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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분교수 피해자, 학습된 무기력의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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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분교수 피해자, 학습된 무기력의 무서움?
  • 김주희 기자
  • 승인 2015.07.16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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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김주희 기자] 다 큰 성인이 왜 그런 악행을 고스란히 받았을까?

이십대 후반의 제자에게 갖은 악행을 저지른 일명 인분교수 사건은 크게 두가지 의문을 남기고 있다. 먼저 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학생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까 하는 의문이다. 그것은 배운 자라는 교수의 자질과 인성 부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와함께 대중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또 있다. 인분교수 피해자의 순종적인 행동이다. 폭행은 물론이요, 자신을 가두고 인분까지 먹였다는데 어찌 그것을 견뎠을까 하는 점이다.

경기 성남중원경찰서는 지난 14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경기지역 모 대학교  k교수(52)를 구속했다. 경찰은 또 가혹행위에 가담한 제자 ㄴ씨(24)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고 ㄷ씨(26)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k 교수 등은 2013년 3월~올해 5월 ㄹ씨(29)를 자신이 대표로 있는 디자인 관련 학회 사무국에 취업시킨 뒤 직원이 일을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야구방망이 등으로 수십차례 폭행했다. 또 직원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40여차례 호신용 스프레이를 얼굴에 쏘아 화상을 입히는가 하면 인분을 10여차례 강제로 먹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k교수는 처음엔 범행을 부인하다가 경찰이 증거를 제시하자 “잘못했다. 선처를 바란다”며 법원에 1억여원을 공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 JTBC 방송캡처>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인분교수 사건 피해자의 이런 저항 없는 행동에 대해 교수와 제자의 갑을 관계가 빚은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를 두고 학습된 무기력(學習 無氣力, 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용어를 쓴다. 사실 인분교수 사건 피해자에게서는 그 징후가 뚜렷해 보인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험으로 인하여 실제로 자신의 능력으로 피할 수 있거나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러한 상황에서 자포자기하는 것을 뜻한다.

학습된 무기력은 셀리히만(M. Seligman)과 동료 연구자들이 동물을 대상으로 회피 학습을 통하여 공포의 조건 형성을 연구하던 중 발견한 현상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셀리히만은 24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제1 집단의 개에게는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제2 집단은 코로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고, 몸이 묶여 있어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환경을 제공받았다. 제3집단은 비교 집단으로 상자 안에 있었으나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다. 24시간 이후 이들 세 집단 모두를 다른 상자에 옮겨 놓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세 집단 모두 상자 중앙에 있는 담을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게 돼 있었지만 제1 집단과 제3 집단은 중앙의 담을 넘어 전기충격을 피했으나, 제2 집단은 전기충격이 주어지자 피하려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전기충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즉, 제2 집단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도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기력이 학습된 것이다. 셀리히만은 혐오 자극으로 회피 불가능한 전기충격을 경험한 개들은 회피 가능한 전기충격이 주어진 경우에도 회피 반응을 하지 못하는 사실을 보고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 했다.

우리는 조직 내에서 여러 시도를 해보다 좌절하게 되면 종종 “해도 안된다”며 학습 무기력에 빠져 살기도 한다. 코끼리가 밧줄에 묶여 꿈쩍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인분교수 피해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하루 24시간을 거기에서 먹고 자고, 대문 밖을 못 나갔다. 하루에 유일하게 대문 밖을 한 10분 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 쓰레기 버리러 갈 때 였다"며 "또 1년에 집에 갈 때는 명절에 한 번. 명절에 한 번도 하루다. 전화? 전화는 걔네들이 다 관리했다. 만약에 부모님한테 전화가 오면 스피커폰에다 녹음까지 시켰다.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는 "결정적으로 도망가지 못한 이유는 저한테 금액 공증 각서를 해서 1억 3000만 원을 걸었다. 그러니까 제가 어떻게 도망갈 수 있겠나" 라고 토로했다.

결국 인분교수 사건에서 피해자가 온갖 악행을 감수한 것은 내가 저항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인분교수 피해자를 이렇게 만든 것은 결국 가해자라는 점에서 씁쓸함은 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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