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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규정? 오히려 족쇄가 된 FA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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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규정? 오히려 족쇄가 된 FA제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5.29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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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이슈] 과도한 보상규정으로 영입 부담…원소속팀과 협상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

[스포츠Q 박상현 기자] 겨울 스포츠인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막을 내렸거나 파장을 앞두고 있다. FA를 통해 대박을 치기도 하지만 요즘은 '쪽박'을 차는 선수가 적지 않다.

FA는 일정 기간 자신이 속한 팀에서 뛴 뒤 다른 팀과 자유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제도다. 흔히 FA제는 그동안 열심히 뛴 대가로 몸값을 높게 받을 수 있는, 선수들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보면 선수가 자유경쟁시장에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다면 너도나도 데려오려는 팀들의 '입찰 경쟁'으로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못한 연봉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아예 팀을 구하지 못하고 외면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바 'FA 미아'다.

그런데 FA 미아가 단순히 자유경쟁이 아니라 불합리한 규정 때문에 발생한다면 분명 문제가 아닐까.

▲ 문태종은 1차 협상에서 원소속팀인 창원 LG로부터 5억원을 제시받았지만 2차 협상 실패 뒤 3차 재협상에서는 몸값이 3억8500만원으로 깎였다. [사진=KBL 제공]

◆ 아직 쓸만한 선수들, 보상 규정 때문에 '강제 은퇴'

프로농구에서는 김태주(서울 삼성)와 김용우(서울 SK), 박래윤(창원 LG), 장민범, 이진혁, 신상언(이상 전주 KCC), 김보현(안양 KGC) 등이 3차 협상에서도 결렬돼 다음 시즌을 뛸 수 없게 됐다. 김동우(삼성)는 은퇴의 길을 택했다.

프로배구에서도 김주완, 이영택(이상 인천 대한항공), 김광국(우리카드), 주상용, 박성률(이상 수원 한국전력), 강영준(안산 OK저축은행), 김선영(김천 한국도로공사), 이소진(화성 IBK기업은행), 한수지(대전 KGC인삼공사) 등이 현재 원소속팀과 협상을 갖고 있다. 마감기간인 31일까지 이틀이 남았지만 이들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FA 시장에서 팀을 찾지 못하고 계속 미아가 나오는 첫 번째 이유는 언제나 지적되는 과도한 보상규정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도 FA 보상규정은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기존 선수와 보상금을 동시에 내주는 경우는 없다.

MLB에서 FA는 A와 B, 등급 외 등 세 등급으로 나뉘는데 A급 선수를 데려갈 경우 A급 선수의 원 소속팀은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가져갈 수 있도록 돼 있다. B급 선수 역시 1라운드와 2라운드 사이의 지명권을 가져갈 수 있다. 신인선수 드래프트 지명권을 가져가는 정도이기 때문에 선수 몸값 외 출혈은 없는 편이다. 등급 외 선수는 보상이 없다.

이에 비해 한국의 보상규정은 FA를 데려오려는 팀들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는 요소다. 프로야구와 프로배구는 FA를 데려갈 경우 직전 시즌의 연봉의 300%나 연봉의 200%에 20명의 보호명단에 들어있지 않은 선수 1명을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울산 모비스, 서울 SK, 서울 삼성에서 뛰었던 김동우는 FA 시장에 나왔지만 어느 팀으로부터도 선택을 받지 못해 은퇴를 결정했다. [사진=KBL 제공]

프로농구는 보수서열 전체 30위 이내이고 35세 미만인 경우 원 소속팀에 보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도 전년 보수의 50%와 선수 1명 또는 전년 보수의 200%를 내줘야 한다. 스타급 선수를 하나 데려오려면 출혈이 너무 크다.

대어급 FA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데려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담을 느껴 영입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프로농구가 보수서열 전체 30위 이내의 선수만 보상을 두도록 한 것도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다.

◆ 원소속팀과 시작하는 협상? 주도권 뺏기는 선수들

협상 절차도 문제다. 현재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배구는 모두 원소속팀에 우선 협상권을 주고 있다. 우선 협상기간이 끝난 뒤에야 다른 팀과 접촉할 수 있는 2차 협상 기간이 시작된다.

원소속팀이 우선 협상권을 갖게 되면 선수들은 자신의 몸값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게다가 한국은 에이전트 제도를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아 절대적으로 선수들에게 불리하다. 원소속팀과 협상이 결렬되면 그제서야 FA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다른 팀들은 원소속팀이 제시한 것보다 더 높은 금액을 불러야 하기 때문에 더욱 부담을 느낀다.

2차 협상에서 실패하면 원소속팀과 재협상을 갖게 되는데 이 때가 되면 선수들은 궁지에 몰린다. 재협상기간에 계약을 맺지 못하면 한 시즌을 통째로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몸값이 대폭 깎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문태종이 그런 경우였다. 문태종은 1차 협상 때만 하더라도 창원 LG로부터 5억원을 제시받았지만 재협상했을 때는 3억8500만원으로 1억원 이상이나 깎여 있었다.

▲ SK 나주환은 올해초 FA 시장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과도한 보상규정 때문에 다른 팀들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했다. 나주환은 SK와 재협상 끝에 계약에 성공했지만 몸값이 오히려 떨어졌다. [사진=SK 와이번스 제공]

3차 협상에서도 실패해 한 시즌을 통째로 쉰다면 이는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다. 한 시즌이 아니라 그 이상, 또는 아예 '강제 은퇴'가 되는 경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12년 FA 시장에 나왔다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김민지를 비롯해 한은지(2013년), 김민욱, 최윤옥, 윤혜숙(2014년) 등 V리그의 FA 미아들이 대표적인 예다. 김민지는 2010년 V리그 올스타전 MVP에 뽑히고 대표팀에서도 뛸 정도로 수준급 선수였지만 2012년 FA 시장을 통해 어느 팀으로도 선택을 받지 못한 뒤 여태껏 V리그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은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일은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올해초 FA 시장에서도 차일목(KIA), 나주환, 이재영(이상 SK), 이성열(한화) 등은 원소속팀과 재협상 끝에 간신히 계약에 성공했지만 그만큼 몸값은 깎인 뒤였다. 이전에는 이도형(전 한화)이 FA 시장에서 선택을 받지 못해 은퇴해야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MLB처럼 등급제를 실시해 일정 수준 이상의 선수에게만 보상제도를 적용하는 한편 FA가 되기 직전 미리 구단이 장기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선수들의 안정을 도모하는 방향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계속 반복되는 FA 몸값 인플레 못지 않게 FA 미아를 양산하는 현재 시스템은 분명 개선 논의를 거쳐야할 대상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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