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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이 힘들게 할지라도… 나는 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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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이 힘들게 할지라도… 나는 이 길을 간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2.04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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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육상 선수 유병훈 "동정어린 시선은 사양, 장애인도 스포츠 즐길 수 있어"

[300자 Tip!] 2014년 새해 첫 화두를 장애인 스포츠로 잡았다. 보통 장애인 스포츠라고 하면 온갖 어려움에 힘들고 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선수들은 '인간 승리자'가 된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한 장애인 선수의 얘기를 통해 알아본다.

[스포츠Q 박상현 기자] 휠체어 육상선수인 유병훈(42)은 오후 1시 정도면 성남 분당에 있는 한마음 복지관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2층 체육관 문 앞에 별도의 훈련시설을 마련했다. 2평 남짓 협소한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하루에 두세 시간씩 구슬땀을 흘린다.

▲ 휠체어 육상 유병훈 선수가 성남 분당 한마음 복지관에 마련한 훈련장에서 휠체어를 돌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상민 기자]

유병훈은 국내 휠체어 육상 1인자다. 지난 2006년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 휠체어 육상 800m 은메달을 비롯해 베이징 패럴림픽 남자 400m 계주 동메달,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200m 은메달,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남자 400m 은메달 등 좋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지난 2010년 대한민국체육상 장애인체육발전 유공부문 백마장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는 정동호(39)와 김규대(30) 등 후배들과 북부휠체어마라톤 팀에서 함께 훈련했다.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했던 이 팀은 지난 2008년부터 한 대기업 금융사의 후원을 받았다.

정동호와 김규대 역시 각종 패럴림픽과 장애인 아시안게임 등에서 입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선수들이다. 런던 패럴림픽 당시 개막식에서 선수단 기수로 활약했던 김규대는 지난해 장애인 육상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 유병훈 선수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규대, 정동호 선수와 함께 북부휠체어마라톤 팀에서 활약했으나 팀 해체 후 성남 분당 한마음 복지관에서 훈련하고 있다. [사진=이상민 기자]

하지만 북부휠체어마라톤 팀은 지난해를 끝으로 해체됐다. 대기업의 후원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연 2000만원의 대기업 후원금은 훈련비와 장비구입비로 유용하게 쓰였으나 후원금이 끊기면서 팀이 사라지고 말았다.

훈련하던 동료도 뿔뿔이 흩어졌다. 김규대는 천문학을 공부하겠다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김규대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정동호는 스포츠Q에서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본인의 고사로 함께 하지 못했다.

유병훈은 열악한 현실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장애인 스포츠팀 지원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기업에서 후원했던 것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고 하던데 정책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스포츠팀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역시 직장운동경기부(실업팀)가 의무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봐요. 특히 공기업에서 팀 창단을 주도적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모두 장애인 스포츠팀을 꺼려하네요. 장애인을 고용하면 고용 장려금도 나오는 등 지원책이 있는데도 팀 창단을 꺼려하는 것은 역시 비장애인 스포츠처럼 인기가 있겠느냐는 인식이 있다고 봐야겠죠."

▲ 휠체어 육상 유병훈 선수가 성남 분당 한마음 복지관에 마련한 자신의 훈련장에서 훈련 준비를 하고 있다. 유병훈 선수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구조를 장애인 스포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들었다. [사진=이상민 기자]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지 못하다보니 유병훈 역시 따로 직장을 다닌다. 훈련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다 보면 시간이라는 문제에 늘 부딪히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생활이 가장 어렵죠. 직장을 다니며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보통 일인가요. 패럴림픽 출전 때문에 국가대표팀 훈련을 하러 나가면 직장에서 보는 시선이 어떻겠어요. 배려를 해주는 직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 '우리와 상관없는 일인데 훈련을 나간다'며 곱지 않게 보겠죠. 그러다 보니 훈련을 받으러 갈 때면 직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도 여섯 차례나 직장을 옮겼어요."

그래도 여섯 차례나 직장을 옮긴 것은 오히려 나은 사례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유병훈이 말하는 장애인 선수들의 실상은 더욱 열악하다.

"기초생활수급자도 많죠.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생활 수준이 더 밑바닥이라고 생각하면 맞을 겁니다. 그리고 직장운동경기부가 있다고 하더라도 월 120만원 정도? 비장애인 선수의 30% 정도로 최저임금 수준 밖에 되지 않아요. 보통 스포츠 선수들은 언제 은퇴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반 직장인들보다 급여가 높아야 하는데 이것도 안되는 거죠. 장애인 선수들은 어차피 월급 받지 않아도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예요."

훈련 환경 역시 그를 힘들게 하는 요소다.

▲ 유병훈 선수가 성남 분당 한마음 복지관의 훈련장에서 휠체어를 돌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장애인 스포츠와 관련한 각종 인프라가 부족한데다 운동장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 문전박대까지 당한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사진=이상민 기자]

"정말 훈련장소 찾기가 쉽지 않아요. 북부휠체어마라톤에 있을 때도 북부장애인복지관이 아닌 의정부나 다른 지역에서 훈련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북부장애인복지관에 훈련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다보니 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많이 다녔던 거죠. 지금은 더 힘들어요. 운동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언젠가 한 공설운동장에 갔는데 '휠체어가 왜 들어오느냐'며 문전박대당한 경우도 있어요."

이쯤 되면 장애인 스포츠가 힘든 이유는 그들의 불편한 몸 때문이 아니라 주위 환경 때문이다. 잘못된 인식과 선입견, 장애인들에게 편익을 제공하지 못하는 환경이 장애인 스포츠를 힘들고 고되게 만드는 것이다.

유병훈은 생활체육으로서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나라 장애인 스포츠가 엘리트 체육 위주여서 생활체육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장애인 스포츠의 생활체육은 크게 두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체육을 통해 사회성을 함양하는 거죠. 집에서 나오게 하고 사회성을 기른다는 거죠. 두 번째는 생활체육이 엘리트 체육의 기반이 된다는 겁니다. 생활체육을 하면서 기량을 쌓고 재능을 보이면 신인 선수로 발굴돼 엘리트 체육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엘리트 선수들의 고령화가 가속되고 있습니다. 또 생활체육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장애인 스포츠를 한다고 하면 엘리트 체육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결국 장애인들이 생활체육으로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안 되어 있는 겁니다."

▲ 유병훈 선수는 지금보다 장애인 스포츠가 더욱 발전하려면 생활체육에 대한 지원을 늘려 장애인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이상민 기자]

생활체육으로서 장애인 스포츠가 활성화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유병훈은 장애인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이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사회 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활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인식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긴 힘들 겁니다. 하지만 밑바닥인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것이 중요하죠. 시대가 달라진 만큼 시야도 달라져야죠. 장애인 스포츠가 힘든 것을 이겨낸 '감동 스토리'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고요. 장애인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요."

[취재후기] 장애인 선수들은 스포츠가 좋아서 시작했고 스포츠가 좋아서 즐기고 있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동정의 시선을 버릴 때가 아닐까. 그들을 '인간 승리자' 또는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포장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또 하나의 차별이다. 그들은 결코 그렇게 포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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