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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돌풍, 식민지배 복수극은 실패했어도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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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돌풍, 식민지배 복수극은 실패했어도 [SQ포커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2.12.1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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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식민지배 설움을 씻어내며 아프리카 축구 새 역사를 쓰겠다는 모로코의 야심찬 도전은 아쉽게 무산됐다. 그럼에도 이번 대회 최고 이변의 팀 모로코의 돌풍은 마지막까지 박수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왈리드 레그라기(47) 감독이 이끄는 모로코는 15일(한국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랑스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준결승에서 0-2로 패했다.

본선 참가 32개국 중 가장 이민자가 많고 월드컵 개막 3개월 전 감독이 교체되는 어려움이 따랐지만 모로코는 파란을 일으키며 세계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모로코 선수들이 15일 프랑스와 2022 카타르 월드컵 4강전에서 패배한 뒤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모로코는 소방수 체제로 월드컵을 맞았다.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바히드 할릴호지치(70) 전 감독이 주장이자 에이스인 하킴 지예흐(29·첼시)와 누사이르 마즈라위(25·바이레른 뮌헨)의 훈련 태도를 문제삼으며 기용하지 않았고 월드컵에서 선전을 위해 모로코축구협회는 감독보다 선수를 택했다.

대표팀 감독을 경험해본 레그라기 감독은 빠르게 선수단을 안정화시켰다. 26명 엔트리에서 14명이 이민 가정 출신일 정도로 조직력에 의문부호가 따랐으나 전 선수단에게 대회 내내 가족과 동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이는 심리적 안정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효과로도 이어졌다.

단단한 수비에 무게를 둔 게 강력한 철퇴를 작렬하는 전략이 완벽히 통했다. 조별리그에서 벨기에를 잡아내며 탈락시키고 16강에선 승부차기 승부 끝에 스페인을 무너뜨렸다. 8강에선 포르투갈마저 꺾었다. 5경기에서 단 1실점. 이마저도 자책골로 상대팀에 골문은 한 차례도 열어주지 않았다.

인상적인 선수들도 수비 쪽에 쏠려 있었다. 이름부터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는 골키퍼 야신 부누(31·세비야)는 스페인과 승부차기에선 두 차례 선방으로 무적함대를 침몰시켰고 포르투갈의 파상공세도 완벽히 막아내며 야신상 후보 1순위에 올라 있다. 

아치라프 하키미(23·파리생제르맹), 누사이르 마즈라위(24·바이에른 뮌헨), 로메인 사이스(32·베식타스), 나이프 아게르드(26·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등이 이끄는 탄탄한 포백 라인과 지예흐와 유세프 엔 네시리(25·세비야)의 뛰어난 개인기량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공격의 조합도 뛰어났다.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오른쪽)가 PSG 팀 동료 아치라프 하키미와 포옹을 나누며 위로를 전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1970년 멕시코 대회를 시작으로 6번째 월드컵에 나선 모로코는 그 결과 아프리카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이전까지 아프리카팀의 최고 성적은 8강. 그 또한 1990년 카메룬, 2002년 세네갈, 2010년 가나가 전부였다.

가슴 아픈 역사도 모로코 선수들에겐 확실한 동기부여였다. 모로코는 19세기부터 유럽 열강의 침략을 받았고 스페인과 프랑스는 모로코를 양분해 식민지배했다. 앞서 스페인엔 앙갚음을 했고 이날 프랑스마저 꺾고 아프리카 최초로 결승 무대에 오르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모로코를 외면했다. 킬리안 음바페(파리생제르맹)의 두 차례 슛이 굴절됐고 모두 프랑스 선수에게로 향했다. 이 두 장면에서 모두 뼈아픈 실점이 나왔다. 전반 자와드 엘 야미크(30·레알 바야돌리드)의 오버헤드킥은 골대를 때렸고 수비수 사이스는 부상으로 전반도 마치지 못하고 교체됐다. 앞서 부상을 당한 아게르드에 이어 사이스까지 빠지자 모로코 수비의 균열은 커졌고 결국 단단했던 문이 열리고 말았다. 후반 뒤져 있는 상황에서도 조직적인 패스 플레이로 반격에 나섰지만 끝내 승부를 뒤집어내진 못했다.

프랑스에 설욕엔 실패했지만 모로코는 월드컵 역사에 남을 반란의 팀 중 하나로 남았다. 아프리카 최초 4강 진출국으로 남은 것은 물론이고 유럽과 남미를 제외하고 4강에 오른 3번째 국가로도 이름을 올렸다. 앞서 1930년 우루과이 대회 때 미국(1930년),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2002년)을 제외하고는 유럽과 남미 외 지역에서 4강에 오른 국가는 나온 적이 없다.

이젠 마지막 자존심 지키기에 나선다. 오는 18일 0시 도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크로아티아와 3·4위전을 치른다. 강력한 수비를 바탕에 둔 두 팀의 승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축구 팬들의 흥미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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