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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한국인 최초 카탈루냐 지도자' 조세민이 주목한 스페인-한국 축구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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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한국인 최초 카탈루냐 지도자' 조세민이 주목한 스페인-한국 축구 다른 점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8.31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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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혈단신 스페인 건너가 이룬 축구지도자 꿈...'참교육'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스페인 축구

[200자 Tip!] FC 바르셀로나. 리오넬 메시라는 최고의 선수를 보유한 세계 최고의 클럽이다. 지난 시즌에는 유럽축구 무대 최초로 통산 두 번째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 한국축구학교의 총괄 지도자를 지낸 조세민(28) 솔뫼스포츠 교육운영팀장은 "그들은 이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르셀로나가 터한 카탈루냐 최초의 한국인 축구지도자 조세민 코치로부터 스페인 축구가 잘 나가는 비결, 한국 축구와 다른 점을 짚어본다.

[부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 25분 안정환 감독이 이끄는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의 감동 스토리를 방송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조세민 코치도 ‘안정환호’에 승선하기 위해 공개 테스트에 지원한 2311명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 조세민 코치의 꿈은 위대한 축구 교육자가 되는 것이다. 바르셀로나 축구학교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현재는 유소년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솔뫼스포츠 교육운영팀장으로 적을 옮겼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공을 접했다. 진주중, 포철공고, 개성고 등 축구로는 나름 이름을 알린 학교를 거치며 전국대회 준우승도 맛봤지만 지방의 특색 없는 선수를 불러주는 대학교가 없었다. 발목도 성치 않았다. 싱가포르로 향해 현역선수 연장 의지를 내비쳤지만 1년뿐이었다. 그렇게 꿈을 접었다.

할 줄 아는 것은 축구뿐. 연을 끊을 수는 없었다. 좋은 지도자가 되기로 했다. 혈혈단신 스페인으로 건너가 연수를 받았다. 해부학,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 조직편성, 전술, 기술, 경기 규칙, 팀 경영, 기초 체력에 이르는 과목들을 이수하며 유럽축구연맹(UEFA) B급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바르셀로나, RCD 에스파뇰에 버금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UE 코르네야의 16세 이하(U-16) 유소년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 걸음마를 내디뎠다. 5년간의 스페인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바르셀로나 한국축구학교(FCBEscla Korea)의 총괄 지도자로 귀국했다. 현재는 유소년을 교육하는 솔뫼스포츠 교육운영팀장을 맡고 있다.

‘스페인통’ 조세민 코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책을 썼다. 저서 제목이 시선을 끈다. ‘그들은 왜 이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가’. 스페인 유소년 축구를 피부로 느끼고 온 그에게서 한국 축구와 스페인 축구의 차이에 대해 들었다.

▲ 조세민 코치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에 대해 "축구를 함으로써 느끼는 행복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이기는 축구를 추구하면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 바르셀로나 DNA, 24%가 아닌 76%에 주목한다 

“축구를 함으로써 느끼는 행복이 최우선이죠. 스페인 축구는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요. 축구하러 가자는 것과 훈련하러 가자는 것, 느낌이 다르잖아요. 제가 요즘에 6세 선수들을 가르쳐요. 90% 이상의 남자 어린이들이 공을 던져주면 행복해하잖아요.”

라 마시아(La Masia).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축구선수 육성 정책을 일컫는다. 유스 시스템 중 11%가  성장해 바르셀로나 A팀에서 뛴다. 해외로 배출돼 1부리그에서 뛰는 선수는 13%. 조 코치는 “바르셀로나, 스페인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매료된 건 24%가 아닌 76%를 보듬는 태도였다”고 말한다.

“직업 선수가 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공부를 병행합니다. 끊임없이 인성을 강조해요. 승리, 성공에 대한 압박으로 공을 차는 한국과는 달랐어요. 라 마시아 출신은 다른 분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자립할 수 있다고 믿는 바르셀로나 특유의 DNA가 있어요.”

훈련 방식의 차이도 있다. 조 코치는 한국은 프랙티스, 스페인은 트레이닝 훈련법을 사용한다고 했다. 프랙티스란 경기 중에 나타나는 액션을 키우는 방식이지만 트레이닝은 축구 경기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에서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한국 선수들은 수많은 반복 훈련을 통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성장이 더뎌진다. 축구에 지루함을 느끼기 때문. 반면 단기적 측면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는 미약했던 스페인 선수들은 내적 동기를 품고 훈련하는데다 파워까지 붙으며 자신감을 얻는다.

조 코치는 “이기는 축구를 하게되면 결국 운동량이 적었다는 핑계로 흐르기 쉽다. 당장은 승리할 순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그렇게 우리나라는 성공 여부와 별개로 미래의 축구 소비자를 너무 많이 잃어왔다”고 주장했다.

▲ 조세민 코치는 유소년 지도자들이 단순한 감독이 아닌 인생의 방향성까지 제시하는 교육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지도자가 아니라 교육자가 됩시다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2월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뒤 “감독의 자질만 갖고 있는 사람은 결과만을 중시한다”며 “반면 교육자적 자질을 가진 이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공놀이를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니라 어린이들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교육자’가 되고 싶은 조세민 코치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프로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던 조 코치는 신선한 깨우침을 줬던 참교육자들 덕에 현재의 조세민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중학교 3학년 때 1학년 선수들을 한 명씩 맡아 지도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A4 용지 4장에다 느낀 바를 작성해 보고서를 드렸죠. 그때 감독님께서 '세민이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겠구나'하고 격려해주셨어요. 그 말이 가슴 속 깊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조 코치는 아무도 불러주는 곳이 없어 20세 때 싱가포르리그를 택했다. 사령탑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책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단다. 이전까지 연간 독서라고는 축구 월간지 12권 보는 것이 전부이던 청년은 이후 매일 최소 30페이지 이상 책을 읽게 됐다.

조 코치는 일병 때, 군생활 부적응자들이 모인 그린캠프의 분대장으로 파견을 가게 됐다. 그의 임무는 심리치료사들을 보좌하는 것. 그때 배운 심리학의 중요성을 축구에 접목시키리라 마음먹었다. 조 코치는 "축구의 4요소는 기술, 전술, 체력 그리고 심리"라고 거듭 강조한다.

▲ 유로 2008을 제패한 스페인 축구가 조세민 코치의 삶을 바꿔놨다. 생각하는 축구, 창의적인 축구의 근원을 알기 위해 조 코치는 군 전역 후 혈혈단신 스페인으로 떠났다.

◆ 개척자 조세민이 불안한 이유, 도전을 멈출 수 없다

조 코치가 스페인 축구에 인생을 걸기로 마음먹은 건 2008년 논산훈련소 연무대 교회에서였다. 예배 전 상영된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08 우승국 스페인의 축구는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급급한 축구가 아니었다. 스페인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에서도 창의적인 움직임으로 명장면을 연출했다.

그때부터 하루 두 시간씩 스페인어 독학을 시작했고 전역과 동시에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미, 양, 가가 득실한 성적으로 대체 어떻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소통을 위해 잠을 줄였고 결국 유럽축구연맹 B 라이선스까지 취득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던 그는 결국 지난해 바르셀로나가 한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총괄 지도자로 낙점을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르셀로나 축구학교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일자리를 옮겼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유소년 축구 교육을 비즈니스 모델로 하는 스포츠교육기업의 팀장으로 일한다.

“다른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안되면 죽는다 하고 덤볐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스페인에서 버텼던 것 같아요. 하루 하나 이상의 염려를 갖고 살았어요. 요즘엔 너무 편해서 불안해요. 제가 인터뷰나 강연을 할 자격이 되나 싶지만 정신없이 일을 만들고 싶어요.”

▲ 조세민 코치는 "하루 하나 이상의 염려를 갖고 살았는데 요즘은 너무 편해서 불안하다"며 "일을 만들어 바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웃었다.

조 코치는 현재 회원수가 10만 명에 달하는 ‘축구 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한다. 세종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해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를 원없이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밀려온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 오후에는 K리그 챌린지 FC 안양의 대학생 마케터들과 만남을 가졌다.

아직 해야할 일이 산적해 있다며 앞날을 그린다.

“저같은 사람들, 젊은 지도자들이 노력을 멈춰선 안되겠죠. 더욱 분발해야 합니다. 스페인도 1982년 자국 월드컵에서 8강에서 탈락하고나서야 시스템에 대대적인 변화를 줬어요. 한 세대가 필요한 일입니다. 저는 한창 밭을 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한국도 스페인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취재 후기] 지도자와 불화, 불의의 부상 등으로 갑자기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축구인들, 은퇴 후 진로를 걱정하는 체육인들을 위한 메시지도 부탁했다. 조 코치는 “기본은 언어다. 수많은 논문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덧붙인 한마디. “손가락질 받는다면 그건 바르게 가고 있다는 소리”란다. 개척자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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