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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넘어 연극 좇아온 열정의 화수분, 연출가 양정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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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넘어 연극 좇아온 열정의 화수분, 연출가 양정웅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8.2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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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스타 연출가 양정웅(47)이 뜻 깊은 9월을 맞는다.

오는 9월4~24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와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한·중·일 공연예술축제 ‘베세토 페스티벌’ 한국 베세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동시대 아시아를 담는 데 열정을 쏟아내는데 이어 24일부터 27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드라마센터에서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을 4회 공연한다. 양정웅 연출이 이끄는 극단 여행자가 자리한 성북동 호기다방에서 그를 만났다.

◆ 젊어진 예술가, 실험적 작품성향 ‘베세토 페스티벌’ 진두지휘

한국, 중국, 일본 연극인들이 상호교류를 통해 공연예술의 창작정신을 높이고, 동양연극의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하자는 취지로 1994년 창설한 베세토 연극제는 3국을 순회하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베세토 연극제는 세대교체를 통한 재도약을 모색, 한국 베세토 위원회는 양정웅 연출가를 중심으로 김재엽, 윤한솔, 성기웅 등 현장에서 활동하는 연극인들로 바뀌었다. 일본도 지난해 연출가 나카시마 마코토, 현대무용 안무가 가나모리 조 등이 위원회에 참가했다.

이에 따라 ‘현재 동시대 아시아를 담는 주제’ ‘젊은 아티스트 소개’ ‘다방면의 아티스트 교류와 네트워크 형성’을 기치로 올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베세토 페스티벌'로 탈바꿈을 시도하게 됐다. 한국의 극단 양손 프로젝트는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를 무대화해 ‘한·중·일 단편선- 한 개의 사람’에 참여하며 무브먼트 당당은 서로 다른 시공간으로 이뤄진 무대에서 불행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불행’을 선보인다.

“전에는 선배 세대들이 대거 참여해 ‘전통의 현대화’를 화두로 삼았다면 30~40대 젊은 한중일 아티스트들로 연령대가 낮춰진 올해에는 동시대성에 천착하고 있다. 아시아의 정치현실, 경제적 상황, 아시아 나라들의 교류와 미래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극장보다는 대안적 공간이나 공연 형식으로 활동하는 연출가들이라 관객들이 재미를 느낄 만한 작품들이 대거 소개될 전망이다.”

무브먼트 당당은 무용을 기초로 한 연극을 만드는 ‘핫’한 단체다. 다원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특징이다. 워크숍 프로그램인 ‘베세토 아시아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경성(한국)은 새로운 연극을 시도하는 주목 받는 신진 연출가이며 자오추안(중국)은 중국의 첨예한 정치사회 현실을 즐겨 다룬다. 노리유키 기구치(일본)는 대안 연극을 추구하는 연출가다. 이들이 머리를 맞댐으로써 글로벌한 동시대성을 이야기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중일 예술가들이 만나 장르의 확장을 시도하고, 공동제작 가능성을 모색하는 장이 될 거다. 인터넷과 한류열풍에서 드러나듯 아시아는 더 이상 경계를 짓는 게 무의미해졌다. 경계와 벽을 허무는 문화적 교류를 한중일이 주도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장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게 목표다.”

◆ ‘한여름 밤의 꿈’ 이후 지역문화의 글로벌화·세계연극 추진

베세토 페스티벌의 지향은 양정웅 연출이 이제까지 작업해온 작품들의 연장선 위에 있다. 2002년 초연한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 희극에 한국의 색을 입힘으로써 2006년 런던 바비칸극장 공연 등 전 세계 유수의 극장과 페스티벌에 잇따라 초청받았다. 유럽 관객들은 한국적 무대·전통음악·춤·의상을 비롯해 한국 전설·신화가 텍스트에 녹아든 이제껏 맛보지 못한 강렬하고 독창적인 셰익스피어 희극에 열광했다.

이후 셰익스피어와 전통 연희인 마당놀이의 만남을 시도한 ‘십이야’(2008), 복수·음모·배신의 드라마를 한국적 샤머니즘인 굿으로 풀어낸 ‘햄릿’(2009),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입센의 ‘페르귄트’(2012) 등을 해외 무대에 잇따라 소개하면서 전통과 현대의 만남, 동서양의 조화로운 소통, 세계 연극 작업에 매진해 왔다.

“20세기가 문화 상호주의였다면 21세기는 국가·문화의 경계가 없어지는 ‘원 베이스(One Base)’ 사회다. 필연적이면서 바람직한 미래상이기도 하다. 연극이 과거지향적인 순수예술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예술장르로 자리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념과 철학적으로도 경계를 넘어섰으면 한다.”

세계 공연계에서 주목받은 작품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그려온 그의 활약상은 ‘경계 따윈 필요 없어’다. 뮤지컬 ‘카르멘’,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뮤지컬 심청’, 국립오페라단의 ‘천생연분’과 창작오페라 ‘처용’ 등 연극·뮤지컬·오페라·무용 전방위에 걸쳐 있다.

 

지난해 대학로 소극장을 파고든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연극 ‘내 아내의 모든 것’, 올해 초 대중적인 스테디셀러 연극 ‘해롤드 앤 모드’를 연출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선 “양정웅 연출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다” “굳이 양정웅이 아니어도 될 작품 아닌가”란 물음표를 던졌다. 5월엔 다시금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를 현대적이면서도 친근하게 뚝딱 해석해 무대에 올렸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영화로 먼저 만들어졌을 때 너무 잘 봤었다. 원작이 아르헨티나 작품이다. 내 스타일대로, 음악극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해롤드 앤 모드’는 원래 좋아했던 작품이었고 언젠가 해봤으면 했던 연극이다. 초연부터 주연을 맡은 박정자 선생님을 좋아한 이유도 있다. 내가 원래 스펙트럼이 넓다. 현대무용, 한국무용까지 다 했으니.(웃음) 스케줄 탓에 제안을 많이 받았음에도 창극만 하질 못했다. 사람들은 내 작품 스타일 때문에 몇 편의 창극을 연출했을 거라고 생각들 하더라.”

◆ 스페인에서 극단생활하며 품은 꿈... 내달 20년 만에 금의환향하며 이뤄

양정웅 연출이 이른 나이부터 ‘통섭’을 추구해온 데는 히스토리가 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후 배우로서 산, 카페, 강가에서 무용과 연극이 결합된 공연, 퍼포먼스를 하던 1994년 무렵, 스페인을 근거지로 둔 다국적 극단이 내한해 창무회에서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때 참석한 스물여섯의 청년 양정웅은 이 극단을 따라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건너가 1년간 극단 생활을 했다. 이후 96년까지 유럽, 인도, 일본을 떠돌아 다니며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숱한 공연을 보면서 자신이 건설할 예술세계의 밑그림을 그렸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한 달씩 머무는 등 여행 겸 공연 페스티벌 순례를 하면서 지금의 작품세계 토대를 마련했다. 청년 시절 스페인에 머물던 당시, 바르셀로나 그렉 페스티벌에 가서 전세계 유명 연극들을 보며 연극인의 꿈을 키웠는데 20여 년 만에 마드리드 국립드라마센터에 내 작품을 가지고 오르게 돼서 감회가 새롭다.”

‘한여름 밤의 꿈’ 스페인 공연 뒤로도 일정이 숨 가쁘다. 11월에는 안동문화회관에서 극단 여행자와 한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한 ‘안동별곡’을 올린다. 지역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으로 극단 여행자의 이대웅이 연출을 맡는다.

◆ 12월 초연 연극 ‘인코그니토’ 연출...서울예대 연극과 교수 활동 병행

12월에는 국내 초연 연극 ‘인코그니토’(4~20일·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를 연출한다. 영국의 젊은 작가 닉 페인이 집필한 이 희곡은 인간의 뇌와 가족간 카르마를 정교하게 엮어낸 작품이다. 짧은 신들이 얽히고설키며 개인의 고독, 가족의 관계를 내밀하게 성찰한 국내 초연작이자 2017년 브로드웨이 상연 예정인 화제작이다.

지난해부터는 모교인 서울예대 연극과 교수로도 강단에 서고 있다.

“창의적이고 열정 많은 학생들과 내 경험을 나누는 게 즐겁다. 학생들에게는 ‘정답은 없으니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실험을 하라’고 강조한다. 과학과 예술, 타 장르간 경계를 허물고 융합하는 시대적 흐름을 읽도록 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들의 자유로운 창의성을 건드리는 게 무엇보다 보람 있다.”

양정웅 대표는 공연 제작, 극단 운영, 베세토 페스티벌 주관, 강의 활동 등 아바타가 필요할 법한 상황을 지침 없이 ‘연출’한다. 그는 “쉬는 걸 못 견디는 성향도 있지만 주변에 훌륭한 프로듀서·스태프가 많기 때문”이라며 “연극은 함께하는 작업이라 역할을 나누다 보니 왕성한 활동이 가능하다”고 연극 그리고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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