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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중을 바라보는 젊은 지휘자 '안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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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중을 바라보는 젊은 지휘자 '안두현'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4.11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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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한 평 남짓한 포디엄(지휘대)에 선 엄숙하고 고뇌에 찬 예술가, 일반적인 지휘자 이미지다. 위대한 작곡가의 예술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해석하는 학자의 모습이 존재하는가 하면 100여 명에 이르는 단원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하는 경영자의 면모가 있다. 마제스틱 청소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안두현은 이런 지휘자상과 다르다.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을 만나는 그는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 지휘에 전력투구하며 커리어를 쌓기보다 청소년·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조련에 열정을 불사른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 심지어 최근 영화 ‘랑랑 라이브 인 런던’ GV(관객과의 대화)의 사회자를 맡아 재미있고 쉬운 해설로 사랑받고 있다. 친근한 클래식 해설서 출간 준비에도 한창이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 사진 최대성기자] 지휘자 안두현(32)의 손에 작은 연습용 지휘봉이 들려 있었다. 지휘자의 오른손은 비팅(Beating·박자를 젓는 손짓), 왼손은 악상을 위해 기능한다. 근엄한 지휘자의 모습은 어느 한 구석에도 없었다. 호기심 많고 자유분방한 30대 남자가 있을 뿐. 그의 음악 언어는 매우 쉽다. 그것만으로도 '클래식 대중화'의 전령사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 클래식 지휘자가 영화 GV 사회자로 나서서 화제가 됐다. 어떤 이유로 참여하게 됐나.

“내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무대 체질이다. 후후.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다 그의 공연을 여러 차례 봐서 디테일한 설명이 가능할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소장한 랑랑 연주 동영상까지 준비해 행사장에서 보여주고 연주자로서 그의 개성과 특징을 설명했다.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는 분위기라 뿌듯했다.”

- 지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플룻을 배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외삼촌댁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1악장을 듣고 흠뻑 빠져들었다. 6학년 때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카세트테이프를 항상 들었다. 그러다 고1 무렵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란 책을 보게 됐다. 게오르그 솔티가 베토벤 ‘운명’을 지휘하는데 5년 전과 후의 연주가 확연히 달랐다. 연주시간도 몇 분 이상 차이가 났다. 심경의 변화 때문이라는 대목을 읽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그때부터 지휘자의 꿈을 품었다.”

▲ 영화 ‘랑랑 라이브 인 런던’의 진행자로 나선 안두현(왼쪽)

- 그 꿈을 어떻게 구체화해 갔나.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매력적이지 않나. 연주회를 쫓아다녔고,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다니던 교회 지휘자 겸 음대 교수가 유럽유학을 권유했다. 국내에는 지휘과가 별반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던 음악 대부분이 러시아 음악이라 2000년 말 러시아 유학을 감행했다. 2년 동안 작곡 공부하면서 마스터 클래스 참여 및 지휘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시험을 쳐서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음악대학(차이콥스키 음악원으로 유명) 지휘과에 입학했다. 국민예술가 니콜라에프와 다첸코를 사사했다. 차이콥스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을 지휘하며 경험을 쌓았다.”

- 세계적인 명문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음대 지휘과에 한국인 최초로 입학한 것으로 유명하다.

“1년에 1~2명만 뽑는 시스템인데다 동양인에 대한 텃세가 심했다. 연주자는 수요가 많지만 지휘자는 그렇지 않다. 내가 입학한 해에는 신입생이 나 하나였다. 이 학교 출신으로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 리히터, 아쉬케나지, 스크랴빈, 볼로도스, 임동혁, 스타니슬라프 부닌 등이 있고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도 이 학교 출신이다.”

- 한국에 다시 돌아와 청소년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맡게 됐다.

“2011년 대학원 졸업 후 러시아에서 직업을 구하기 힘든 현실 탓에 귀국을 결정했다. 귀국 후 마제스틱 청소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오디션에 합격했다. 청소년기부터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던 터라 의욕적으로 임했다. 연간 10회 정도 연주회를 하는데 2회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하는 정기연주회다. 프로그램도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등 어려운 레퍼토리다. 다들 끙끙대지만 성취감에 뿌듯해 한다. 직장인이 중심이 된 강북오케스트라, 음악 전공자 출신 일반인들로 구성된 강서 베누스토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도 맡고 있다.”

- 지휘자의 매력은 무언가?

“내가 원하는 음악을 타인을 통해 끌어내는 거? 자식이 부모말도 잘 안듣는데 사람들을 통솔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이쪽 업계에서는 ‘지휘에서 음악은 10%, 나머지는 단원들과의 심리전’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지휘자와 단원 사이에는 예의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음에도 내 몸의 움직임에 따라 음향 스케일이 달라질 때 느낌이 짜릿하다. 음악에 대한 내 철학을 끌어내고 연구하는 과정이 재밌다.”

- 연주자들과의 협연 때는 어떤 식으로 레퍼토리가 정해지고, 준비과정을 밟나.

“협연자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만한 곡을 선정하는데 신경을 쓴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경우 촉박한 일정 탓에 악단에서 정해서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작곡가의 대표곡 뭐’ 식이라 레퍼토리가 뻔해지게 된다. 후배인 (권)혁주는 ‘형이 원하는 거 아무거나 정하라’고 한다.”

- 무대에서 협연자나 단원들의 경우 어떤 경우가 실수가 이뤄지나.

“협주곡 리허설 과정에서 협연자와 사전 약속을 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협연자가 너무 긴장해서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경험이 부족한 단원들도 타이밍을 많이 놓친다. 약속된 대로 소리가 나오지 못하는 거니까 실수다.”

 

-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 절대악인가.

“박자, 음정, 리드...틀리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데 틀리더라도 음악에 몰입하고 즐기는 게 중요하다. 므라빈스키 지휘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실황 음반(러시아 한정 발매)을 들어보면 세계 최고의 지휘자임에도 금관, 목관파트에서 실수가 연발한다. 그럼에도 몰아치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서 전혀 거스르질 않는다. 오히려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단원들이 그만큼 음악에 몰입한 거 아니겠나. 세계 최정상이라는 베를린필도 호른에서 실수가 많다.”

- 음악을 즐긴다? 너무 뻔한, 이상적인 슬로건 아닐까.

“음악은 즐기는 게 맞다. 가슴으로 순수하게 알아가야지 머리로 알아가면 감동에 빠지지 못한다. ‘내가 듣던 음반보다 느리네? 빠르네? 여기서 음정이 틀렸네?’라고 아는 체를 하는 전문가들, 주변에 많다. 사회가 공부와 스펙만 강요해서 감성, 인간성이 날로 결여돼 감동을 느끼기보다 자꾸 판단하려 들고 결과에 연연한다.”

- 지휘자로서만도 바쁠 텐데 음악회 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궁금하다.

“아무리 유명하고 바쁜 지휘자라도, 악단에 매여 있는 상황이라도 연간 90일만 채우면 된다. 상임지휘자여도 연습시간은 2~3시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자기 연구 시간이다. 지휘 외에 운용할 시간이 충분하다. 어린 시절 클래식을 들었을 때의 그 전율, 감성이 터질 것 같던 느낌을 잘 설명해주고 전달해주고 싶어서다. 이런 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 않나? 클래식은 어렵고 지루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주고 인식을 바꿔주고 싶었다.”

-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해설법을 위해 고민을 많이 할 것 같다.

"클래식 애호가나 전문가를 만날 때는 원론, 이론, 분석적 이야기를 주로 한다. 대중과 만날 때 반복할 필요가 뭐 있나. 상상력을 동원해 이해시켜야 하기에 더 재미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이들의 호응이 더 크다. 대중이 관심 있어하는 스마트폰, 스포츠, 영화, 예능프로들을 클래식과 연관시켜 말하는 게 주효한다. 지난번엔 싱코페이션(엇박자)으로 진행되는 모차르트 음악 이야기를 할 때 스케이트를 지치다가 미끄러지는 비유를 했더니 쉽게 이해들 하시더라. 흥미로워하고.“

- 요즘 대중문화에 클래식 콘텐츠가 늘어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드라마와 영화에서 클래식을 마케팅으로 활용하면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아챈 것 같다. ‘밀회’에서도 신비함과 동경을 유발하지 않나. ‘진짜 사나이’에서 헨리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한 게 화제가 됐다. 멋있어 보이잖나. 삶의 질이 높아지다보니 고급스러운 문화향유 욕구가 커지는 거다. ‘찾아가는 음악회’나 ‘야외음악회’에 가보면 지역 주민들이 많이 온다. 공연에 대한 관심이 크다. 또 현재 클래식 연주자들이 대중화를 위해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 클래식 관련 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클래식 해설서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을 담은 대중을 위한 책이다. 일상의 것, 상상력을 토대로 음악을 어떻게 듣느냐에 초첨을 맞췄다. 이제까지 클래식 서적은 역사적 배경과 인물에 대한 지식이 주였는데 이를 배제했다. 그러지 않아도 클래식 음악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다는 일종의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취재후기] 몇차례 지휘자를 인터뷰하거나 백 스테이지에서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안 지휘자는 그들의 박제화된 이미지를 송두리째 깨줬다. 튀지 못하면 혓바닥에 바늘이 돋는 유형은 아닌 듯싶다. 열정이 그를 들썩히게 하나보다. 단박에 이해되고 그래서 신명나게 클래식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까불까불한' 지휘자,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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