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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39) '행복 버디'로 KLPGA 지키는 조윤지, 소리없이 강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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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39) '행복 버디'로 KLPGA 지키는 조윤지, 소리없이 강한 이유는?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7.31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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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데뷔승 이후 5년만에 2승 '햇살'…"끝까지 남아야 진정한 강자"

[200자 Tip!] 세계 여자골프도 '한류'다. 이미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세계 여자프로골프랭킹 1위에 올라 있고 수많은 코리안 시스터즈가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무대를 오가며 맹활약하고 있다. 세계 여자프로골프랭킹에 10위권에 무려 5명이나 있을 정도로 한국 여자선수들의 수준은 세계 정상권이다.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을 드높이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 한국무대를 꾸준히 지키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선수도 있다. 지난 19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조윤지(24·하이원리조트)가 좋은 예다.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조윤지가 누구지? 골프를 잘 모르는 팬이라면 생소할 수 있다. 박인비나 박세리(38·하나금융그룹), 김효주(20·롯데) 등의 이름은 알아도 조윤지까지 기억하긴 어렵다. 그러나 골프에 조금만 관심있다면 "2010년 KLPGA 신인왕 출신"이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 골프 팬이 아니면 조윤지라는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야구인 아버지와 배구스타 출신 어머니를 둔 스포츠 가문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은 조윤지는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 여자골프의 강자로 태어났다. [사진=캘러웨이 코리아 제공]

조윤지는 또 스포츠 가문으로 유명하다. 프로야구 삼성의 감독대행을 지냈던 조창수(66)씨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리스트이자 GS칼텍스 감독을 지냈던 조혜정(62)씨 부부의 2녀 중 막내다. 또 언니 조윤희(33) 역시 KLPGA 이사를 맡고 있는 프로골퍼다.

지난 26일 2연승을 노렸던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전인지(21·하이트진로)에 이어 공동 준우승을 차지한 조윤지는 KLPGA 투어 대회가 없는 틈을 이용해 모처럼 휴식기를 맞았다. 하반기 첫 대회인 삼다수여자오픈까지 출전하지 않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3주 휴식기를 맞았다. 일본으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 전, 지난 27일 조윤지를 만났다.

◆ 가족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안왔죠

먼저 가족들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9살 터울 언니 조윤희가 골프선수로 활약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꿈을 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언니 때문에 골프가 늦었다.

"처음에는 언니가 골프 때문에 힘들어하고 코치 선생님에게 야단맞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안하겠다고 했어요. 어렸을 때는 클럽을 휘두르는 것이 재미있어서 따라하는 정도였지만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중학교(원주 육민관중) 1학년 때였죠. 2004년부터 시작했으니까 또래에 비해 한참 늦었죠. 그런데 처음 골프 에 입문하면서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금방 결정하지 못했어요. 취미로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죠."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왜 언니를 비롯해 조윤지까지 클럽을 잡았을까. 골프에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 조창수 전 감독이 추천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 어머니 조혜정 전 감독의 영향이 더 컸다.

▲ 조윤지는 9살 터울 언니 조윤희가 힘들게 골프 선수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꺼려했다. 뒤늦게 중학교 1학년 때 입문,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수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진=캘러웨이 코리아 제공]

조혜정 전 감독은 "아이들이 선수로 살아간다고 하면 이왕 할 것이면 선수 생활을 길게 할 수 있는 종목이 나을 것이라고 봤다. 배구는 조금만 나이가 들면 은퇴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종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날으는 작은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혜정 전 감독의 뒤를 이어 배구를 할 경우 어머니의 그늘에 묻힐 것이라는 것도 고려됐다.

시작은 상당히 늦었지만 스포츠인을 부모로 둔 스포츠 가족답게 재능은 남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쇼트트랙과 테니스, 수영 등 다양한 종목을 경험하다가 원주 육민관중 1학년에 재학 중에 골프를 시작한 조윤지는 금방 기량이 성장했다.

조윤지는 2009년 KLPGA 2부 투어 7차전에서 생애 첫 승을 거뒀고 상금왕까지 오르면서 KLPGA투어 풀시드권을 따냈다. 그리고 2010년 KLPGA 투어 신인왕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조윤지가 이처럼 기량이 부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조창수 전 감독의 힘도 컸다. 조 전 감독은 1997년 삼성 감독대행을 역임한 뒤 야구현장을 떠났다. 언니 조윤희와 조윤지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골프 대디'를 자처한 것이다.

그렇다고 가족들이 대회 성적에 대해 스트레스나 중압감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너무 성적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조창수-조혜정 부부의 지론이었다.

"아빠는 저를 위해 희생하셨고 엄마도 제게 스포츠 선수로서 오랫동안 살아가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늘 조언해주셨어요. 언니는 함께 투어생활을 했던 선수니까 더 말할 나위없고요. 가족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 아버지 조창수 전 삼성 감독대행(왼쪽)과 어머니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오른쪽에서 두번째), 언니 조윤희(오른쪽)는 모두 조윤지의 든든한 우군이다. 사진은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 뒤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가족들. [사진=KLPGA 제공]

◆ 꾸준하게 오래 남으라는 조언, 우승 없이도 충분히 강하다

박인비처럼 오랫동안 정상에 머무는 선수가 있는 반면 가요계의 '원히트 원더'처럼 강한 임팩트를 줬다가 소리소문없이 잊혀진 골퍼도 적지 않다. 조윤지는 원히트 원더가 되기보다 꾸준한 선수가 되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사실 '굵고 길게' 가는 선수가 되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나 될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적어도 '굵고 짧게' 가는 선수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가늘고 길게'라는 표현이 어폐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꾸준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고 지금도 꿈이에요."

그래서인지 조윤지는 소리없이 강하다. 신인왕을 차지했던 2010년에 상금랭킹 8위에 올랐던 조윤지는 2011년과 2012년에는 잠시 슬럼프가 있었지만 2013년과 지난해 각각 1억3779만 원(27위)과 2억2166만 원(16위)으로 선전했다.

올 시즌에도 조윤지는 15개 대회를 참가해 단 한 대회를 제외하고는 상금을 모두 수령했다.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 등으로 벌어들인 상금이 5억1752만 원으로 전인지에 이어 두 번째다. 단 1승을 거두고도 상금 2위, 대상포인트 부문 3위에 올라있는 것만 보더라도 올 시즌 얼마나 꾸준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 조윤지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대회에 나가지 않고서도 세계 여자골프랭킹 69위에 올라있다. 국내 대회만 뛰면서도 세계 100위권에 당당히 들어있는 것은 KLPGA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꾸준하게 성적을 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엄마는 늘 '네가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되는 것도 좋지만 행복한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세요. 물론 선수 생활을 하면서 성적 스트레스를 한 번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정말 골프를 즐기면서 하고 싶어요. 그래야 오랫동안 성적을 낼 수 있을 테니까요."

▲ 조윤지는 2010년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둔 뒤 5년 가까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사진=캘러웨이 코리아 제공]

◆ 욕심보다는 간절함으로, 꼭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요

조윤지는 2010년 8월 볼빅-라일앤스코트 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하면서 KLPGA 데뷔승을 거뒀지만 그 이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제패가 무려 4년 11개월 만의 우승이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우승 트로피가 아니었을까.

"제가 많이 나태했던 것도 분명 있었을 거예요. 나태했기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은 받아들여야죠. 하지만 슬럼프 기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어요. 분명 약이 됐고 저를 키우는 시간이 됐죠. 체력훈련을 통해 지구력을 키우고 샷도 교정했어요. 예전에 샷을 할 때는 전체적인 스윙의 모양에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클럽 헤드가 지나가는 길을 제대로 따라가는 쪽으로 바꿨죠."

그러나 조윤지는 우승만을 목적으로 노력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우승보다 골프릍 통해 즐거운 삶,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선수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우승을 하지 않아도 행복한 선수라는 것을 항상 느끼니까요. 물론 올 시즌에는 간절함은 있었죠. 우승을 못한지 5년째가 됐으니 우승은 한 번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간절함. 그래도 욕심은 없었어요.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때도 우승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는데 운이 좋았던 것이죠.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때도 제가 준우승한 줄도 몰랐어요."

조윤지는 신인왕에 오른 이후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해외 진출 계획은 없다. KLPGA도 경쟁력이 있는 투어이기 때문에 구태여 해외 진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KLPGA에서 잘 해서 해외 투어에서 초청이 온다면 나가서 경험하는 것도 좋죠. 그러나 KLPGA에서만 뛰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해외 진출에 대한 목표나 욕심은 없어요. 대신 KLPGA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드는 것으로 제 목표를 대신하고 싶어요."

옆에서 함께 딸의 얘기를 듣고 있던 조혜정 전 감독도 "KLPGA에서 계속 활약하다가 50세가 되면 곧바로 시니어 투어로 갈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끊기지 않고"라고 말했다. 49세까지 KLGPA에서 계속 활약하다가 시니어 무대로 갔으면 하는 것이 조혜정 전 감독의 바람이다. 조윤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의 나이가 24세. 앞으로 25년은 조윤지의 호쾌한 장타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윤지의 행복한 미소도 함께.

▲ 조윤지의 목표는 세계 제패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오랫동안 프로 무대에서 뛰는 것이다. 오랫동안, 끌까지 살아남을 수 있어야 진정한 강자라는 것이 조윤지의 철학이다. [사진=캘러웨이 코리아 제공]

조윤지 프로필

△ 출생 = 1991년 6월 7일
△ 소속팀 = 하이원리조트
△ 가족 = 아버지 조창수 전 감독, 어머니 조혜정 전 감독, 언니 조윤희 KLPGA 이사
△ 학력 = 원주 육민관중-육민관고-건국대
△ 골프 입문 = 2004년 원주 육민관중학교 1학년
△ 수상 경력
- 2008년 건국대 총장배 주니어골프대회 우승
- 2009년 KLPGA 그랜드 드림투어 7차전, 13차전 우승 / 드림투어 상금왕
- 2010년 KLPGA 볼빅-라일앤스코트 여자오픈 우승 / KLGPA 신인상
- 2014년 KLPGA 넵스 마스터스 준우승
- 2015년 KLPGA E1 채리티오픈 3위 /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 3위 
  /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 /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준우승

[취재후기] 조윤지는 늘 부모님에게 감사한다고 한다. 조창수 전 감독은 자신의 뒷바라지를 위해 야구 현장을 떠나 항상 자신과 동행하고 어머니 조혜정 전 감독은 스포츠 대선배로서 선수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와 정신에 대해 늘 알려준다. 또 골프에 대한 기술, 정신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 언니 조윤희 KLPGA 이사도 있다. 조윤지가 진정한 그린의 강자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하나로 뭉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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