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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심장'으로 한국축구의 르네상스를 연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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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심장'으로 한국축구의 르네상스를 연 박지성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5.14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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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구단 맨유서 활약, 사상 첫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스포츠Q 박상현 기자] 길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계속 지나가고 발자취를 남겨야만 길이 만들어진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박지성(33·PSV 에인트호번)의 발자취는 선배들의 흔적을 완전한 길로 만들어 후배들의 유럽 진출 러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산소탱크' 박지성은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은퇴다. 무릎 부상만 아니었다면 더 뛸 수 있었기에 안타깝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길이었던 유럽 진출 통로를 박지성이 확실한 길로 만들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한국 선수의 유럽진출 역사를 살펴보면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허승표(68) 피플웍스 회장이 잉글랜드 3부 리그팀인 코벤트리에 입단하면서 한국 선수도 유럽이라는 무대에 나서기 시작했다.

▲ [수원=스포츠Q 이상민 기자] 박지성이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자신이 그동안 입었던 유니폼을 앞에 놓고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후 차범근(61) SBS 해설위원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 '차붐 신화'를 만들어냈고 허정무(59)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1980년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해 한국 선수의 본격적인 유럽진출 러시가 이뤄지는 듯 했다.

그러나 다른 한국 선수들에게 유럽이라는 벽은 너무 높았다. 김주성(48) 동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을 비롯 황선홍(46) 포항 감독, 서정원(44) 수원 삼성 감독, 노정윤(43) 등이 유럽으로 진출했지만 성공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멀었다. 어느 정도 활약을 했던 선수들도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엔 무리였다.

이동국(35)도 독일에 진출했지만 역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안정환(38) MBC 해설위원이 이탈리아 세리에 A 페루자에 입단했지만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 골든골로 인해 쫓겨나듯 나온 뒤 유럽의 온갖 팀을 떠돌기도 했다.

여러 선배 선수들이 오가며 흔적을 만들었다면 박지성은 확실하게 길을 트는 역할을 했다.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K리그에서도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러나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명지대학교에 입학했고 허정무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서서히 떠오르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 확실하게 들었다. 지칠줄 모르는 체력으로 그라운드 이곳저곳을 누비는 활동량은 강한 압박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축구의 흐름이 딱 맞았다. 히딩크 감독은 결국 이영표(38) KBS 해설위원과 함께 박지성을 PSV 에인트호번으로 데려갔다.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인 모습으로 송종국(35) MBC 해설위원과 김남일(37·전북 현대) 등도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로 진출했지만 단발성이었고 오직 박지성과 이영표만이 유럽에서 계속 활약했다.

지금의 박지성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입단 첫 시즌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해 팀 동료들로부터도 비난을 받는 처지였지만 히딩크 감독의 관리 아래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3년 피스컵 코리아 대회에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면서 자신감을 얻은 박지성은 이후 팀에서 맹활약하며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고 팬들의 '위송빠레(박지성의 네덜란드 발음)' 응원가 속에 승승장구했다.

2004~200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AC 밀란(이탈리아)을 상대로 골을 터뜨리며 유럽 무대에서 강인한 인상을 남긴 박지성을 주목한 것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73)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활동량에 주목했고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기간 박지성에게 연락해 맨유에 올 것을 제의했다.

▲ 박지성이 2008년 5월 러시아 모스크바 루츠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첼시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마친 뒤 믹스드존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당시 박지성은 출전 명단에 들지 못해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진=스포츠Q DB]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그에 대한 초기 평가는 비관에 가까웠다. 유니폼 판매원이란 모욕적인 말도 나왔다. 그러나 박지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개막전부터 선발로 출전하는 등 퍼거슨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7시즌동안 자신의 최전성기를 보냈다.

박지성은 2008년 첼시와 가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전격 제외되면서 퍼거슨 감독과 다소 소원해지는 듯 보였지만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제외시킨 것은 감독 생활 중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말로 달랬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는 감독의 권한이라며 그 누구의 간섭도 받기를 꺼려하는 퍼거슨 감독의 이 말은 박지성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박지성은 2008~200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출전했다. 비록 FC 바르셀로나(스페인)의 티키타카에 완벽하게 유린당하며 아시아 선수 첫 우승컵이라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지만 모든 것의 선구자였다.

▲ 김동진(왼쪽부터), 박지성, 이호가 2008년 8월 모나코의 루이 2세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루크와 2008 UEFA 슈퍼컵 경기를 마친 뒤 그라운드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박지성의 활약으로 유럽 축구계에서도 아시아 선수, 특히 한국 선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김동진(32) 등을 러시아 리그로 데려가기도 했고 직접 K리그 구단으로 영입 제의를 하는 구단도 생겨났다.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면서 적지 않은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았다. 모두가 박지성이 길을 만들어놓은 덕분이었다.

2008년 모나코에서 열렸던 UEFA 슈퍼컵에서 한국 선수끼리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박지성의 공이었다. 당시 맨유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맞대결에서 박지성은 후반에 출전했으나 김동진과 이호는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당시 한국 선수가 있는 팀이 UEFA컵(현재 유로파리그)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모두 석권한 것은 최고의 뉴스였다.

이제 박지성은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닦아놓은 길은 이제 유럽으로 가는 탄탄대로가 됐다. 그의 발자취는 지금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에 유럽파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럽에서 산전수전 경험을 모두 겪은 선수들은 이제 더이상 옛날 선배처럼 월드컵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제2의 박지성'이 되길 원한다. 박지성은 "굳이 '제2의 박지성'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유럽에 진출한 모든 후배들은 이제 자리를 잡았다. 이미 내 이름을 지운 선수"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직까지도 '포스트 박지성'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가 남긴 발자취가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

▲ 박지성이 2008년 8월 모나코의 루이 2세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가진 2008 UEFA 슈퍼컵을 마친 뒤 믹스드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김동진, 이호의 소속팀인 제니트는 각각 UEFA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 우승팀 자격으로 UEFA 슈퍼컵에서 맞붙었다. [사진=스포츠Q DB]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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