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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그 많던 스포츠기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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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그 많던 스포츠기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 최문열
  • 승인 2015.05.20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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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최문열 대표] “기자요? 요즘 아마추어 종목을 취재하러 오는 스포츠기자가 어디 있어요? 경기 결과만 지면에 넣어줘도 감지덕지지요.”

현역기자 시절 출입했던 대한체육회 소속 한 경기가맹단체의 사무국장에게 요즘 전국 규모의 대회가 열리면 기자가 몇 명이나 오냐고 물었더니 그 질문 자체가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시크하게 답했다. 이 단체만 해도 그동안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이른바 '효자종목'인데도 사정이 이럴진대 그밖에 군소 종목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듯하다.

얼마 전 스포츠Q 소속 기자가 모 스포츠단체에 전화를 걸어 취재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자 “혹시 돈을 내야하는 것이냐?”고 되물어왔다는 에피소드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스포츠 현장에 스포츠기자가 취재하러 가는 것이 왠지 이상한 나라, 21세기 스포츠강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스포츠현장의 우울한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스포츠기자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는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넘쳐난다. 하지만 여기서도 종목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하다. 일부 인기 많은 프로 종목에는 기자들이 넘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그밖에 비인기 아마추어 종목에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기자들이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스포츠신문이 위세를 떨칠 때만 해도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의 인기 종목 외에도 한국의 전략 종목에는 담당기자를 둬 커버 했으며 지면 또한 넉넉지는 않았지만 일정 부분 할애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담당기자들은 군소종목이라도 촉을 세우고 지켜봤으며 때때로 미담 또는 화제성 기사를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 선수와 관계자에겐 힘을, 스포츠팬들에겐 쏠쏠한 재미와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스포츠신문이 인터넷과 무가지 그리고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뉴스유통 채널의 잇단 등장으로 카운터펀치를 연거푸 맞으며 그로기 상태에 빠져 버렸다. 회사의 심각한 경영난으로 스포츠신문 기자들은 구조조정의 칼날에 맥없이 쓰러졌고 덩달아 지면도 축소됐다. 현재는 몇몇 인기 스포츠 외에는 지면이 거의 없는 상태다. 프로와 아마추어, 인기와 비인기 종목간의 구색을 맞추려고 그나마 노력했던 스포츠신문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스포츠콘텐츠 시장은 큰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후 스포츠신문의 대항마로 온라인 스포츠매체들이 대거 등장했으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클릭이 보장되는 인기스포츠에만 집중해 왜곡 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 한국 스포츠의 균형 발전이라는 대전제 아래 뉴스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기 보다는 독자들의 입맛, 다시 말해 클릭수, 더 쉽게 이야기하면 ‘돈 되는’ 콘텐츠에 집중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스포츠콘텐츠 생산은 ‘인기순’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형국이다.

류현진과 추신수 강정호가 진출한 미국 메이저리그, 기성용 이청용 지동원 손흥민 김보경 윤석영 구자철이 뛰고 있는 유럽축구 등이 앞자리에 놓이고 축구대표팀의 A매치를 비롯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그렇다보니 비인기 스포츠는 어디에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 콘텐츠를 생산하는 담당 기자와 전문 기사가 씨가 말라버린 것은 이제는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스포츠콘텐츠 왜곡현상은 종목 간 불균형을 더 악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다양성을 막고 질적 저하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스포츠콘텐츠는 온통 메이저리그와 유럽축구 그리고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등 국내의 일부 인기 스포츠에 국한된다.

또 경기 속보와 상보를 포함해 이와 관련한 주장이나 의견을 담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이는 해외 경기를 TV 통해 보면서 작성하거나 외신 기사나 칼럼을 참고하다보니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국내의 인기 스포츠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발품을 팔아 쓰기보다는 TV중계 보고 손으로만 자판 두들겨 쓰는 스포츠기자가 도처에 널려있는 상황이다. '신속'을 위해 '정확'은 무시됐고 '대중성'을 위해 '전문성'은 내팽개쳐 졌다.  감시자로서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비판 기사도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또 경기 외적인 뒷이야기나 미담, 그리고 스포츠행정과 정책, 스포츠산업과 외교 등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기사는 종적을 감췄고 의제를 설정하는 '의미' 있고 '힘' 있는, '스크랩'하고픈 기사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일까? 요즘 들어 스포츠기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스포츠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비해 대중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연예 콘텐츠는 스포츠의 그것만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연예 뉴스의 경우 스타의 핫한 가십이나 사건사고가 터지면 정치 경제 사회의 주요 이슈까지도 완전히 덮어 버릴 만큼 막강하게 자리 잡은 지 오래다.

▲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큰 대회가 열리면 금메달을 따는 효자 종목에는 취재진이 대거 몰리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 열기가 이내 식기 마련이다. [사진=스포츠Q DB]

이렇게 된 데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대중의 연예 콘텐츠 소비 욕구가 커진 것이 한몫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국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따금 주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보면 연예 관련 키워드들이 도배되다시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방송과 종합지, 경제지, 그리고 스포츠매체 또한 상당한 인력을 투입해 그 트래픽 수혜를 받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으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연예 뉴스 공화국이라고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당장 네이버 뉴스스탠드만 보더라도 스포츠언론을 표방한 매체들이 스포츠보다는 연예 콘텐츠를 전면에 그것도 다량으로 앞세우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스포츠콘텐츠의 왜곡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입증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뉴스 콘텐츠의 다양성, 그리고 균형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스포츠콘텐츠 생산자와 유통자의 제자리 찾기가 절실하다.

먼저 생산자는 한국 스포츠의 장기적인 그림을 고려해 다채로우면서도 알찬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가뭄으로 말라버린 논에 물을 주는 작업처럼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이와 함께 뉴스 유통을 담당하는 이들은 비록 사기업이지만 뉴스생태계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공적 차원의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스포츠콘텐츠만을 놓고 본다면 비록 대중에게 인기는 없더라도 한국스포츠의 근간을 위해 꼭 필요한, 남들과는 다른 콘텐츠라면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콘셉트의 사이트가 복제 되듯 양산되는 것을 막고 차별화된 사이트들이 등장하는 선순환의 고리에 접어들 수 있으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뉴스 생태계에도 반전의 기운이 싹틀 수 있다. 때만 되면 학계에서 뉴스유통의 개혁과 수술이 시급하다고 목청을 돋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스포츠기자로 국제대회를 취재하러 해외에 나가보면 정말 부러운 것이 있다. 백발이 성성한 관록의 전문기자들이 중심을 잡고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만일 스포츠콘텐츠 왜곡 현상이 계속된다면 세계 정상권을 지키는 한국의 아마추어 스포츠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전문기자가 한 명도 없는 현 상황이 고착화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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