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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로 떠난 한국인, 디즈니·픽사 '손' 되기까지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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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로 떠난 한국인, 디즈니·픽사 '손' 되기까지 [인터뷰Q]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05.31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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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외로움을 넘어 고독하다고 느꼈어요. 그 고독 속에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는 게 중요했죠. 내가 진짜 누구인지."

픽사 스튜디오 소속 애니메이터 이채연의 일대기는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대학 졸업 후 게임애니메이터로 일하던 그는 영화 '라푼젤(2011)'을 보고 캐나다 유학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캐릭터와 이야기로 감동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한 유학길이지만, 캐나다 생활은 마음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 '버즈 라이트이어(202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 등 내노라하는 작품에 이름을 올린 애니메이터임에도 그는 "이민자의 삶, 마이너리티로 살아가야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피터 손 감독의 '엘리멘탈'은 어쩌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였다.

이채연 애니메이터.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채연 애니메이터.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내달 14일 개봉하는 디즈니·픽사 영화 '엘리멘탈'은 물, 불 공기, 흙 4개의 원소들이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 속 이야기를 담는다.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주인공 앰버는 유연히 유쾌하고 감성적인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을 겪는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 피터 손 감독이 7년간 구상한 작품으로 자신의 부모님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앰버는 극중 이민자의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터전을 떠나 엘리멘트 시티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일군 부모님 밑에서 자란 2세로 아버지의 기대, 이민자를 향한 시선,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고충에 빠진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꿈을 위해 자신을 꿈을 포기하는 앰버가 웨이드를 향해 "너는 이해 못해"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이채연 애니메이터에게 가장 와닿는 장면이었다. 

"20대 후반까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이어진다고는 하지만 캐나다와 미국에서의 삶은 정말 많은 변화를 줬어요. 돈 없는 유학생,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던 그 시절 겪었던 일들이 제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됐죠."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한국인이 만든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애니메이션 제작에만 1년 반~2년, 참여한 애니메이터 수는 무려 70~80명에 달한다. 여기에는 이채연 애니메이터를 비롯한 다양한 한국인들이 속했다.

그는 3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진행된 스포츠Q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분들과 일하면 쉽게 다가가서 질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영어로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서로의 상황이 (영화 속 상황에) 도움되기 때문에 한국적인 요소에 대한 의견 조율이 자유로웠다"고 한국 스태프들과의 협업 소감을 전했다. 

이채연 애니메이터에 따르면 현재 픽사 스튜디오 내 소속된 한국인은 10명 이상, 한국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 않는 2세까지 더하면 20명이 훌쩍 넘었다.

픽사 스튜디오 특유의 분위기도 많은 힘이 됐다고.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2' 작업 당시에는 마블이라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뚜렷해서 그들이 원하는 걸 작업해야 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주인의식은 크게 생기지 않았다"며 "반면 픽사는 나 스스로가 캐릭터가 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회사 측에서 애니메이터에게 믿고 맡기는 것은 물론 너만의 특징으로 해석하라고 한다"고 밝혔다.

정식 개봉 전 픽사 내부에서 진행된 풀 스크리닝도 참여 스태프들의 주인의식을 높였다. 풀 스크리닝 진행에 앞서 이민자 또는 이민자 2세인 스태프들에게 "이민 왔을 당시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 이에 대해 이채연 애니메이터는 "풀 스크리닝 시작 전에 큰 화면에 각자의 사진을 띄어놓았다. 그분들의 스토리를 실제로 본다는 감회가 새롭더라. 울컥한다고 해야 할까. '모두 각자의 스토리가 있구나', '이 영화를 작업하며 위로 받았겠구나' 등의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채연 애니메이터.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채연 애니메이터.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연기하는 애니메이터, 이채연

앰버 애니메이팅을 맡은 이채연 애니메이터는 캐릭터를 실체화시키는 일차원적인 작업이 아닌 실제로 앰버가 돼야만 했다. 캐릭터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를 연기하며 작품을 완성시켰다.

"굳이 따지자면 저는 이민자 2세인 앰버보다 그의 부모인 버니와 킨더에게 더 가깝지만 10년 이상 해외에 산 경험이 앰버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줬어요. 특히 에피소드 중 웨이드의 삼촌이 앰버에게 '너 우리 말 잘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실제로 저도 들었던 말이에요. '너네 고향에 맥도날드 있어?' 이런 질문.(웃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앰버의 '앵거 레벨(anger level)'에 많은 공을 들였다. 감정의 폭이 큰 앰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 거대해지거나 보라색으로 변하기도. 이채연 애니메이터는 "너무 빛이 나도 안되고, 항상 보라색이어도 안되고, 너무 커져도 안됐다. 감정 레벨에 따라 빛의 밝기가 달라지는 법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불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투명도와 일렁임을 실제 불처럼 표현할 경우 유령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어 밸런스를 맞추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그는 "앞서 작업한 버즈라이트 이어와 엘리멘탈은 극과 극 스타일"이라고 설명하며 "엘리멘탈을 하면서 기술력이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것에 감탄했다.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 테스트 영상을 봤을 때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테스트 애니메이터 분들이 수년간 연구한 것을 내가 몇달 만에 캐치업해서 퀄리티를 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불 표현 외에도 각 원소 별 3D 구현 방식 차이도 두드러진다. 물인 웨이드가 일반적인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에서 봐온 3D 디자인이라면, 흙인 클로드는 이보다 한 단계 더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반대로 불인 앰버는 2D와 3D가 혼합된 형식으로 비춰진다.

이는 피터 손 감독의 의견이었다. 이채연 애니메이터는 "초기 개발 영상에는 실제 불처럼 디자인된 캐릭터에 표정과 감정이 들어갔다. 너무 실사 같으니 무섭더라. 그래서 관객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카툰형을 섞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은 어린 친구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것"을 당부했다.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고 그림 등 한 가지에 꽂혀서 집중하는 게 아니라 공감하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캐릭터에 공감해야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으니까요. 공감하는 척하면 작업물에 다 드러나요.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알아야 해요."

또한 "버티고 보면 기회가 온다"는 응원을 보냈다. 그는 "실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며 "저는 번아웃이나 힘든 시간이 왔을 때 두 가지로 해결했다. 첫 번째는 지금 힘든 일보다 더 힘든 일을 만드는 것. 그런데 이건 제 정신건강에도, 몸에도 좋지 않더라.(웃음) 그래서 길게 쉬었다. 애니메이션은 쳐다도 안 보고 컴퓨터도 안 했다. 6개월을 쉬고 나니까 열정이 살아나더라. 한 차례 번아웃을 경험했으니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쉬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은 못했을 거다. 그와 동시에 픽사에서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자신의 실제 경험담을 나눴다.

이민자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만 결국 엘리멘탈은 자신만의 꿈을 가진 모든 이들이 공감할 이야기다. 무엇보다 한국계 감독과 한국인 스태프들의 손을 맞잡은 만큼 한국적인 요소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채연 애니메이터는 "한국 관객들이 보시면 더욱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적인 요소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또 엔딩 크레딧에 자리한 한국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뿌듯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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