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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한 배우' 임지선 "시월드 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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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한 배우' 임지선 "시월드 쯤이야"
  • 이희승 기자
  • 승인 2014.04.08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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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연극에 미쳐 10대를 보냈다. 20대에는 ‘독하다’는 말이 칭찬인 줄 알고 살았다. 30대를 코앞에 둔 배우 임지선(29)은 현재 연극 ‘며느리 전성시대’(오는 27일까지 성수아트홀)를 통해 여성들의 공감대를 자아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고부갈등의 사례를 검색하고, 대선배들 사이의 예쁜 막내로, 주말 드라마의 오디션 현장으로 뛰어다니는 바쁜 일상이지만 ‘인기의 엘리베이터’만큼은 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임지선은 이제 ‘막 뜨는 신인'이 아닌 ‘준비된 배우’로 우리 앞에 섰다.

[스포츠Q 글 이희승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올해로 스물아홉 살. 결혼 적령기의 배우 임지선은 ‘일’적으로 워킹맘이자 한 남자의 아내, 맏며느리의 삶을 살고 있다. 성수 아트홀에서 인기리에 공연 중인 창작극 ‘며느리 전성시대’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까다롭고 막무가내인 시어머니와 순둥이 남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중인 2년차 새댁이다.

누군가의 딸에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며느리로, 다시 시어머니가 되는 여자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표현해낸 ‘며느리 전성시대’의 작가는 의외로 남자다. 여자들만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 사이에 낀 시아버지와 남편의 심리가 생생하게 녹아있다. 그래서일까. 김용상 작가의 소설 '고부전쟁'을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은 개막 1주일도 안돼 중년 여성들의 필수 관람작으로 떠오르고 있다.

 

◆ 15분 대화만으로 캐스팅...예비 ‘시월드’ 체험 의외로 재미나

갈등은 아들을 사이에 둔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집중하지만 대부분의 웃음과 공감은 임지선의 연기에서 나온다. 비키니 차림으로 등장하는 임지선의 연기덕분에 ‘며느리 전성시대’는 3초 만에 관객들의 폭소로 출발한다.출산 후 육아 휴직 중인 설정에 완벽히 빙의돼 객석을 향해 아랫배를 짚어 넣으며 리얼하게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코믹 그 자체다.

대학로에서 장기 상영 중인 연극 ‘라이어’도 이 정도로 빨리 웃음이 터지진 않았다고 하자 얼굴에 화색이 돈다. 1시간 반 이 넘는 공연 중에서 임지선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은 단 두 신뿐. 대사의 양도 많거니와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신이 많아서 체력이 고갈 될 법도 한데 임지선의 표정은 유난히 밝았다.

"워낙 ‘라이어’의 팬이라 비교만으로도 영광이죠. 특히 연극은 한꺼번에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작업이니까 몸이 고되긴 해요.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면 ‘이 맛에 연극하지’란 만족감이 남달라 끊임없이 무대를 찾게 되요. ‘며느리 전성시대’는 제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걱정이 컸는데 배우란 원래 타인의 삶을 표현하는 직업이니까 미리 경험한다는 생각에 즐겁게 연기하고 있어요.”

일찌감치 결혼한 친구들도 있고, 주변에서 보고들은 ‘시월드’ 덕분인지 연극에서 선보이는 ‘진상 5단 세트’인 시어머니와 얄미운 시누이에 대한 연기는 가슴부터 우러나왔다. 대본이 잘 짜여진 덕분에 그 어떤 역할 보다도 몰입이 잘 됐단다. 평소에는 둘도 없이 다정한 선배이다가도 무대 위에서는 서러움과 질투가 솟구치게 만드는 상대 배우들과의 호흡도 ‘며느리 전성시대’를 통해 얻은 기쁨이다.

 

"나름 중고 신인이라 오디션 준비를 하고 갔는데, 대화만 하시고 그냥 돌려보내시더라고요. 서운해서 절 소개시켜 준 지인에게 따졌더니 제작자와 연출가의 연차가 얼마인데 그 정도도 눈치 못채냐고 구박받았어요. 제 말투와 하는 행동을 보시곤 바로 파악하신거죠. 시댁식구들로 나오는 선배들은 연극계에서 실력파로 유명하신 분들이라 프로다움이 어떤 건지 몸소 체험하고 있어요. 저에게 ‘며느리 전성시대’는 초심을 잃지 않게 만든 고마운 작품이에요.”

◆ ‘독한 년’으로 불렸던 학창시절...이제는 인지도 쌓고파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낀 둘째딸 특유의 잡초 근성은 대화 내내 드러났다. 고향인 전라남도 광주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큰언니에 대한 고마움과 철없는 동생을 걱정하면서도 본인의 영역을 확실히 지키려는 강단 있는 모습은 임지선의 여성스런 외모와 대비되면서 묘한 매력을 풍겼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은 죽어도 하는 성격이라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언니에게 미안해요. 하지만 제가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너 하고 싶은 것 해’라며 용기를 주고, 가끔 용돈도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웃음) 배우로 살아가는데 가족의 힘이 굉장히 크죠. 부모님의 반대요? 반 등수 안 떨어트리니까 결국엔 포기하시더라고요.”

임지선은 꽤 오랫동안 ‘독한 년’으로 불렸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연기를 꿈꾸며 주말마다 서울을 오고가며 연극에 미쳐 살았지만 성적표의 등수는 언제나 한자리였다. 전교 50등을 벗어난 적이 없는 딸의 근면함과 고집에 부모님도 연극과에 진학하겠다는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전국에서 끼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로 유명한 서울예술학교 연극과에 들어가서도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전 과목 올 A+로 졸업한 자신을 보고 친구들과 교수님들은 고향에서 들었던 별명으로 자신을 부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욕으로 들리지 않았어요. 프로들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더 기운이 났달까. 하지만 사회는 다르더라구요. 욕심이 많아서 도리어 연기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넌 연기는 더할나위없이 잘 해. 그런데....’라는 반응인거죠. 평생 갈 길인데 완벽하게만 가려는게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깨달으면서 연기도 재미있어졌어요.”

임지선은 출발은 달라도 연기의 기본은 한 곳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내 딸 서영이’의 조연과 영화 ‘김종욱 찾기’ ‘웨딩드레스’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10대 시절 연기의 신들만 모인다는 동랑연극제에서 우수 연기상을 거머쥔 기본기는 어딜 가서나 빛을 발했다.

"MBC 주말드라마 ‘떴다 장보리'의 오디션을 보는데 감독님이 ’빨리 매니저 데리고 오라‘는 거예요. 뭔가 잘못 했나싶어 불안했는데 매니저 오빠가 나오면서 악수를 청하더라고요. 매니지먼트 10년 하는 동안 현장에서 바로 결정된 배우는 네가 처음이라고.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연기는 되는데 인지도가...‘라는 설움이 한 순간에 씻겨 내려갔죠. 주인공 친구 역할이지만 눈도장을 확실히 찍으려구요. 하하.”

◆ 몸이 고단한 일상 즐기며 배우로 성장 할 것

기타와 헬스, 검도부터 외국어까지 임지선이 가진 취미는 유난히 많다.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순간을 가장 경계한다는 그는 평소에도 다양한 도전을 즐긴다. 워커홀릭인 것 같다고 하자 자신의 나이를 들먹인다.

"점을 즐겨보진 않지만 남들 다 안 좋다는 스물아홉에 대박 난다는거예요. 그래서 연애도 쉬고 있어요. 배우로 자리잡기 전에 사랑에 빠져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고. 일보다 사랑인 여자들도 있는데, 현재로서는 뭔가를 배우는 게 더 좋아요. 정 할 게 없으면 집 근처 석촌호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요. 배우로선 그만한 공부가 없거든요. 조만간 길에서 그렇게 멍하게 있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아보는 존재감을 키우고 싶어요.”

실제로 보면 더 예쁜 연예인이 있듯이 임지선도 직접 만나면 뒤돌아보게 하는 외모를 가졌다. 카메라 속에서는 유난히 평범해 보이는 탓에 성형수술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배우가 가져야 하는 건 겉모습이 아닌 내공임을 깨닫고 나서는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심을 과감히 버렸다. '연기는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임을 깨달은 후부터 내실에 집중하고 있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하면 확실히 보답이 있는 것 같아요. 데뷔 초 인기에만 급급했다면 아마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겠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차근차근 계단을 밝아 성장하는 게 제가 꿈꾸는 삶이에요. 인생의 엘리베이터는 타고 싶지 않아요.”

[취재후기] 여우같은 첫인상에 손해를 많이 본다는 임지선. 그는 “인간관계에 있어 의리를 우선시하고 털털한 성격에 주변 사람들 모두 자신을 남자로 본다”고 웃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남성상을 묻자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남자”라고 딱 잘라 말하는 모습을 보니 여지 없이 결혼 적령기의 20대 여자의 모습이다. 진정한 행복을 아는 배우 임지선의 성장이 기대된다.

 ilove@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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