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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의 금빛 찌르기' 겨냥하는 차세대 펜서 정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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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의 금빛 찌르기' 겨냥하는 차세대 펜서 정병찬
  • 강두원 기자
  • 승인 2014.04.29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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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상은 있지만 그들의 동영상은 보지 않는 당찬 패기와 자기 스타일로 시니어 무대 도약 노린다

[300자 Tip!]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은 남녀 통틀어 금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따내며 한국이 종합 순위 5위에 오르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플뢰레의 남현희가 개인전 은메달 하나를 따낸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성장이다. 현재 남자 사브르는 건재한 베테랑들의 활약 속에 월드컵 대회에서 항상 상위권에 오르고 있으며 남자 플뢰레 역시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에페 종목에선 기대주의 급성장이 주목받고 있다. 2014 세계청소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에페에서 은메달을 따낸 정병찬(20·한체대)이다. 약관의 나이로 주니어 무대를 넘어 시니어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하고 노력하는 패기 넘치고 당찬 차세대 펜서다.

[스포츠Q 글 강두원 · 사진 이상민 기자] 한국체육 유망주들의 산실. 한국체육대학교에는 한국 아마추어 종목의 최고를 노리는 3900여 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학업과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 펜싱 남자 에페의 기대주 정병찬 또한 그 중 한 명이다. 서울체중-서울체고를 거친 그는 지난해 한국체대에 진학해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신예다.

서울체중 1학년 때부터 펜싱을 시작하는 그는 ‘왜 펜싱을 시작했느냐’라고 묻자 “펜싱이 가장 쉽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라고 겸연쩍은 듯 말했다.

▲ 한국 펜싱 남자 에페 종목의 미래인 정병찬은 빛나는 눈빛만큼이나 패기 넘기고 당찬 신예 펜서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을 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펜싱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울체중에서 가장 쉽다고 소문난 종목이 펜싱이었어요. 그래서 시작했죠. 그런데 전혀 아니예요. 모든 운동이 다 힘들겠지만 펜싱도 만만치 않게 힘들어요.”

정병찬은 현재 국내 대학부 랭킹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다. 아직 시니어 무대에 나선 적은 없지만 세계주니어 랭킹이 14위일 만큼 주니어 무대에서는 세계적인 실력을 보여주고 있고 지난 8일 불가리아 플로브디브에서 벌어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에페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거는 등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결승 상대였던 일본의 야마다 마사루가 57번 시드였음을 고려한다면 23번 시드였던 정병찬의 패배(2-15)가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지난해 부상으로 인해 세계청소년대회에 불참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정병찬은 세계대회에서 만나 본 해외 유명 선수들에 대해 “외국 선수들은 팔 동작이 워낙 빠르다. 에페의 경우 전신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먼저 치고 들어가면 벌써 팔 부분을 찔려 득점을 빼앗기곤 한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가 세계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비결은 빠른 발놀림 덕분이다. 그는 “내 펜싱 스타일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활발함이다. 빠른 푸트워크를 통해 많이 움직이며 상대에 페이크를 많이 주는 편이다”라며 자신의 강점을 짚어냈다.

◆ “저는 동영상을 보지 않아요.”

'왜 에페 종목을 택했느냐'라고 묻자 “다른 종목보다 간단하다”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처럼 에페는 찌르기만 가능하며 공격권이 없고 찌르는 시간의 느림과 빠름에 따라 점수가 갈려 상대방보다 먼저 찌르기만 하면 된다.

그는 “펜싱을 처음 시작한 서울체중에는 에페 종목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걸 택했고 나중에 다른 종목들을 보니 공격권도 있고 복잡한 부분이 많아서 계속 에페를 고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국 남자 에페에서 존재감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정병찬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에페 개인전 동메달리스트인 정진선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에페 2관왕인 김원진, 그리고 러시아의 ‘펜싱 전설’ 파벨 콜롭코프를 우상으로 삼고 있다.

▲ 정병찬은 전신찌르기가 가능한 에페 선수다. 그는 손과 팔동작이 좋은 유럽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빠른 발을 이용한 많은 움직임으로 상대를 속이는 전략을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정진선, 김원진 선배는 항상 자신감이 넘쳐요. 유럽의 건장한 선수들과 경기를 치를 때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에서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올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리고 콜롭코프는 에페 종목의 전설적인 인물인데 굳이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정병찬은 이들의 동영상이나 경기 모습을 전혀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동영상은 절대 보지 않는다. 보면 제 실력이 너무 모자란 것 같아서 웬만하면 안 본다. 그런 동영상 보면 ‘내가 저 선수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제가 가진 스타일이나 전략을 가다듬고 보완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당찬 신예’ 정병찬, ‘이제는 시니어 무대 평정이다’

국내와 세계무대에서 손꼽히는 유망주인 정병찬은 지난해 부상으로 인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지 못해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오는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 살 어린 후배인 박상영이 태릉에서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쉬울 법도 하겠지만 정병찬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 국가대표가 아니라서 아쉬운 점은 없어요. 만약 지난 시즌 부상 없이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렀다면 주니어 무대에서 실력을 가늠해보지 않고 시니어 무대로 왔을텐데 그랬다면 지금의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주니어 레벨이지만 세계대회에 참가하고 시니어로 나아가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체고 시절 고등부 랭킹 1위를 놓치지 않았고 현재 대학부에서도 한체대 선후배인 마세건, 박상영과 함께 랭킹 1,2위를 다툴 정도의 실력인 만큼 국내 혹은 국제대회에서 많은 경험을 쌓는다면 시니어 무대에서도 충분히 세계적인 선수들과 기량을 겨룰 수 있는 선수로 발전할 수 있는 정병찬이다.

▲ '펜싱이 좋으냐,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으냐'라는 질문에 "당연히 펜싱이죠"라고 답하는 정병찬은 앞으로 한국 펜싱을 이끌어나갈 미래다.

그는 펜싱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어린 나이에 힘든 훈련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괴로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그때 열심히 했기 때문에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세계유소년펜싱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내고 이번 세계청소년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은메달)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정병찬은 주니어 무대를 넘어 시니어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첫 발을 떼려고 한다. 시니어 무대에는 절대 강자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제가 가진 장점을 꾸준히 훈련하고 살려서 노력한다면 2년 후 리우 올림픽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메달권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단체전에 출전할 수 있다면 단체전 메달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열심히 훈련하면서 잘 준비해야 될 것 같아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 에페에서 첫 금메달을 겨냥하는 정병찬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펜싱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은지'였다.

“당연히 펜싱이죠. 저한테는 올림픽이라는 꿈이 있으니까요”

[취재후기] 정병찬의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시작할 때 쯤 플뢰레의 ‘괴짜검객’ 최병철(33 화성시청)이 한체대 펜싱장에 나타났다. 그에게 정병찬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자 “잘해요, 부러워요”를 웃어보인 그는 이윽고 “이제 한국 펜싱을 이끌어나갈 미래죠 미래”라며 후배를 치켜세웠다. ‘미래’라는 2음절이 앞으로 정병찬을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kdw0926@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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