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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자 리뷰] 왕의 분노, 국민의 희망 '역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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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자 리뷰] 왕의 분노, 국민의 희망 '역린'
  • 이희승 기자
  • 승인 2014.04.24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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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이희승기자] ▲소개: 톱스타 현빈의 군 제대 후 복귀작이자 첫 번째 사극으로 기대를 모은 '역린'은 정조 즉위 1년인 1777년 7월28일 정유역변 실화를 모티프로 삼았다. ‘용의 목에 난 비늘’을 뜻하는 역린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 왕의 노여움을 나타낸다. 할리우드 영화들마저 개봉일을 바꿀 정도로 기대작으로 꼽혀온 이 작품은 개혁 군주의 모습이 아닌 평생을 암살 위협에 시달린 정조의 고뇌와 성찰을 다뤘다.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러닝타임 2시간15분. 30일 개봉.

▲ '역린' 포스터

▲ 스토리: 할아버지에 의해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모습을 봐야했던 비운의 왕 정조. 혈연과 혼사로 꼼꼼히 얽힌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은 끝이 없고, 고작 7세 많은 할마마마 정순왕후(한지민)의 야심과 견제는 끝이 없다.

무예에 능했던 사도세자의 피를 이어받은 정조는 대놓고 신체 단련을 할 수 없었지만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에서 비밀리에 훈련할 정도로 유년기부터 위험에 대비한 왕이었다. 유일하게 믿는 내시이자 서고 책임자 상책(정재영)과의 우정과 배신, 자신을 둘러싼 음해 세력에 맞서기 위한 두뇌게임은 영화 속 설정된 촉박한 시간(24시간)을 촘촘히 아우른다.

▲ '역린'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리뷰: ‘역린’은 주인공이 많은 영화다. 한마디로 ‘현빈만의 영화’가 아니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신인 배우들의 신선함, 기성 배우가 내뿜는 의외의 에너지가 꽉차 있다. 이 가운데 현빈과 한지민의 연기는 발군이다.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새롭게 시도한 의상과 세트는 또다른 주인공이다. 정순왕후의 화려한 목욕탕과 혜경궁 홍씨(김성령)의 비녀, 말을 장식한 안장까지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사극 감상 경험이 풍부한 관객이라면 ‘역린’의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겠으나 PD출신 이재규 감독의 드라마 연출을 통해 단련한  빠른 편집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는 이를 상쇄할 만큼 돋보인다. 정유역변이 일어나기 전까지를 긴박하게 다루면서도 플래시백(과거 회상)으로 등장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을 보여주는 방식과 수려한 영상미 역시 장점이다.

자칫 뜬금 없을 수 있는 상책과 살수(조정석)의 관계, 세답방 나인 월혜(정은채)의 반전은 ‘역린’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로 읽힌다. 고아들을 훈련시켜 암살자로 만들어온 광백(조재현)이 정조의 칼에 죽기 전에 “나 하나 벤다고 이 일(역모)이 끝날 것 같네?”라는 대사는 그래서 더 섬뜩하다.

허울뿐인 지도자를 내세워 실속을 채우려는 자와 사적인 복수를 덮은 채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 했던 정조의 선택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졌다. 정조는 인재 등용, 개혁 정책 추진, 대통합 등으로 알려진 성군이다. 성군의 다양한 면모를 접할 수 있음은 매우 흥미롭다. 다만 긴 러닝타임이 효율적이었는 지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아이러니하게 시대적 비극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지도자를 이 나라는 238년만에 다시 경험하고 있다. ‘역린’은 진정한 지도자의 길을 묻고, 이를 제시하는 시의적절한 영화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ilove@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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