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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 두른 서산 용비지 ‘무릉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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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 두른 서산 용비지 ‘무릉도원’
  • 이두영 편집위원
  • 승인 2014.04.16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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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이 환상적인 벚꽃 사진명소

사진애호가들 새벽부터 몰려들어

열정과 부지런함에 감동 또 감동

 [스포츠Q 이두영 편집위원] 해가 뜨려면 1시간 가까이 남은 새벽. 손전등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발 디딜 곳을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깜깜한 시각인데도 충남 서산 운산면 용유지 제방 위에는 벌써 여남은 사람이 올라와서 두런두런 정담을 나눕니다. 휑한 둑 위에서 쐬는 새벽바람은 감기의 친구라 할 만큼 쌀쌀하지만 제방 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고려할 것이 못 됩니다. 아예 밤잠을 설치고 전라도에서 경상도에서 달려온 사람도 있으니까요. 제방에 앉아 있다 보면 전국 각지의 사투리가 들려 옵니다. 억양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감지됩니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열정과 적극성, 근면은 하나같습니다.

저는 어둠 속에서 저수지를 향해 삼각대를 세워놓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는 척하며 청각기능을 최대한 작동시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새벽에 그곳으로 몰려드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화순 세량지에 갔을 때 400~500명 정도 됐던 것에 비하면 수는 적지만 참으로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잠을 안 자고 시간과 기름 값을 들여 이곳에 오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효용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 그들은 사진 동호회 회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용유지의 이른 아침. 새소리가 더욱 흥겹습니다

 

그들이 수면시간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용유지에 모인 것은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면 세상의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해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같이 상업적인 목적을 갖고 온 사람은 티 내지 않고 조용히 찍고 가겠지만 동호회원들은 전국 곳곳의 사진명소와 벚꽃명소, 진달래 및 철쭉명소에 대한 개화시기와 현재 상황 등의 정보를 나누며 즐거워했습니다. 각 명소의 개화시기를 놓치지 않고 전국을 누비는 듯했습니다. 그들에게 사진 기술이나 작품의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고 열광할 수 있는 취미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풍경사진에서 사진기술 못지않게 날씨와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 그들은 그 어느 프로 사진가보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건질 가능성도 갖고 있습니다.

▲ 용유지 일출.

드디어 방죽의 형체가 희미하게 드러나고, 숲의 새들은 열창으로 아침을 반겼습니다. 산벚꽃이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수면도 정적을 깨고 반사를 시작합니다. 둑에 정렬한 100명인지 200명인지 모를 사진애호가들도 하나둘 셔터를 누르기 시작합니다. 파르스름한 새순과 풍성하게 산기슭을 수놓은 왕벚꽃은 부드러운 산능성이의 실루엣과 더불어 투명하게 저수지에 반영됩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아! 아! 여기저기서 신음 비슷한 감탄이 흘러나오고 새들의 울음도 속도를 내며 재잘거립니다. 저는 카메라를 내팽개치고 그저 감상만 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넋을 놓고 그 순간을 영원처럼 즐기고 싶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빛의 양이 모자라는 상태에서 셔터를 아무리 눌러봐야 헛고생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수많은 동호회 회원들은 신이 나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사진의 결과를 떠나 그들에게는 그 순간의 환희와 열정을 즐긴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행여나 하고 기대했던 물안개가 피어오르지 않아(일교차가 크지 않았고 밤 온도 자체가 높았습니다) 아쉽긴 했지만 그들의 열정은 저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아래 사진의 대부분은 4월 14일 월요일 새벽에 찍은 것입니다. 봄마다 이렇게 물안개와 나무와 벚꽃이 어우러져 선경을 자아내는 봄꽃촬영 명소로는 용유지를 비롯해 전남 화순의 세량지(세량제), 경남 경산의 반곡지, 경북 청송의 주산지 등이 있습니다.

▲ 용유지의 새벽.
▲ 용유지에 산벚꽃이 떨어져 밀려 다닙니다.
▲ 바람이 슬며시 불어 반영을 훼방 놓습니다.
▲ 탐스러운 왕벚나무의 꽃이 수면에 비쳐 환상적인 그림자가 생겼습니다.
▲ 용유지에는 개나리와 기이한 형상을 한 나목들도 있어 그들이 물에 투영되면 화사한 데칼코마니가 형성됩니다.

▲ 용유지의 아침.

 

                   ▲ 용유지 제방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데칼코마니 같은 형상이 펼쳐집니다.  90도 각도로 세우면 재미있는 그림으로 보입니다.

▲ 아침 햇살에 나무들도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깨는 듯합니다.
▲ 용유지의 화사한 아침.
▲ 용유지는 주변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단 미끄럼 조심!
▲ 용유지.
▲ 용유지.

 

▲ 용유지.

 

▲ 용유지.

용유지에서 자동차로 20분 이내의 거리에 개심사가 있습니다. 약간 푸른빛을 띠는 청벚꽃이 있는 사찰입니다. 개심사는 말 그대로 마음의 문이 열리는 절입니다. 구부러진 목재를 사용한 부엌과 흙담으로 지은 창고 등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는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있습니다. 국보 제84호입니다. 백제 시대 이후 긴 세월 동안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은 불상을 보면 열린 마음에 세상을 밝게 보는 미소까지 더해질 것입니다. 단, 백제의 미소가 햇빛을 받는 시간은 오전이라는 것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오후에는 불상 얼굴에 그늘이 집니다.

▲ 용유지 주변의 왕벚나무.
▲ 새벽열정이 지난 다음의 텅 빈 용유지 제방.

 

 용유지는?

 용비지로 더 잘 알려진 용유지는 ‘용이 놀다 간 저수지’라는 뜻이네요. 저수지 주변에는 산벚꽃 뿐 아니라 아름드리 왕벚꽃과 왕버들, 개나리, 진달래 등이 즐지합니다. 벚꽃 개화기는 4월 초,중순입니다. 용유지는 농협중앙회 가축개량사업소 안에 위치해 있어서 AI 바이러스 등 전염병이 돌 때에는 철저하게 입장이 금지됩니다. 사진이 잘 나온다는 소문이 나서 봄마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평소에는 출입을 묵인하고 있습니다. 철조망 밑을 통과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방문객 입장에서는 입장을 묵인해 주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지요. 그러나 어제 목격한 씁쓸한 광경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저수지 아래 풀밭 입구는 소들이 먹을 풀들이 자라고 있고 풀밭 입구는 차의 진입을 막는 철문이 있는데, 밤에는 그냥 열어둡니다. 그런데 저수지까지 7~8분 정도 걷는 수고를 아끼려고 자동차들을 꾸역꾸역 철문 안으로 몰고 들어가 철망 부근에 주차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를 괘씸하게 여겼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갈 때 보니 관리하는 측에서 철문을 잠가버려 안에 주차한 차량이 나가지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일부의 사소한 이기심 때문에 앞으로 용유지 출입이 더 불편해지거나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travel220@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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