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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가 맛있다' 이형택의 마르지 않은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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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가 맛있다' 이형택의 마르지 않은 열망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4.25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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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가나 확인하고 싶어 도전, 굳이 아시안게임 때문만은 아냐

[올림픽공원=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고향인 강원도 횡성에서 뛰어놀았던 한 아이가 테니스 라켓을 잡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학교 테니스부가 창단됐고 그것이 마냥 신기해서 시작했다. 부모님을 조르고 떼까지 써가면서 시작한 테니스가 이젠 그에게 하나의 삶이자 즐거움이 됐다.

바로 한국 테니스의 간판 스타인 이형택(38)의 얘기다.

수많은 스포츠 종목의 스타가 그랬듯이 이형택은 한국 테니스의 길잡이이자 선구자 역할을 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나가 시야를 해외로 넓혔듯 이형택도 그랬다.

2000년 US오픈 16강에 진출하면서 한국 테니스의 우수성을 알렸던 이형택은 2003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투어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7년 8월에는 세계랭킹이 36위에 올랐고 그 해 다시 한번 US오픈 16강까지 올랐다.

2009년 은퇴를 선언했던 그가 이제 다시 뛴다. 내일 모레면 불혹의 나이가 되는 그가 다시 코트에 선 이유는 무엇일까.

▲ 이형택(오른쪽)이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 센터코트에서 열린 2014 르꼬끄 스포르티브 서울오픈 퓨처스대회 복식 2회전에서 후배 임용규와 호흡을 맞춰 경기를 치르고 있다.

◆ 개인적으로 도전할 것이 남았다, 도전엔 이유가 없다

·이형택테니스아카데미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가 다시 코트를 밟은 것은 지난해였다. 지난해 11월 영월챌린저 복식경기에 나섰던 것. 당시만 해도 이벤트성으로 할지, 선수생활을 계속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상태였다. 자신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와 병행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신이 처음 테니스를 할 때를 떠올렸다. 테니스를 처음 보고 신기해했던, 열망과 열정이 가득한 어린 학생 때의 일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왜 고생하는 운동을 하느냐고 반대했지만 "테니스 못하게 하면 학교 가지 않겠다"고 떼까지 써가며 관철시켰던 그였다. 그렇게 복귀로 마음을 잡았다.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2014 르꼬끄 스포르티브 서울오픈 퓨처스대회에 출전한 그를 만났다. 그는 임용규와 짝을 이뤄 출전한 복식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24일 벌어진 복식 2회전에서 조민혁-조숭제 조를 2-0으로 꺾고 준결승에 올랐다.

모든 것을 이룬 것만 같았던 그가 왜 복귀를 했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한국 테니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선구자로 후회없이 은퇴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인천 아시안게임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 이형택(오른쪽)이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 센터코트에서 열린 2014 르꼬끄 스포르티브 서울오픈 퓨처스대회 복식 2회전에서 넘어오는 공을 받아치고 있다.

"아시안게임 때문에 복귀한 것은 아니다. 테니스를 함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내가 어디까지 가나 시험해보고도 싶었다. 마침 아시안게임이 있는 것뿐이다. 복식에서라도 뛸 수 있으면 뛰는 것이다."

어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복귀한 것이 아니라 도전할 것이 남았다는 얘기였다. 어디까지 가는지 시험해보고 싶다는데 왜 도전하느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도전할 것이 남았다는데. 도전엔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 아직 단식 뛸 때는 아냐, 몸 만들고 경기 감각 찾는게 우선

이번 대회에서 이형택이 단식에도 출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계속 복식만 출전했고 인도와 데이비스컵 예선에서도 단식이 아닌 복식 선수로 출전했다. 이형택도 단식과 복식 가리지 않고 웬만하면 국내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에 나서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복식을 통해 실전 감각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먼저 감을 찾고 몸도 만들어놓아야만 단식을 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나와 함께 뛰는 임용규는 단식도 하고 복식도 하기 때문에 경기 감각이 좋지만 아직 내가 경기를 많이 하지 못해서 실전 감각이 떨어진다. 경기를 하면서 감을 잡는데 시간이 걸린다. 단식은 복식에 비해 체력 소모가 많고 전체적으로 뛰는 시간도 길다. 아직 단식을 뛸 정도의 컨디션은 안된다. 지금은 복식으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면서 리턴 연습도 병행하고 있다. 체력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에 단식을 뛸 날도 올 것이다. 언제 단식을 뛸 수 있을지는 정하진 않았지만 정상적으로 몸이 올라올 때까지는 복식에만 집중할 것이다."

▲ 이형택이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 센터코트에서 열린 2014 르꼬끄 스포르티브 서울오픈 퓨처스대회 복식 2회전에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라 후배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이 다소 힘겨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형택은 이날 복식 경기에서 1세트에 약간 고전했을 뿐 2세트에서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첫 세트는 경기 감각이 떨어져서 좀 고생했지만 2세트에는 감각이 올라와서 좋은 경기를 했다. 체력적인 부분이나 공의 파워 같은 것은 분명 전성기 때보다 많이 떨어진다.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기할 때는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또 이날 마침 적지 않은 나이에 코트에 복귀한 기미코 타테-클룸(44·일본)이 경기 도중 기권했다. 정강이 부위 부상 때문이었다. 이미 지난주 말레이시아 오픈에서 부상을 안고 왔던 그는 출전을 감행해 1회전을 통과했지만 끝내 2회전 1세트 6-6 타이브레이크 상황에서 기권하고 말았다. 적지 않은 나이인 이형택도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중국에서도 경기할 때 다쳐봤다. 그래서 컨디션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젊었을 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쓴다. 체력훈련도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하고 있다. 다테-클룸도 경기를 뛰면서 부상을 입었는데 나도 경기하면서 부상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부상을 예방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칭과 체력 훈련에 치중을 두는 것이 이 때문이다."

▲ 이형택(오른쪽)이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 센터코트에서 열린 2014 르꼬끄 스포르티브 서울오픈 퓨처스대회 복식 2회전에서 승리한 뒤 함께 짝을 맞춘 임용규와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 욕심은 버렸다, 그저 즐기고 싶다

지금 이형택은 데이비스컵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임용규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임용규와만 호흡을 맞출 생각은 없다.

"여러 선수가 있다. 임용규와만 계속 하는 것은 아니다. 노상우와도 호흡을 맞춰볼 수도 있다. 여러 다른 선수와 계속 해보면서 제일 호흡이 맞는 선수와 짝을 이룰 것이다. 짝을 결정하는 것은 서두르지 않겠다."

참가에 의미가 있다지만 그래도 스포츠는 이기기 위해 한다. 프로 선수에게 승리는 곧 자신의 업적이자 기록이고 이는 돈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그런 욕심은 없다.

승부욕 때문에 놓쳤던 '즐거움'을 찾겠다는 것이다.

"예전엔 대회에 출전하면 우승하고 싶은 욕심만 가득했다. 이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모든 경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즐기고 싶다. 결과에 일희일비하거나 좌지우지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고 싶다."

그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그가 추구했던 것은 자기자신이 아니라 성적과 기록이었다. 이제 그는 오직 자기자신만을 위해서 뛴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고 이를 찾기 위해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그가 쌓아왔던 업적을 뒤로 하고 퓨처스라는 첫 단계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유다.

결과는 더이상 그에게 가장 중요한 1차 목표가 아니다. 도전 정신과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 그것뿐이다.

▲ 이형택이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 센터코트에서 열린 2014 르꼬끄 스포르티브 서울오픈 퓨처스대회 복식 2회전에서 서브를 넣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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