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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스포츠마니아들의 해방구 SNS, 그 이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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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스포츠마니아들의 해방구 SNS, 그 이면 속으로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6.05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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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여론 만드는 메가 커뮤니티, 동영상으로 선수 환기, 계정 통해 거대 담론도 제기

[스포츠Q 민기홍 기자]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선수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하도 구설수에 오르자 이렇게 말했다. 이 촌평의 줄임말 ‘트인낭’은 이제 누리꾼들 사이에서 관용적 표현이 됐다.

지금이야 한국 축구대표팀의 보물로 자리잡은 기성용은 2013년 6월 비밀 트위터 계정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 자격이 없다”고 '누군가'를 겨냥했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며 ‘기묵직’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기성용은 EPL에서 '스완지의 주축'으로 맹활약하며 현재는 SNS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축구 스타 중 한명이 됐다.

▲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기성용은 SNS를 가장 잘못 쓴 선수로 지목됐으나 현재는 SNS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축구 스타 중 한명이다. 한눈에 알아보는 하루 축구소식으로 7만 명이 넘는 회원을 불러모은 축구 커뮤니티 '스루패스'가 기성용 소식을 전했다. [사진=스루패스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SNS는 정말로 ‘인생의 낭비’일까. 부작용도 크지만 순기능도 만만치 않다.

SNS의 발달은 스포츠계에도 적잖은 변화를 몰고 왔다. 사람들이 대거 모이는 페이지나 커뮤니티들은 미디어가 놓친 부분들을 짚어내며 여론을 형성한다. 빼어난 편집기술로 잊혀진 선수, 무명의 선수들을 재조명하기 한다. 소통에 적극적인 선수들은 직접 나서 어젠다를 설정하기도 한다.

◆ 1분짜리 동영상이 재발견하는 선수들 

“스크롤이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독자는 기사가 너무 길다 싶으면 대충 훑은 뒤 마우스 휠을 내려버린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많은 생각을 요하는 활자보다는 3분 내외의 경기 하이라이트, 동영상 클립, 움짤(움직이는 짤방) 등이 각광받는 시대다.

회원수만 130만 명을 보유한 국내 최대 축구 커뮤니티 '아이러브사커' 페이스북 팬페이지에는 다양한 동영상이 제작돼 널리 퍼지고 있다. 최근에는 K리그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에 발탁된 다문화가정 선수 강수일의 드리블 스페셜 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다.

▲ 국내 최대 축구 커뮤니티 '아이러브사커'에서는 최근 강수일의 드리블 스페셜 영상을 내놨다. 이 동영상은 슈틸리케호 승선과 맞물려 폭발적인 반응을 끌었다. [사진=제주 유나이티드 제공]

3000명이 넘는 팬들이 ‘좋아요’를 눌렀고 “몸싸움을 엄청 영리하게 한다”, “오늘부로 강수일팬”, “보는내내 소름”이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포항 스틸러스를 거쳐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성한 과거 스토리는 짤막한 글로만 대체된다. 영상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지난 1월 차두리가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호주 아시안컵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손흥민의 결승골을 유도하는 드리블 돌파가 나오자 2004년 부산에서 열렸던 A매치 독일전 드리블 돌파 영상이 다시 한번 온라인을 강타했다. 당시 어렸던 친구들은 차두리의 ‘3단 부스터’ 영상을 보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됐다.

또 다른 축구 팬페이지 '스루패스'는 1분이면 정리되는 오늘의 축구소식을 통해 7만 명이 넘는 회원을 불러모았다. 운영자 신정환 씨는 “짧은 영상도 인기가 많지만 10장 내외의 사진으로 요약해 놓은 콘텐츠들의 반응이 뜨겁다”며 “출퇴근길에 쉽게 보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방송 소재 제공-별명 생산-건전한 토론, 대형 커뮤니티의 힘 

'MLB파크'는 국내 최대 야구 커뮤니티다. 분 단위로도 수십 개의 글이 올라올 만큼 야구팬들이 한데 몰리는 곳이다. 이 곳은 ‘빈볼 시비’, ‘탱탱볼’, ‘편파해설’ 등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바탕 설전이 오간다. 전문가 뺨치는 수준 높은 논객들의 글들은 SNS로 퍼져 확대 재생산된다.

SBS스포츠가 올 시즌부터 제작해 매주 월요일마다 송출하는 '주간야구'는 해설진 3인과 캐스터 1인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한주를 뜨겁게 달군 핫이슈의 출처가 다름 아닌 MLB파크 한국야구타운 유저들이 올린 글들이다.

꽃범호(이범호), 용규놀이(이용규), 무한준(유한준), 김별명(김태균), 마그넷정(최정), 채천재(채태인)...

야구 선수들의 별명은 주로 커뮤니티 포털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나온다. 외모의 특징을 잡는다든지 개개인의 플레이, 굴욕적인 과거사 등을 잡아내 폭소를 자아낸다. 비속어와 욕설이 섞여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전문가들도 무릎을 탁 칠 만큼 창의적인 별명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 박용진 전 감독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야구사랑방'. 단순한 소식을 넘어 전문적인 야구지식을 배워가는 누리꾼도 있다. [사진=야구사랑방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4개 프로야구단 2군 사령탑을 지낸 박용진 전 감독이 운영하는 '야구사랑방' 페이스북 팬페이지에서는 연일 뜨거운 토론이 펼쳐진다. 32년간 현장을 누빈 그는 상황상황에 맞는 전문적인 야구기술을 전수해 누리꾼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박용진 전 감독은 "예전에는 팬들과 직접 소통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SNS 활성화 이후 미국, 일본처럼 깊이 있는 야구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4년간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야구팬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복잡한 룰, 선수들만이 느끼는 멘탈 요소, 고급 야구 기술들을 전수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 은퇴 선언 SNS로, 종목 다양성 외치기도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센터였던 샤킬 오닐은 2011년 6월 코트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19년간 4회 우승, 3번의 파이널 MVP를 수상한 슈퍼스타였던 그는 공식 기자회견이 아닌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렸다.

오닐은 손수 동영상을 촬영해 팬들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이곳을 통해 먼저 팬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언론이라는 틀이 아닌 개인 계정을 활용함으로써 오닐은 "가장 신선한 은퇴 선언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 어린이날 5개 채널이 동시에 야구만 중계하는 것에 실망한 이동국이 자신의 SNS를 활용해 "축구보고 싶은 어린이들은 어떡하라고"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이동국 인스타그램 캡처]

전북 현대 이동국은 지난달 5일 5개 채널이 프로야구 한화 경기를 중복으로 내보내는 것을 보고는 “어린이날 축구보고 싶은 어린이들은 어떡하라고”라는 글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작심하고 던진 쓴소리에 야구팬과 축구팬간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동국이 던진 화두는 결국 K리그의 자성 목소리, 방송사의 다양성 존중 등 거대 담론으로 이어졌다. 이동국은 "나는 모든 스포츠를 다 즐기는 편이지만 평소 내 생각을 말했다“며 "이런 상황을 보며 축구 관계자들이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축구를 접하도록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사태를 마무리했다.

시답잖은 잡담이 오고가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SNS는 더 이상 그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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