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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크린 퀸 탄생 '인간중독' 임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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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크린 퀸 탄생 '인간중독' 임지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5.14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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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 지난해 여름.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던 날, 톱스타 엄정화, 김윤석, 엄태웅, 주원 등이 소속된 연기자 매니지먼트사 심엔터테인먼트로 배우 지망생 한 명이 찾아왔다. 언덕에 위치한 사무실을 헉헉대며 올라온 그녀는 대표를 만나 자신을 받아들여줄 것을 당당히 요청했다. 두둑한 배짱과 적극성에 매료된 대표는 ‘초짜’를 소속사 식구로 받아들였다.

# 지난해 여름의 끝자락. 김대우 감독은 신작 ‘인간중독’ 여주인공 캐스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숱한 유명 여배우들을 만나고, 신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와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인 연기자 한 명과 미팅을 하게 됐다. 청바지 차림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콧대를 세우는 것도, 애면글면 애원하는 투도 아니었다. “어라? 요놈 봐라~!”

 

대담무쌍한 ‘그녀’는 스타탄생의 길목에 선 임지연(24)이다. 파격 멜로를 표방한 ‘인간중독’(15일 개봉)에서 한 남자와 지독한 사랑에 빠져드는 종가흔 역으로 올해 한국영화계에 출사표를 톡 떨궜다.

◆ 1960년대 배경 ‘인간중독’서 불륜에 빠지는 유부녀 열연

베트남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69년 여름, 최고급 군 관사를 배경으로 참전의 트라우마를 지닌 김진평 대령(송승헌)은 부하인 아내 종가흔을 처음 본 순간 떨림을 느낀다. 그리고 급속도로 불륜에 빠져든다.

“겪어보지 않은 시대라 일단 역사적 배경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전쟁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봤고 가흔의 일기장을 만들어 과거사와 심리를 매일매일 써내려가기 시작했죠. 사랑의 감정이 중요한 영화라 멜로영화 ‘색계’ ‘화양연화’ 등을 챙겨봤어요. 저도 가슴 아픈 사랑을 하면서 제 안의 다른 모습을 봤던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되기도 했고요.”

인연인지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긍정적인 자신의 성격이 종가흔과 비슷했다. 감정선을 구축하는 단초를 확실히 부여잡았다. 생소한 시대적 배경과 60년대 여성의 말투와 의상, 행동에 대한 디테일은 그 시절을 경험했던 부모님의 조언과 감독의 세세한 디렉션으로 보충했다. 현대적이어선 안 되고, 화교이기에 특유의 어투를 살려야 하는 등 대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사전달은 그만큼 공들인 부분이기도 하다.

▲ '인간중독'의 임지연과 송승헌

한국전쟁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된 종가흔은 양어머니의 집에서 성장하다가 그 집의 아들에게 끔찍한 경험을 당한 뒤 결혼까지 하게 됐다. 이제껏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새장 안의 새처럼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던 스물일곱의 물오른 여인이다.

“가흔은 단 한번도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받아본 적도 없고 하고 싶어하지도 않죠. 사랑에 익숙치 않은 여자인 거죠. 진평을 처음 만났을 때도 덤덤했을 거 같아요. 어느 상황에서도 침착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석했어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마다 ‘이제 그만 만날래요’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았어요’와 같은 대사가 나오잖아요. 그럴 거면 다가가지를 말든가, 하면서도 불쌍한 인물이라 여겼어요.”

◆ 사랑을 모른 채 갇혀지내는 화교출신 여자 ‘종가흔’ 해석에 고심

가장 힘겨웠던 장면은 종가흔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새장의 문을 열지 못한 채 결국 다시 새장 안으로 들어온 그가 진평의 사진을 보는 순간,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 탓에 오열하는 신을 촬영할 당시 하루종일 울었다. 실제 자신이었다면 사랑을 선택했을 거라는 감정이 교차하며 연기하기가 버거웠다.

“마지막 촬영이라 온갖 감정이 밀려들더라고요. 가흔은 진평을 너무 사랑해서, 그를 따라가면 진평이 불행해질까봐 걱정하는, 연인에 대한 배려가 컸을 거라고 생각해요. 반면 진평과 왈츠를 추는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주변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 두 사람의 행복이 진하게 묻어나는 순간이라서요.”

 

김대우 감독과 배우 송승헌은 특별한 존재다. 신인 여배우로서 만만치 않은 도전일 노출과 베드신이 있는 영화에 출연키로 한 결정적 이유도 두 사람 때문이다.

“예전부터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하고 즐겨봤어요. ‘스캔들’ ‘방자전’ ‘음란서생’ 등 에로틱하면서 해학적이잖아요. 인간의 본성을 잘 끄집어내는 점이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영상이 아름답거든요. 감독님이 집필하신 시나리오의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고, 아름답게 잘 만들어내실 거라 확신한 거죠.(웃음)”

김 감독은 종가흔 연기를 앞둔 임지연에게 “느낌적인 느낌으로 다가가고 이해하자”고 주문했다. 처음엔 불가해한 조언이었다. 이어 “누군가를 쳐다볼 때 눈동자 안쪽 깊숙한 곳을 쳐다봐라”는 말을 듣고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흔의 알듯말듯한 비밀스러운 면, 숨겨진 관능미와 눈빛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송승헌 선배님은 제 어머니가 팬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본 드라마가 선배님의 ‘가을동화’ ‘여름향기’ 였고 최근의 ‘남자가 사랑할 때’까지 모두 시청해서 출연 소식을 듣고 설레고 기뻤죠. 무뚝뚝하고 내성적이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자상하세요. 집중할 때의 모습은 굉장히 멋있고요. 선배님과의 첫 촬영분이 뜬금없이 사랑 고백을 받는 피크닉 신이었거든요. 진짜 고백받는 듯 심장이 콩당콩당했어요. 후후.”

◆ 송승헌과 파격 베드신 “왈츠 추듯 호흡 나누며 촬영”

김대우 감독의 필수 장치이자, 인터뷰에서 피해갈 수 없는 ‘베드신’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에서 노출 수위와 베드신 강도는 꽤 세다. 지겹도록 많이 받았을 껄끄러운 질문이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조곤조곤 말했다.

 
 

“경험이 없다보니 어려웠죠. ‘신인 여배우가 노출했다’가 화제가 되기보다는 절절한 사랑의 표현방식으로 바라봐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죠. 그 순간의 애절하고 진평을 사랑하는 감정표현에 주력했어요. 왈츠를 추듯 선배님과 호흡을 맞추며 촬영을 진행했고요. 정말 춤을 추듯요.”

현실의 임지연은 중독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까. 그 정도의 깊이로 중독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뭐 하나에 꽂히면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대신 빠져나오기도 잘한단다.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시도에 겁내질 않는다. 특히 운동을 좋아해 산행, 수영, 헬스를 즐겨한다. 이번 영화를 통해 왈츠를 접한 뒤 스포츠댄스의 매력에 ‘훅’ 빠졌다.

◆ 한예종 연극원 졸업...‘은교’ 김고은이 한 학번 후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시절 커리큘럼 때문에 교내 연극에 계속 출연했고, 무대와 다른 시스템을 익히고 싶어 단편영화를 많이 촬영했다. 지난해 미장센 단편영화제에 출품된 ‘9월이 지나면’에선 여주인공을 연기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독립영화계의 스타 변요한 박정민은 동기이며, 지난해 ‘은교’로 혜성처럼 떠오른 김고은은 한 학번 후배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 작품을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크지만 선배님들이 ”아쉬움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위안을 삼고 있어요. 제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어. 수고했어’란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앞으로 종가흔은 떠나보내고 다양한 얼굴을 연기해야죠. 전 여러 얼굴이 있고, 소화해낼 자신이 있어요.”

 

[취재후기] ‘내가 선택한 것은 힘들더라도 해내자’란 주의로 살아왔다. 기회가 찾아오면 최선을 다하고, 아니면 아닌 이유가 있을 테니 절망 금지! 임지연을 지탱해준 방식이다. 스스로가 단단해져야 탄탄한 연기가 나올 거라는 소신 때문이었다. 암팡진 연기력으로 영리하게 캐릭터를 넘나드는 손예진의 이미지가 오버랩됐다. 말간 얼굴로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단단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임지연의 말이 사자후처럼 다가왔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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