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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두개의 심장' 박지성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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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두개의 심장' 박지성을 원했다
  • 강두원 기자
  • 승인 2014.05.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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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 허정무 등 국내 지도자부터 히딩크, 퍼거슨 등 해외 명장까지 박지성의 필요성 강조하고 적극 활용

[스포츠Q 강두원 기자] 박지성(33)이 24년 동안 한 몸처럼 붙어 다녔던 정든 축구화를 벗었다.

박지성은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올 시즌 PSV 에인트호번 소속으로 2013-2104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지난 8일 귀국한 박지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릎 상태가 다음 시즌까지 버틸 수 없다고 여겨 은퇴를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그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로서 또한 첫 프로생활을 시작한 J리그 교토 퍼플상가부터 올 시즌 에인트호번까지 소속팀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언제나 팀과 감독이 필요로 할 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항상 찾게 되고 신뢰할 수 있는 선수로 자리잡아왔다.

▲ [수원=스포츠Q 이상민 기자]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열린 박지성 은퇴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미소를 보이고 있는 박지성.

화려한 테크닉을 보유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친 박지성을 가장 먼저 알아 본 이는 김희태 현 김희태 포천축구센터 이사장이다.

김희태 이사장은 1999년 당시 명지대 감독으로 재직하며 수원공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두고 고민하던 박지성을 발굴하고 길러 낸 인물이다. 박지성의 축구인생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이사장의 지도 아래 성장을 거듭해 가던 박지성은 2000년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허 감독의 눈에 띄었고 결국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참가했다.

올림픽 대표팀 멤버로서 한국 축구계에 이름을 알린 박지성은 그의 축구인생 최고의 조력자인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만나면서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올림픽 대표팀 멤버였을 뿐 무명에 가까웠던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선택을 받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고 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 이영표와 함께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으로 진출하며 유럽진출의 서막을 알렸다.

네덜란드에 진출한 박지성은 초반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홈팬들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받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원정경기에만 출전시키는 배려 덕에 심적인 안정을 찾고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하며 에인트호번의 핵심 선수로 거듭났고 2004-200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PSV가 준결승에 오르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지성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나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히딩크 감독님이다. 나를 월드컵에서 뛰게 해줬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데려가 줬다. 그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됐다”며 히딩크 감독에 감사를 표했다.

▲ [수원=스포츠Q 이상민 기자]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박지성의 은퇴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지성과 그의 부모가 앉은 단상 앞에 그동안 박지성이 입고 뛰었던 유니폼들이 눈길을 끈다.

이 때의 활약은 박지성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됐다. 바로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로 이적하는 계기가 됐다. 알렉스 퍼거슨 당시 맨유 감독이 직접 박지성에 전화를 걸어 입단을 권유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공격적인 전술을 주로 활용하는 퍼거슨 감독은 공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선수로 수비력을 갖춘 박지성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자 했다.

2005년 6월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한 박지성은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라이언 긱스 등 쟁쟁한 멤버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며 팀의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수비적인 운영이 필요한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주로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으며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009-201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만난 AC밀란의 핵심선수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완벽 봉쇄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올 시즌 원 소속팀 QPR에서 에인트호번으로 임대된 이유 역시 필립 코쿠 감독의 끊임없는 구애 때문이었다. 에인트호번이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되자 많은 경험을 보유한 베테랑이 필요함을 직감한 코쿠 감독은 박지성에 SOS를 보냈고 QPR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박지성은 친정팀이라고 할 수 있는 에인트호번으로 향해 팀을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에 올려놓는 등 제 역할을 다했다.

박지성은 이날 은퇴 전까지 프로통산 321경기에 출전했고 A매치도 100경기에 나서며 쉴 새 없이 피치를 그의 발자국으로 수놓았다. 그 때마다 많은 명장들은 박지성의 성실함과 활동량을 필요로 했고 그는 자신에 주어진 역할을 다했다.

박지성은 기자회견 말미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변으로 “많은 분들이 내가 경기장에 있었을 때 믿음이 가는 선수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영광스러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지성은 충분히 영광스러울 것이다. 누구나 그가 가진 ‘두개의 심장’을 원했고 그의 활약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kdw0926@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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