 때부터 어떤 일을 할 때 미리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행여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려 했다. 선수들에게 축구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가르치는 게 있다. '프로가 되는 데 집착하기보다 정말 열심히 해봤는데도 안 됐을 때 그 또한 좋은 경험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준다." 그의 인생관이 녹아있는 말이다.

하지만 굳건한 심지로 스스로를 믿고 묵묵히 나아가는 일, 조바심을 이겨내고 차분히 능력을 함양하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축구라면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즐비한 스페인에서 피부색 다른 이방인 지도자는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이제는 그런 시간들이 쌓여 자신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정말 유능한 지도자들과 일했을 때 열등감을 느끼고 좌절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지도자들보다도 내 능력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한국에 가서 프로 레벨을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좌절감과 열등감이 동기부여가 됐다. 워낙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방심하거나 거만해질 틈이 없었다." 

"스페인에선 감독을 채용할 때 60개 항목을 체크한다더라. 바르셀로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전) 감독이 말 실수를 몇 개 했는지도 체크하는 곳이다. 훈련의 목표, 지향성, 라커룸 대화 과정 등을 모르고 밖에서만 보면 많은 지도자가 다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안에서 겪어보면 능력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보통 세상에 자신을 알리려고 할 테지만 나는 내가 지도자로서 능력을 갖추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보여지는 데만 치중하면 본질을 흐리게 된다. 관심을 받아도 내 능력이 부족하면 오래 갈 수 없다. 유명무실하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

※ 오동훈 아산 U-18팀 감독 인터뷰는 ②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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